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로 살기 어렵다
“작가님, 담배 하시죠?”
이렇게 담배를 건네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많았다. 작가라고 하니 골방에 너저분하게 쌓인 책을 비집고 한쪽 다리는 의자에 대충 걸친 채 담배는 입에 물고, 언제 씻은 건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글을 쓰는 모습, 왜 TV에서는 작가를 그렇게 표현할까?
물론 지금처럼 책을 쓴다고 집중할 때는 세수도 하지 않을 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한다. 구성안을 쓸라치면 쓰다가 말다가 하면 상상하는 이미지가 끊겨서 몰아 써야 하니까 몇 시간을 그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담배에 의존하면서 글을 쓰는 글쟁이가 전부는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술은 완전 잘 하시겠는데?”
“아니요, 한 잔도 못 합니다.”
아버지는 반주는 기본으로 하시는 애주가지만, 나는 알코올이 조금만 함유된 음식을 먹어도 바로 알레르기가 올라온다. 그러니 술을 먹으면 오죽하겠는가.
“에이, 거짓말, 무슨 작가가 술도 못 먹어요? TV 보니까 완전 말술이더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TV 속에 등장하는 고뇌하는 드라마 작가도 아니고 (보통은 드라마 작가가 주인공이거나 소설가나 시인이 작가로 등장한다)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고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 취향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가는 술쟁이, 담배쟁이로 각인된 세상에서 18년간 별의별 짓을 다 해본 것 같다. 술을 못 마시는 걸 보여주면 믿을까?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두 잔 벌컥 마시면 곧 내 몸에서는 신호가 온다. 눈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빨개지고 부어오른다. 그리고 한기가 들어 춥고, 내 두 눈동자에서는 마치 피가 흘러내릴 것처럼 충혈이 되고 만다.
“제가 술을 마시면 이렇게 돼요”
벌벌 떨면서 이야기하면 적어도 그분은 다시는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또 다른 그분들이 지속해서 나타나서 문제일 뿐.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잘 못하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기는 하나 나는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 술을 잘 마셨으면 아마 인생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은 곳에서 찾긴 하겠지만 글을 읽거나, 일하거나, 이렇게 책을 쓰는 대신에 놀았을 것이다.
“작가님이 아나운서 같네”
“리포터 아가씬 줄 알았네~”
자랑이 아니라 짓궂은 사람들은 이렇게 짓궂게 말한다. 작가가 생각과는 다르다는 표현을 에둘러 말했겠지만 어릴 때는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 말 속에는 나쁜 의도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작가는 예쁘고 잘 꾸미고 그러고 다니면 안 되는 건가? 예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작가는 보통 여자가 많다. 예전에 교통방송에서 일할 때 처음으로 남자작가님을 봤는데 참 좋았다. 번외로 작가라는 일이 은근히 매력적이고 남녀 구분 없이 하기에 좋은 일인데 왜 그런지 남자작가는 잘 없다.
한동안 이슈였던 ‘미투운동’을 사실 나는 이미 예전에 경험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식은 지금처럼 깨어있지 않아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더더욱 상처받고 아파해야 하는 구조였다. 가해자는 더 당당하고. 방송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건 비단 방송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윗사람이, 아주 힘없는 아랫사람, 그것도 여자직원에게 성희롱, 성추행 등 성적 대상으로서의 모멸감을 느끼게 만드는 행위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항상.
그 첫 시작은 몇 마디 말이다. ‘오늘 옷이 아주 야하네.’ ‘생각보다 몸매가 예쁘구나?’‘남자친구 있지? 얼마나 됐어? 뽀뽀도 했어?’ 째려보고 욕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기가 막힌 말들을 이 여자직원은 괜찮아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싫지만, 윗사람이라 꾹 참고 넘어간다. 그다음엔 더 과감해져서는 여직원의 어깨를 주무르거나, 손을 잡는 등의 터치를 시도한다. 약간의 거부를 해보지만 ‘이렇게 앙탈 부리는 게 더 좋단 말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여직원 괴롭히기는 계속된다. 가끔은 문자메시지 등으로 은밀하게 만나자고 하거나 ‘오늘 너무 섹시하다’ ‘네가 생각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등의 징그러운 말들을 뱉어내는 때도 있다.
이건 여자가 사회생활을 할 때 겪는 많은 일들 중의 하나이다. 작가라서가 아니라 어디서든 여자들은 겪는다. 그리고 강한 대처를 하라고 법에서는 말하지만 앞으로 사회생활을 접을 게 아니라면 ‘강한 대처’라고 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 바로 밑의 장에서 말하겠지만 작가는 철저하게 갑을 병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