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빛초록 Mar 30. 2022

테니스장의 귀여운 방해꾼

90년대 동네 테니스장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단지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테니스장이 있었다.

테니스장에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다시 다음 겨울이 올 때 까지 봄, 여름, 가을동안 아저씨들의 기합소리와 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엔
아빠들의 여가시간을 방해하는 어린 방해꾼들이 있었으니, 바로 나와 내 친구들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적 유치원을 다닐즈음까진 아빠와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았다.
집에서 같이 인형놀이도 하고, 색칠놀이도 하고, 주말이면 서울 방방곡곡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서자 점점 아빠가 나랑은 놀아주지 않고 친구들이랑만 놀러다니는게
굉장히 배신감이 느껴졌다. 아빠가 안놀아준다고 그러려니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안놀아주면 내가 아빠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주말 아침마다 아빠를 따라 테니스장에 나섰다. 이른 아침이면 테니스장에 있는 어린이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괜히 공 한번 집어 으쌰-  세게 던져봤다가, 돌아다니는 라켓을 들어 휘두르다가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놀라 휘청하곤, 어디 누가 본 사람 없겠지? 하고 주위를 돌아보곤  새침하게 휙 돌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투스텝을 밟았다.
테니스코트를 그리는 하얀색 분말이 나오던 끌차도 끙차- 하며 끌어다가  이름도 써보고, 하트도 그렸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체육부장만 쓸 수 있게 해서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아침의  테니스장에서는 모든게 내 맘대로였다.


20여분쯤 지났을까, 테니스장에 동네 아저씨들이 길쭉한 라켓 가방을 메고서 어슬렁 거리며 도착했다.
그당시 참 신기했던 점은, 아저씨들은 서로 인사할 때 손바닥을 내밀어 흔들지도 않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도 않았고, 그저 멀대같이 긴 팔을 하늘위로 휙 올렸다가 휙 내리는 인사를 했다.
저게 무슨 예의없는 인사인가 싶었지만 서로는 참으로 반가워보이기에
나이먹은 아저씨들이 개발해낸 새로운 인사법이려니 하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아저씨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테니스복을 입고 있었다.
원색을 좋아하는 분은 새빨간 바지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기도 했는데,
짱구가 크면 저렇게 거대한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은 옷을 입을까? 싶어 신기하면서도 징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리 아빠가 입은 테니스복이 가장 예뻤다.
별다를 것 없는 블랙앤화이트의 조합이었다.
까만 반바지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은 아빠는 피부가 엄청 하얘서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테니스 코트 아래 가장 빛나는 멋쟁이었다.

사실 피부만 보면 백곰이 테니스를 치는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옥의 티라고 한다면, 아빠가 쓴 풍뎅이색 같은 고글이었다.

모양은 멋진 네모 모양도아니고, 아래는 둥글고 끝은 뾰족하게 한쪽으로 올라가 있었는데,
그 고글만 쓰면 백곰이 저팔계로 변신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나는 백곰이 좋은데 아빠의 눈이 아프지 않으려면 저팔계로 변신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나는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온갖 꽃무늬가 뒤섞인 프릴 원피스를 입고 팔랑팔랑 테니스장을 누비다가
심심해지면 높~은 테니스 심판 의자에 올라가 앉곤 했다.
어린이가 올라가기엔 꽤나 높았고, 올라가는 사다리가 가파르고 띄엄띄엄했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기장의 풍광은 정말 아름다워 언제나 성큼성큼 올라갈 마음이 생겼다.
올라가서는 아저씨들의 경기 심판이되어 판정도 하고, 점수판도 넘겨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편파심사를 했던 불량 심판이었다.
심판 실수로 점수판을 잘못 넘기더라도, 심판이 귀찮으면 그대로 진행해야하는 경기였다.
나는 아빠가 나한테 친절한 날엔 아빠에게 점수를 주고, 아빠가 미워진 날에는 상대방 점수를 높게 주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아저씨들은 그게 뭐냐고 항의하며 따지곤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않았다.

심판의 판정이 너무 심해지면 아저씨들은 나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심판의자에 앉아있으면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피부가 까맣게 타버린다거나,
너무 높아서 위험하니 어서 내려오라고 혼쭐을 낸다거나, 했지만 나는 고집쟁이 심판이어서 통하지 않았다.
딱 한가지 통하는 방법이라면, 더운 날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대접한다면 내려가 주었다.
사실 딱딱한 심판의자엔 1시간을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는데, 맛있는 간식을 사줄 때 까지 버틴거였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놀다보면 점심시간이 왔다.
그때서야 친구들은 늦은 밥을 먹고 테니스장에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난 나는 더 신나서 발을 막 구르며 뛰어다녔다. 이제는 혼자도 아니어서 더 힘이 세진 방해꾼이되어 의기양양한 것이다.
우리는 테니스 경기중인 코트 중간을 손을잡고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가로질러 뛰어다녔다.
처음엔 "쟤네들 봐라~"하고 잠시 쉬어갔던 어른들이 "이젠 진짜 그만해라!"하고 엄하게 호통을 칠 때 까지 우리는 언제나 뛰었다.

연 황토빛의 테니스장 흙먼지가 뽀얗게 위로 올라오고, 먼지의 소용돌이 속에서 뛰어놀다 언뜻언뜻 보이는 형형색색의 테니스복들이
마치 하얀 솜사탕 위에 뿌려놓은 별모양 스프링클 같았다. 그렇게 먼지반 땀반 범벅이 되게 뛰어노는 주말을 사랑했다.

그렇게 뛰어놀다가 지치면, 우리는 꽃다발 만들기 대회를 개최했다.
테니스장 주변에는 지천에 들꽃들이 피어있었다.
민들레, 토끼풀꽃, 강아지풀, 제비꽃,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서로 30분간 흩어져 저마다의 꽃 조합으로 꽃다발을 만들고는 그날그날 가장 잘 만든 친구에게 박수도 쳐주고 우리들끼리 종이로 접어 만든 1등 금메달을 걸어줬다.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없었지만, 1등한 날에는 하루종일 기분이 구름위에 둥둥 행복히 떠있었다.

그 날들에 친구들과 함께 크게 웃었던 그날들에
다시 한번 갈 수 있으면 좋을것만 같은,
편파판정을 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요즘.
그날을 떠올린다.

눈부신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그 속에 불어오는 풀내음, 저 멀리 들려오는 테니스라켓이 바람을 가르다 탕-하고 공을 쳐내는 소리.
나이스~ 어이~ 하고 소리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한번 내 주위를 감싼다.
다시 나는 어느새 그 속에서 웃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비가 내리던 봄날을 기억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