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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Mar 01. 2021

사람과 노동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 1

사람에 대한 많은 정의(definition)가 있다.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 감정적 동물, 경제적 동물 등등. 그러나 그 정의가 무엇이든 결론은 사람 역시 동물이라는 점에 이른다. 사람은 동물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욕망> 지향적 존재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란 존재는 욕망 지향적 <동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 현실이다. 욕망 자체로서의 <괴물> 혹은 <기계화된 동물>이라고 새롭게 개념 규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사회적 괴물, 정치적 괴물, 감정적 괴물, 경제적 괴물 등등.

이기적인 존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회의적인 개념이 전혀 이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과 사람을 예를 들어 사람이 왜 이기적인지, 이기적인 사람은 어떻게 사회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

사람은 노동을 통해 생산하고 그 결과로 재화 혹은 자본을 얻게 된다. 이미 이 관계에서 사람은 생산의 도구이며 자본의 객체가 되어 있다. 물론 동시에 생산과 자본의 주체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래된, 새삼스러운 지적은 아니다. 심지어 사람은 사람을 착취하기도 한다는 고전적인 관점도 존재한다.

자본과 생산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되면 객체로서의 사람과 주체로서의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주체로서의 사람은 객체, 도구로서의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사람만이 사람으로서 온전할 뿐만 아니라 분명 사람인 또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노동은 그렇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사람은 소유 자본만큼 자유로울 수 있고 또 그만큼 주체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객체와 도구 그 자체로서 소모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로부터 정도에 따라 조금씩 덜 소모되는 객체로서의 사람들이 수많은 단계, 계층에 걸쳐 존재한다. 그러나 주체로서의 사람들은 극소수로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객체로서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노동에 대해 자발적이며 적극적이다. 그 노동의 결과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이며, 모두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노동과 완전하게 분리된 채로 주체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을 통해, 그 대가로써 삶을 영위하는 모든 직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노동과 경제의 관점에서 완전한 주체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자신을 도구로 하지 않는 한 노동이,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이 노동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즉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결과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생산성에 있어 월등하게 효율적인 기계를 생산하게 되고 이것이 사람의 노동을 제한하거나 없애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 등 기계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속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필연적으로 노동에 의한 지속적인 생산과 소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계에 밀려난 사람의 노동, 그리고 기계에 의해 이루어진 생산을 통한 결과물로서의 이득을 사람은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도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기계를 만드는 일자리가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창조와 생산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람을 위해 탄생한 기계지만 결국 사람은 생산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기계와 그 기계를 운영하는 자본을 위해 소모된다. 노동에서 사람이 배제된다고 해서 생산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산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기계 창조에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한 생산 증대, 생산 비용의 절감으로 인해 이윤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다.

기계에 의한 획기적인 생산 증대, 생산 비용의 절감으로 인해 일자리는 줄어든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소득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기계는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운영하는 자본은 계속 확대, 증가하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빈곤해지게 된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부유해지고 대다수는 빈곤해지는 구조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소득을 위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정치적, 사회적 동물인 사람의 문제를 공동체의 보편 문제로 인지, 인식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욕망 지향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어느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부유해지는 반면 어느 사람들은 생존의 극단에 내몰리게 될 수도 있다.

부와 생존의 양극단. 이것은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삶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존재하며 그들이 소수이며 거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람의 욕망 지향은 동물로서 존재한다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괴물>과 같은 존재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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