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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Feb 19. 2021

허세, 허영과 인문학

<작가의 생각 | 노트>

허세, 허영이라는 말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허세, 허영의 최종 목적이 사람을 기만하고  기만을 통해 무언가 이득을 취한다면  <부정적 인식> 충분히 합리적이다. 반면에 인문학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단순한 긍정적 인식을 넘어 지성이 추구해야 하는 어떤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해야  가치,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기준으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합리한 어떤 것일 , <인문학>이라고  수는 없을 것이다.

허세, 허영과 인문학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정의하고 대립하는 지점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개념은 대중 사이에서 언제나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허세와 허영을 꾸짖고, 허세와 허영은 인문학을 이용하는 식으로.

허세, 허영, 그리고 인문학.
이것은 언제나 사회 문제의 근원에 닿아 있다. 인문학은 허세, 허영의 중요한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문학은 신학에 대한 저항으로 등장했다. 인문학은  이후로  세계의 패러다임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신학이 의식을 지배하던 세계는 인문학으로 대체되어 세계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신학이 지배층의 기본 소양이었듯이, 인문학이 그를 대체하게  이후, 장엄한 전례를 통해 신학을 과시하던 것처럼 사람들은 인문학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신학은 <사제> 통해서만 과시할  있었다. <사제> 신을 대리했고, 사실상 절대적 권력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전례> 특별히 장엄했다. <사제>이외에는 누구도 범접할  없을 만큼 특별했고, 장엄했다. 이러한 허세, 허영의 잔재는 현대에도 남아 있다. 여전히 사제들이 그것을 과시하는 전례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독점>했던 시대에 비한다면 이는 매우 파격적인 변화라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은 달랐다. 문맹이 아니라면 누구나 지식과 정보, 소양을 쌓을  있었다. 적어도 사제라는 극소수 특권층에 비해 비문맹은 비교적 폭넓었기 때문이다.

신학에서 인문학으로 패러다임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신학> 전례에는 그것이 성찰, 숭상의 본질로 삼은 <>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연적으로 저항에 직면했고, <신학>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학> 오랜 시간에 걸쳐 신이 사랑한 인간에게로 서서히 되돌아오게 되었다.  과정을 통해 사제라는 신분은 조금이나마 탈특권화가   있었다.

인문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신학> 전철을 밟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신학의 전철을 밟은지  오래된 <인문학> 바탕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과 더불어 눈부신 발전을 이룬 문명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질되고, 폭력과 전쟁을 비롯한 많은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이제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또한 사소한 일상 속에서는 그만큼 사소하게 인문학을 빌어 허세를 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학이 매사에 신을 내세웠다면, 인문학은 문명을 내세운다.  인문학이 말하는 문명에서 <사람>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이 부재했던 신학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 있다.

허세, 허영을 극소수의 일부가 독점하는 , 그것을 대중 다수가 공유하는  이외에 신학과 인문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의문 또한 허세, 허영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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