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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여자 글쟁이의 비애

글쟁이로 살기 어렵다

  “작가님, 담배 하시죠?”    


  이렇게 담배를 건네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많았다. 작가라고 하니 골방에 너저분하게 쌓인 책을 비집고 한쪽 다리는 의자에 대충 걸친 채 담배는 입에 물고, 언제 씻은 건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글을 쓰는 모습, 왜 TV에서는 작가를 그렇게 표현할까?    


  물론 지금처럼 책을 쓴다고 집중할 때는 세수도 하지 않을 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한다. 구성안을 쓸라치면 쓰다가 말다가 하면 상상하는 이미지가 끊겨서 몰아 써야 하니까 몇 시간을 그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담배에 의존하면서 글을 쓰는 글쟁이가 전부는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술은 완전 잘 하시겠는데?”    

  “아니요, 한 잔도 못 합니다.”   

 

  아버지는 반주는 기본으로 하시는 애주가지만, 나는 알코올이 조금만 함유된 음식을 먹어도 바로 알레르기가 올라온다. 그러니 술을 먹으면 오죽하겠는가.   

  

 “에이, 거짓말, 무슨 작가가 술도 못 먹어요? TV 보니까 완전 말술이더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TV 속에 등장하는 고뇌하는 드라마 작가도 아니고 (보통은 드라마 작가가 주인공이거나 소설가나 시인이 작가로 등장한다)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고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 취향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가는 술쟁이, 담배쟁이로 각인된 세상에서 18년간 별의별 짓을 다 해본 것 같다. 술을 못 마시는 걸 보여주면 믿을까?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두 잔 벌컥 마시면 곧 내 몸에서는 신호가 온다. 눈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빨개지고 부어오른다. 그리고 한기가 들어 춥고, 내 두 눈동자에서는 마치 피가 흘러내릴 것처럼 충혈이 되고 만다.     


  “제가 술을 마시면 이렇게 돼요”    


  벌벌 떨면서 이야기하면 적어도 그분은 다시는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또 다른 그분들이 지속해서 나타나서 문제일 뿐.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잘 못하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기는 하나 나는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 술을 잘 마셨으면 아마 인생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은 곳에서 찾긴 하겠지만 글을 읽거나, 일하거나, 이렇게 책을 쓰는 대신에 놀았을 것이다.   

 

  “작가님이 아나운서 같네”

  “리포터 아가씬 줄 알았네~”    


  자랑이 아니라 짓궂은 사람들은 이렇게 짓궂게 말한다. 작가가 생각과는 다르다는 표현을 에둘러 말했겠지만 어릴 때는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 말 속에는 나쁜 의도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작가는 예쁘고 잘 꾸미고 그러고 다니면 안 되는 건가? 예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작가는 보통 여자가 많다. 예전에 교통방송에서 일할 때 처음으로 남자작가님을 봤는데 참 좋았다. 번외로 작가라는 일이 은근히 매력적이고 남녀 구분 없이 하기에 좋은 일인데 왜 그런지 남자작가는 잘 없다.    

 

  한동안 이슈였던 ‘미투운동’을 사실 나는 이미 예전에 경험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식은 지금처럼 깨어있지 않아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더더욱 상처받고 아파해야 하는 구조였다. 가해자는 더 당당하고. 방송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건 비단 방송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윗사람이, 아주 힘없는 아랫사람, 그것도 여자직원에게 성희롱, 성추행 등 성적 대상으로서의 모멸감을 느끼게 만드는 행위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항상.  


  그 첫 시작은 몇 마디 말이다. ‘오늘 옷이 아주 야하네.’ ‘생각보다 몸매가 예쁘구나?’‘남자친구 있지? 얼마나 됐어? 뽀뽀도 했어?’ 째려보고 욕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기가 막힌 말들을 이 여자직원은 괜찮아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싫지만, 윗사람이라 꾹 참고 넘어간다. 그다음엔 더 과감해져서는 여직원의 어깨를 주무르거나, 손을 잡는 등의 터치를 시도한다. 약간의 거부를 해보지만 ‘이렇게 앙탈 부리는 게 더 좋단 말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여직원 괴롭히기는 계속된다. 가끔은 문자메시지 등으로 은밀하게 만나자고 하거나 ‘오늘 너무 섹시하다’ ‘네가 생각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등의 징그러운 말들을 뱉어내는 때도 있다.    

 

  이건 여자가 사회생활을 할 때 겪는 많은 일들 중의 하나이다. 작가라서가 아니라 어디서든 여자들은 겪는다. 그리고 강한 대처를 하라고 법에서는 말하지만 앞으로 사회생활을 접을 게 아니라면 ‘강한 대처’라고 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 바로 밑의 장에서 말하겠지만 작가는 철저하게 갑을 병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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