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생각 | 노트>
인간은 과연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신을 창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그 정의(justice)는 얼마나 정의(just)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을 창조한 신을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숭상하게 만들었다. 또한 법은 정의를 창조했다. 그리고 법은 정의를 수호한다는 신성을 부여 받았다. 사제가 신을 대리했듯이, 법은 정의를 대리하거나, 그 자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인간이 신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졌든 그것은 누구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것이 신성이건, 무엇이건 오로지 인간 내면의 믿음에 달렸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사회적 약속을 넘어 정의 자체가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믿음에 따른 자의적 선택이 아닌, 강제 의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제 의무는 곧 정의가 되고, 정의가 사회적 합의 이상의 신성을 지니게 된다면 그 법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사악하게 억압된 순결에 지나지 않는다.
법은 사회의 합의 안에서만 정당할 수 있다. 사회의 합의는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합의, 약속은 그 사회 다수의 이해관계, 이익을 추구한다. 물론 <이 약속은 얼마나 정의로운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은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문명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정의(justice)라는 개념 속에 <얼마나>라는 정도의 양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얼마나>라고 언급되는 정도의 양이란 타협, 즉 실현 가능한 약속을 뜻한다.
법이란, 정의 자체라기 보다는 사회 집단, 공동체가 인정할 수 있는 <상식>을 기준으로 탄생한 하나의 약속 혹은 계약일 뿐이다. 법이 정의를 규정한다는 것은 법률을 해석, 적용, 집행하는 기관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사제처럼 극소수 특권층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 법이 사회 상식이 아니라 정의를 기준으로 탄생했다면, 법은 상대적인 규율이 아닌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는 법과 규칙이 아닌 그것을 해석, 적용, 집행하는 기관과 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지키라고 하는 것을 지켜야 하는 상태가 된다. 즉, 사제가 극소수 특권층으로서 신을 대리하며 사회를 지배했던 것처럼 그 관료 노동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절대자 내지는 특권층이 되는 것이다.
시선을 좁혀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 보자.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법감정>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말은 법을 해석, 적용, 집행하는 기관 종사자들이 유권해석한 <법 이외의 반문명적 대중의 의식과 행태지만 거스를 수 없는 집단의 위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법은 문명이며, 법 이외의 다른 사회적 요구는 반문명이라는 의미로 내린 <사회적 합의> 혹은 <사회 상식>을 내려다 보는 그들의 정의(definition)인 것이다.
법이 곧 정의이거나, 정의를 모태로 하고 있다면 법은 더 이상 사회 공공에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게 된다. 그 반대로 대중 모두가 이 법을, 아니 정의를 숭상해야만 한다. 이는 법이 사회적 합의, 약속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드디어 법은 문명의 결과로서 창조물이 아닌 문명의 절대자로서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 법이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사제처럼 소수의 특권층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문명과 반문명, 법과 불법을 규정하고 그 권능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사제가 신을 대리하며 신 자신인 것처럼 굴었듯이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정의 그 자체인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사도란, 정의의 대리자란 가장 부조리한 자로서 법의 칼끝이 닿지 않거나 굳이 법을 적용할 대상으로서 논할 필요가 없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것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 이전에 얼마나 상식적인가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상식이란 그 사회가 처한 그 시대가 결정하고 그 현실을 반영한다. 정의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법 역시 당연히 상식에 기반한다. 법감정에 반한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는 뜻이다. 마치 정의(justice)는 고차원적인 가치이고, 상식은 저급한 것이지만 저급한 다수 집단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자들의 불만이 섞인 말 중 하나가 <법감정>이라는 말이 아닐까.
이성적이지 못한 저급한 대중 다수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법정의>라는 상식은 존재할 수 없다.
대중의 합의가 없는 곳에는 상식적으로 법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든 가치는 너무도 당연하게 상식을 초월하지 못한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정의로우며, 가장 상식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