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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Feb 21. 2019

에이, 유학이나 갈까?

26/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런던이라는 곳에 환상이 좀 있었나?"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아냐며 악을 쓰는 내게 그는 조심스레 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후 세 시면 땅거미가 지는 12월이었다. 유학 4개월 차, 이제는 익숙해진 겨울비에 눅눅해진 카페 한 구석에 나는 입도 못 다물고 구겨져 있었다. 조금 전 룸메이트와의 전쟁을 끝으로 와르르 무너진 그간의 쌓인 감정 덩어리들을, 마주 앉은 친구의 커피잔 위로 마구 갈아내리던 중이었다.


'환상?'

가만히 내 악다구니를 듣고 있던 친구의 갑작스런 물음에 입술을 타고 내리던 콧물이 호로록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 게 있었다구 내가?’


나처럼 홀로 런던에 왔다가 갖은 고생을 겪으며 어느덧 7년째 그곳에서의 삶을 꾸려 오고 있는 친구의 질문은 묵직했다. 채 한 입도 손대지 못한 레몬 드리즐 케이크가 나를 시큼하게 올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자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커다란 이민 가방에 신중히 물건들을 챙겨 넣으며, 나도 모를 환상을 함께 차곡 차곡 챙겨 온 것은 아니었는지.



*

[ 에이C, 나도 유학이나 갈까? ]

그날의 나도 역시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다만, 마음속 절규와는 달리 겉으로는 태연한 회사용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빼면. 책상을 내리치고 뛰쳐나가는 대신 죄 없는 노트북 자판을 꾹꾹 내리쳐 가며 아홉 시간 너머에 있는 친구의 카톡창에 'ㅠㅠㅠ' 오백만 개를 마구 찍어 보냈다. 아 너무 힘들어. 아 너무 거지 같아. 아 너무 말도 안 돼. 아아아아 답답해 죽겠어. 아 나도 유학이나 갈까?


나는 사과하고 싶다. 바로 그 유학을 가 있느라 몇 달째 3시간 남짓 쪽잠을 자곤 눈뜨자마자 이 답도 생각도 없는 카톡 폭탄에 '말잇못' 해야 했을 친구에게. 그야말로 얼마나 깝깝했을까. 얼마나 서운했을까.

직접 가서 부딪힌 유학이라는 것이 '~이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왜, 어째서, 어떻게 자세히 어렵고 힘들었는가를 이미 유학을 잘 마무리하고 온 시점에 더 이상 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러니까 그게 왜 힘든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우선 '사는 건 왜 힘든 것이냐'는 질문으로 대답하면 될 듯하다. 유학이라는 것도 '사는 거'니까 어쨌든.


유학이 아니더라도 나와는 다른 삶에 대해 '그거'나 해볼까,라고 툭 던지듯 생각해 보는 것은 사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내겐 흔한 일이었다. 나도 직장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려볼까? 어디 저으기 콜로세움 앞에 가서 젤라또나 팔까? 사실 대부분은 그 '그거'를 정말로 해볼까 싶었다기보다는 단순히 '현실 일시 정지'가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 다른 삶들은 현실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삶은 당연히 이 삶보다는 퍽 쉽기라도 하다는 듯이. 누군가 내게 에이, 나도 취업이나 해서 돈이나 벌어볼까?*^^* 했더라면 멱살을 잡을 일이었을 텐데.



*

"아 뭐가 그렇게 또 외롭겠어.”

나란히 빨래를 개던 엄마의 걱정 묻은 목소리를 탈탈 쳐냈다. 출국 일주일 전, 엄마의 걱정은 매일매일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주제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이었다. 너 생판 낯선 데 혼자 가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워서 어떡하니.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걱정이었다. 아니 뭐가 그리 다르겠어? 어차피 여기서도 외로웠는데. 동거인도 남들 다 있는 동거묘도 없이 꾸역꾸역 나를 돌봐 가면서 그래도 그럭저럭 살았는데. 거기라고 뭐가 더 새삼스레 외로울까 봐서?


나는 주워 담고 싶다. 그 빨래만도 못한 말을.

아프다고 약 한 첩 쉬이 처방받을 수 없고 배고프다고 머릿속 그것을 쉽게 찾아 먹을 수 없으며 몇 달째 고쳐주지 않는 고장 난 보일러의 파이프 소리와 옆방 사는 아이의 국경도 벽도 뛰어넘는 통화 소리에 잠 한숨 편히 잘 수 없는 한 계절쯤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 유학 생활을 '힘듦'도 '괴로움'도 아닌 '고달픔'이라는 단어로 묘사한 까닭을 이해했다. 맘처럼 되는 것이 좀처럼 없다는 사실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나 런던에서 학교를 다닐 때나 다름이 없었지만, 차이는 '무엇'이 맘처럼 되지 않는가에 있었다. '하고 싶다' 혹은 '이랬으면 좋겠다'의 범주가 아닌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믿어 왔던 것들이 밑둥부터 통째로 흔들리는 삶. 먹고, 자고, 가고, 사고, 말하고, 쉬며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숨 쉬듯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일일이 잘잘히 거부당하는 생경함. 타향살이의 외로움이란, 필요한 것들이 곁에 없어서 찾아드는 추가적인 감정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던 것들의 부재를 깨닫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었다.



*

"아유, 너 광고 회사 다니던 것 반만 해도 논문은 쓸 수 있지 그럼."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려진 지폐를 내 손에 쥐여 주며 선배는 확신에 찬 얼굴을 해 보였다. 너 경쟁 PT 때마다 몇 날 며칠 밤새던 것 생각해봐봐, 다 잘 하게 되어 있으니까 걱정 말구 잘 챙겨 먹기나 해.

나도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하던 말을 믿는 선배에게 들으니 좀 더 마음이 놓였다. 이런 회사에서 이렇게 빡세게 일했는데, 이만큼의 시간 동안 그만큼의 미친 날들을 겪었는데 '설마' 이보다 더할까.


내가 그 '설마'에 때려맞은 건 굳이 하루 15시간씩 논문을 쓰느라 피가 말랐던 이듬해 여름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첫 과제를 제출해야 했던 한 달여 후였다.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아직 학생의 '감'을 탑재한 반 친구들이 주제가 어떻고 이론이 어떻다는 대화를 시끌시끌 떠드는 동안, 나는 우선 이 질문을 좀 어떻게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과제가... 뭐라구요..?'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란 곳을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는 사실도, 심지어 졸업 조건이 타과와 달랐던 덕에 논문 한 편 쓰지 않고 졸업장을 받았다는 사실도, 무엇보다 대학원도 유럽식 교육 과정도 모두 처음이라는, 알고 있었지만 알지 않으려 했던 이 모든 당연한 사실들이 과제와 함께 현실 속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어, 나, 뭐부터 해야 할까. 에세이를 쓰라고? 학술 에세이란 건 대체 무슨 장르지? 참고 문헌은 어떤 걸 어디서부터 참고하는 거야? 대체 왜 문과에서 통계를 해야 하는 거예요? 표지에는 뭘 써야 하는 건지 누가 제발 알려줘. 문법 교정도 받아야 할 거잖아 참! 아니 표지고 문법이고 일단 뭘 하는 게 과제라고?


과거의 경험은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자신감은 될 수 있어도, 그 도전을 조금이라도 쉽게 해주는 치트키는 되지 않았다. 지난날 내가 어떤 영웅 대서사시를 썼건 지금 눈앞에 놓인 것은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일, 살아보지 못한 삶일 뿐이었다. 1.5평 남짓 학고방에서 고군분투하던 유학생의 첫 발은, 그렇게 '젖 먹던 힘'을 필요로 하는 아기의 첫걸음마와 같은 것이었다.



*

나는 내가 유학이라는 것에 대해 딱히 대단한 기대도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직이라는 선택이 나를 무릉도원으로 보내준 것이 아니듯 유학이라는 도전도 그것만으로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진 않을 거라고,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딱히 힘들 일도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고.


눈물의 레몬 케이크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사실은 내가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그곳에서의 삶은 이곳에서의 삶보단 나을 거라는, 그곳에서는 어려움도 외로움도 견딜만 할 거라는, 직장인이 아닌 삶은 당연히 이보다는 쉬울 거라는, 그러니까 '다른 삶'에 대한 막연한 긍정을 품고 있었다는 걸.


'에라이!'가 아닌 진짜로 떠난 유학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결국 어떤 새로운 선택과 도전도 곧 다시 지금의 삶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조금 길게 계획한 여행쯤으로 여겼던 1년이라는 기간은 삶이 되기에 실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겪을 것이고, 변할 것이고,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그 달라 보였던 삶도, 두려울 정도로 새로웠던 도전도 다시 내가 살아내야 할 평범한 매일이 된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은 몰랐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또 다른 이름 모를 '다른 삶'에 막연히 마음이 왈랑거릴 때마다 나는 열심히 기억하려 애쓴다. 내가 어떤 다른 삶을 생각하든 그 모든 상상과 환상의 출발은 오늘의 내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10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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