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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365 중독

365일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

  생각해보면 나는 ‘중독’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도전도 과감하게 하는 편이지만 한 번 빠지면 한동안 헤어나질 못한다. 중학교 때는 컴퓨터에 깔린 게임 ‘헥사’를 시작하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일어나지 않고 했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친 후에 시작했던 스타크래프트에 빠졌다. 그다음엔 하와이로 어학연수 가서 포트리스에 빠져서 시차가 반대인 친구들과 밤새워 이야기하며 포트리스 게임을 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게임을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이 되는 것 같지 않아서 게임에서는 손을 뗐고, 그다음으로 제대로 시작한 것이 봉사 활동이었다. 책임감인지 중독성인지 알쏭달쏭한 감정으로 봉사 활동을 놓지 못한다. 처음엔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봉사 활동은 모양이 조금 바뀌던가, 방향이 조금 바뀌었어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 도움을 받는 일이 된 지 오래다.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KBS에서 했던 ‘사랑의 리퀘스트’와 구성이 비슷한 지역 민영방송들이 합작품이었다. 아픈 아이들 수술비를 지원해주는 코너 하나, 집수리해주는 코너 하나, 어려운 환경에서 잘 자라고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코나 하나. 이렇게 세 꼭지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이 얼마나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인가?     


  하지만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피하고 싶은 프로그램 1순위였다. 그 이유는 ‘아픈 아이’를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하고, 아픈 사연을 들어야 하고, 수술비와 출연 약속을 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을 계속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아이 얼굴을 팔아 수술비를 받는 것 같아서 무능한 자신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덤덤히 말하며 어른들을 위로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사실 곤욕이었다. 그래서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돌고 돌아 나에게 떠밀려 왔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교육청에 협조를 구해서 교육청에 등록된 희귀, 난치병 아이들의 명부를 받는다.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법상 위반사항이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방송국에서 나서는 일이라고 하면 바로 명부가 넘어왔다. 30명이 넘는 울산에 있는 희귀 난치병으로 아파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과 부모님 연락처, 병명이 적혀있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병들로 가득 찬.     

  마음을 가다듬고 1번부터 전화를 돌린다.     


 “안녕하세요? ○○○ 어머니 되시나요? 저는 ubc울산방송 하미라 작가라고 합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평소 섭외할 때는 목소리 톤이 2옥타브는 높았지만 365 (이렇게 줄여 불렀다) 섭외를 할 때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화를 해야 했다.     


  “네…. 말씀하세요”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는 대부분 오랜 병간호로 지쳐 쫙 가라앉아 있었다.    


  “네…. 저는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교육청에 협조를 받아서 이렇게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는 좀 어떤가요…?”    

  “○○이…. 작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이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아이의 어머니와 같이 울었다. 이런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통화를 하고 나면 한동안 섭외를 못 할 정도로 자신이 움츠러들곤 했다. 내가 이 어머니의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은 죄책감으로.    


다시 전화를 돌리고, 아이들의 상태를 묻고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면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보시는 건 어떠신지, 수술비로 2천만 원을 지원해 드릴 방법이 방송 출연을 하시는 거라고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러면 망설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흔쾌히 승낙하시는 분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가서 직접 확인을 하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보급되기 전이라 주소를 받으면 지도를 보고 집을 찾아다녔다. 골목골목 돌아 찾아간 집에는 아이와 어머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그 아이는 근이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근이완증은 유전염색체 결함으로 근육이 줄어들고 관절이 굳어가는 병이다.   초등학교에 입학 때만 해도 어렵게나마 한 걸음씩 걸었던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한 걸음도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밝고 씩씩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아이의 손발 노릇을 하고 계시고, 아버지 혼자 번 돈은 아이 병원비로 다 들어가고 상황은 점점 악화 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니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이를 촬영하고 방송을 했다.    

 

  1년이 약간 지나지 않아 출연했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차 전화를 돌렸다. 정확히는 방송 후 뒷이야기 촬영이 가능한지 여쭙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죽었어요. 미안합니다….”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는데, 제작진에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어머니들은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맡았던 4년 동안 여러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작가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나누고 같이 웃고, 같이 울 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자기밖에 모르고 소통할 줄 모른다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직업이다. 공감을 전제로 말이다.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나에게 중독이었다. 아프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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