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0.04.01.
기록자: 수아(라고 읽고 고인돌이라고 쓴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2년 넘게 한집에서 살아본 기억이 없다. 특히 대학생 때는 거의 6개월 단위로 주거지를 옮겨야 했고, 내 짐은 6박스를 채 넘어가지 않아 승용차 한 대면 이사하는 데 충분했다. 학사, 학숙, 기숙사, 하숙… 수많은 주거 형태를 거치는 동안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는 축적되었고, 누군가와 함께 집의 한 귀퉁이를 공유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자연스레 집보다는 밖으로 많이 나돌게 되었다.
26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울에서 내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창문을 열면 앞집이 훤히 건너다보이는 1층 집이었지만 그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빛이 어슴푸레 들어오는 낮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게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겨울이면 곰팡이를 닦아내느라 바빴고, 벽에 가구를 붙일 수 없게 되면서 가용할 수 있는 면적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물욕은 많은지. 작은 집이 수많은 짐을 부둥켜안고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
28살이 되어 이사 온 집은 그보다 넓고 쾌적했다. 여전히 창문을 열면 벽을 마주하지만, 7층이라 꽤나 빛이 잘 들었다. 방이 하나 늘어나면서 서재와 침실을 분리했고, 작업을 하기 위해 가로 1200짜리 책상도 들였다. 그러자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이후로 적어도 4개월은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지만.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집에 큰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고양이 ‘랑이’가 잠시 가족이 되었다는 것. 친구네 친구의 고양이인데 사정이 있어 한 달 정도 맡게 되었다. 마침 여러모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더 편한 때였다. 나른한 오후에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으면, 랑이는 자기 몸의 일부를 기댄 채 새근새근 코를 골았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현관으로 마중을 나왔고,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으로 다가와 자기 이마며 등을 쭉 내밀었다. 집안에 나 말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고, 그 기쁨을 가능하면 많이 누리고 싶었다.
랑이를 핑계로 사람들을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만나는 걸 다들 꺼려하던 때였다. 우리집은 서울 북쪽 끝에 있지만, 친구들은 고양이를 핑계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기꺼이 와주었다. 고양이 털은 매일 날리는데 사람들이 자주 오가니 자연스레 집을 쓸고닦는 시간이 많아졌다. 작업을 위해 들였던 책상은 어느새 식탁으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니 이후 지난 2달간, 이 4인용 식탁 (겸 책상)에서 무수히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니까 29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돌보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나의 공간에 초대해 귀하게 대접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