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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27. 2024

부모님은 뭐하시나?

직장상사 질문에 아버지가 없다고 하다

     성인이 되고 나니, 대학생 시절에도 같이 다니는 친한 친구들 외에는 아빠가 없다고 얘기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고 나니, 정말 뜻밖에도 가장 많이 그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24살 대학교 4학년 2학기 도중에 바로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잘 몰랐기에, 멋모르고 들어온 전공을 따라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첫 직장의 입사 면접은 미국에 있는 대표님과 화상통화로 이루어졌다. 총직원 7명의 작은 회사였는데, 따로 문으로 분리된 회의실이 아닌,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컴퓨터로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한 직원이 본인 컴퓨터로 대표님에게 스카이프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화상 전화를 걸었고, 나에게 본인 자리 의자에 앉아서 면접 보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하게 생긴 관상을 좋아하던 대표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여러 질문을 하였다. 그러다 "부모님은 뭐 하시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아이코, 전 직원이 다 듣는 지금, 이 상황에서 대답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에 입사하게 될지 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회사를 재기는커녕, 어디든 붙어서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아버지는 안 계시다, 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때 거짓말을 한 것이 알려지면, 해명하기 난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어머니가 고생하시면서 키우셨겠구만" 하면서 측은해한 게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아마 이어지는 추가 질문에 어릴 때부터 없었다든지 이혼했다든지 좀 더 구체적인 사정을 대답했던 거 같다.


      물론 이게 나의 직장생활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본인의 부모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얼마나 서로 싸웠는지, 지지고 볶은 가정사에 대해서 구구절절 직장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는데, 아버지가 없습니다! 라는 대사로 나만 혼자 속옷이 내려간 느낌이랄까?


    그다음 이직한 현재 직장도 어쩌다 보니 무역회사로 가게 되었다. 여기도 총직원 5명의 작은 중소기업이다. 다만 전 직장과 다르게 직장 상사분들이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느낌은 많이 없어서, 그 부분이 좋았다. 같은 사무 업무를 보는 과장님에게 뭐라고 호칭을 불러야 좋을지 물어보았는데, 10살 많은 과장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언니라고 불러." 했다. 그리고 과장님이 미혼이라서 그런지 10살 차이라는 걸 상기시키지 않으면, 언니라고 부르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둘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입사한 지 몇 개월이 흘렀나, 문득 과장님은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 아빠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네." 또 나오고야 말았군. 도대체 나는 다른 사람의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갖지도, 혹시나 나처럼 난처할까 봐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과장님과 다른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과장님은 부모님 두 분 다 계신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입사 초기부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충 둘러댔던 거 같다. 돌아가셨다고 했던가 직장 다닌다고 했던가.


   그리고 입사한 다음 해 명절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대표님과 나는 단둘이 사무실에 있게 되었다. 대표님은 명절 때 어디로 내려가냐고 물었다. 나는 설마 친가에 대해서 따로 묻진 않겠지, 싶어서 통합적으로 대답했다. '친척이 서울에 있어서 따로 내려가는 곳은 없어요~''외가? 친가?' 아니... 이걸 또 짚어내시네. '외가요~''친가는?' 어찌 답할까, 하다가 두루뭉술하게 친가는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제 어색한 시간이 다가올 차례겠지. 나는 개의치 않는다고, 괜찮다고 말해야겠다고 계산하던 순간이었다.

    "어?! 나도 아빠 없는데~!"

   네? 갑작스러운 대표님의 선빵. 처음으로 나의 예상 모범 답안지가 틀려진 순간이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풋' 하면서 정말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 나중에 직접 들은 바로는 아버지라는 작자는 대표님 본인의 성별도 잘 몰라서 남자아이를 갖다가 여자 이름으로 지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낱낱이 직원에게 말해준다고? 놀라기도 하면서 그런 대표님의 진솔함이 어느 가정이나 사연이 있다고 들렸고, 그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계속해서 같은 회사에 입사한 지 삼여 년이 흐른 뒤, 그 날은 영업직인 부장님과 단둘이서 점심를 먹으러 나가게 되었다. 영업직은 보통 오후에는 외부로 영업하러 나가기 때문에, 같이 점심 먹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유독 다른 직원들이 외근에 휴가여서, 특히나 더욱이 우연히 둘만 사무실에 남았다. 평소 회사 업무 외에는 사적인 대화를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약간은 정적이 흘렀다. 부장님이 감사하게도 먼저 여러 질문을 걸어와 주었는데, 그러다가 또다시 그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제는 입사한 지 꽤 되었고, 굳이 숨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있는 그대로, 애기 때 이혼해서 아빠가 없다고 답하면서, 항상 준비해 두는 뒷구절도 먼저 갖다 붙였다.

    "저는 정말 괜찮은데, 이렇게 답하면 다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황해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하하..."

    그리고 나는 이어진 부장님의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나야, 우리 장인어른은 맨날 술 마시고 그렇게 행패를 부린다. 솔직히 아내랑 장모님도 빨리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길 바랄걸? 내가 보기에 장모님은 일찍이 이혼을 했어야해. 부모라고 다 부모가 아니야. 부모다워야 부모인거지. 그런 점에서 너희 어머니는 정말 현명하시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살면서 이혼이 현명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부모가 2명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듯한 그 토닥임도. 세상 사람들에게 이 듣도 보도 못한 모범 답안을 널리 퍼트려서, 모든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내가 느낀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난 이 말을 엄마에게 꼭 들려줘야겠다며 가슴 속 흥분이 일었다. 언제나 이혼을 주홍 글씨처럼 여기던 엄마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라, 그러니까 당당해지라고 말이다. 정작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이혼한 게 뭐가 현명한 거냐, 끝까지 잘 살았어야지, 민망해하며 절레절레하였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있었다.


    다음에 또 이직하게 된다면 그때도 여러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해오겠지. 언제나처럼 지겨운 패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전 직장 부장님이 무심한 듯 건넸던 온기가 언제고 떠오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싱긋 웃으면서 대답해 볼 기운이 생긴다. 그리고 나의 솔직한 대답이 내가 그랬듯, 누군가에겐 생각지 못한 위로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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