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같은 건 잘 안 믿지만, 묘하게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자꾸 살펴보게 된다. 야림이 MBTI 이야기를 했으니 나도 한번 해 봐야지
보통 MBTI는 (비과학적이면서도) 잘 안 바뀐다던데, 나는 빠른 시간 안에 네 가지 중 두 가지 성향이 바뀐 케이스다. 2017년에는 분명 ESFP(자유로운 연예인형)이었다. 연희동의 어느 허름한 백반집에서 회사 사람들과 다 같이 검사를 해보다 '엥, 무슨 연예인. 나는 끼도 별로 없는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찬가지로 비과학적인 나무위키의 설명을 빌리자면 3년 전의 나는:
내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잘 털어놓는다.
통상 책임감이 막중한 일은 잘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행동에 옮긴다.
흥분을 잘하며 목소리가 크다.
집에 있으면 무기력한 느낌이 들고 쉬는 날은 거의 외출
청소나 빨래를 제시간에 하지 않고 몰아서 꼭 해야 할 때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싫고 좋은 사람이 분명하며 표정에 나타난다.
정이 많고 건망증이 심하다.
거절을 잘 못한다.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한다.
이야기할 때 요점과 더불어 부연 설명을 많이 덧붙인다.
귀가 얇다(상황에 따라,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잘 변한다).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고, 계획에 따라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부기능이 Fi(내향 감정)라 내향적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 여행을 즐긴다.
(뭐야.. 나 지금도 ESFP인 거 아냐?) 우리 집에 관찰카메라를 달았나 싶을 정도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늘 혼자 있는 걸 못 견뎌해 누구든 불렀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좋고 싫음을 얼굴에 숨기지 못했고, 그럼에도 거절은 잘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혼자 있거나 가족들과 있는 나는 가끔 흥얼거리며 춤을 곧잘 추곤 했다. 동생은 그런 나를 보며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곤, 자주 혀를 끌끌 찼다.
지금 검사를 하면 무조건 INFP(열정적인 중재자) 유형이 나온다. 외향적이던 E 성향은 내향적인 I 성향에 가까워졌고, 감각적이면서 나무를 보던 성향(Senting)은 인식적이면서 숲을 보려는 성향(iNtution)으로 바뀌었다. 전반적으로 두 성향의 성격이 정반대라 (한쪽이 끓는 불이라면 다른 한쪽은 물을 끼얹어 차-분한 느낌이랄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3년 사이에 회사를 다니면서 사회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떠올리고선 바로 납득해버렸다.
회사를 처음 들어갔을 때, (이런 표현 좀 그렇지만) 확실히 혈기왕성했던 것 같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넘쳤고 정도를 따라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덕분에 늘 퇴근 시간은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매출보다 제작비가 더 나올 때가 많았지만. 하지만 지금의 나는 타협할 줄 안다. 100을 원하더라도, 시간상 비용상 등의 이유로 80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20대 초반에 씹어대던 어른의 모습에 매일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중이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숲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최근 시사 뉴스레터를 쓰던 직무를 벗어나, B2B 사업을 맡게 되었다. 한 달에 몇 천만 원의 계약을 따와야 하는데 팀원은 나 혼자. 게다가 B2B 사업의 전략도 짜게 되었으니 늘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짜릿하기도 하다. 답답하다고 느끼던 요소들을 많이 걷어내고 나니, 조금은 거침이 없어졌다. 떠올린 걸 혼자 제안하고 실행하고 회고하는 과정이 보고나 공유 등의 겉치레가 없어 홀가분할 때가 많다. 요즘은 별다른 미팅이 없으면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 어차피 자리에 박혀 혼자서 일할 거라면 집에서 하는 게 낫다. 대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고 심하다는 걸 코로나 이후에 깨달았다.
사회화가 진행된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닐까.
예민해야 하는 일에 무뎌지는 것 같아서 경계하다가도, 모든 것에 예민해서 받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줄어든다는 점에서 경계를 풀게 된다. 그 사이를 메트로늄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삶의 중심이 잘 안 잡힌다. 그래서 어느 날의 나는 너~무 신나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또 어느 날의 나는 무엇에도 의욕이 없어 뚱한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모든 것에 회의적이거나 기분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태도가 누군가에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요즘은, 사회적 자아를 발동시켜 미소를 짓기 위해 얼굴 근육을 쓰는 일조차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잦다.
그래서 사회화를 겪고 난 나는(역시나 나무위키에 따르면):
MBTI의 성격유형 중 MBTI에 가장 깊게 빠져든다(!!!). 자기 자신에게 항상 관심이 많으며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설명해주는 게 MBTI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문서에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성격 중에 상상력이 가장 풍부하다.
정이 많아 거절을 잘 못 하며, 거절을 하더라도 반드시 거절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전체적으로 몽글몽글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유리멘탈 소유자이다.
마음이 여려 사소한 것에도 깊은 상처를 받고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달리는 등의 사소한 것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사소한 것에도 상처를 잘 받기 때문인지 자주 우울감에 빠진다. 실제로도 모든 유형들 중 우울에 가장 쉽게 빠지며, 깊게 빠지는 유형이 INFP이다.
본인이 상처를 받는 것도 싫어하지만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는 걸 정말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의사 표현할 때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빙빙 돌려 말한다.
되게 가까운 사이라도 본인만의 선이 확실하다. 마음이 약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필터링을 자주 거치기에 아무리 친해도 타인한테 욕이나 무례할 행동을 먼저 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신이 공격 아닌 공격을 받아도 마음 아프지만 그냥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한 선을 넘으면 겉으로는 똑같이 지내지만 속으로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겉모습과 속 모습의 차이가 크다.
대화 도중 리액션이 풍부하지만 실제로는 딴생각을 할 때가 많다.
반려동물을 좋아한다.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 토끼 등을 좋아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혐오하고 세상을 더 편하고 좋은 곳으로 바꾸는 명예로운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다만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숨긴다.
분위기를 잘 탄다.(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끝까지 남는다.)
타인한테 간혹 비하당했을 때 오기가 생기는 경우보단 번아웃이 자주 온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상황을 간파하지만 모르는 척한다.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 지구 내핵에서 오존층까지의 수준. 또한 감정이 얼굴에서 쉽게 드러난다.
설명이 너무 다 나 같아서, 링크로 갈음한다. MBTI는 미신이어도, 저는 여기에 설명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니 한번 읽어보시길.
P.S. 그나저나 이 글은 코로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