brunch

매거진 미라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생각 Dec 12. 2021

자존감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한동안 죽은 듯이 살고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죽어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잊혀지고, 삶에서 사라지고, 사회에서 희미해지는 느낌.

그럴수록 더 살아나기 위한 발버둥보다는

꼬르륵 잠수를 시작했다.

집밖에 나가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닥이라는 걸까?


죽어가는 나를 보며 친구들이 걱정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개는 넘치던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무너지느냐고.


'내가 기개가 있었어?'


잘못 알았던거야. 나는 자존감도 낮고..

기껏해야  자존심이나 남아서 악쓰던 애야.


그런데 오래된 '내 사람'이 말했다.


"네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너는 자존감이 확실하고 자존심은 버릴 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해?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 모든 건 자존감이 낮은데서 오는건데?

난 어릴 때부터 사랑받지도, 존중받지도 못해서 자존감이 거지야.


"잘 생각해봐. 진짜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만 남은 사람은 너처럼 못 살아.

가족들의 독설과 냉대와 무시를 어릴 때부터 겪으면서

넌 본능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방법으로 자존심은 버리고

스스로 자존감을 키웠어. 그래서 가족들의 독설은 살짝 굽혀 흘리고

나와서 '나'를 지키고자 했던거야.

만약 자존감이 아니고 자존심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비위 맞추면서 좋은 관계 유지하려 애썼을걸.

밖에서도 자존심만 있었다면 지금처럼이 아니라

그 전에 좋은 자리에서 버텼을거야.

그게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너는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과감히 자리니, 명예니 다 포기할 수 있었던거지.

너는 무너지면 안되니까."


처음이었다.

스스로 최악의 자존감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고 믿었는데

듣고보니 그렇게 나를 지켜온 게 자존감이었다고 말해주는건.


내 존재가 그래도 그렇게 가치없다 여기진 않았던 걸까..

아니다 싶은 일, 대우, 사람에 대한 확실한 손절.

지금은 이게 되질 않으니 스스로 괴로웠던걸까..


몇 십년만에

그래도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상작가는 작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