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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May 10. 2023

별사탕 같이 깨어지는 사람들


M은 어릴 때부터 알았다. 교복 치마는 길고 머리는 짧았다. 달콤한 미소와 작고 부드러운 손과 종달새 같은 목소리가 사랑스러웠고, 대학생이 된 이후 연애를 쉬지 않고 해 왔다. 별자리의 농간인지 여린 마음 때문인지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상처 입혔다. 이러한 유구한 전개의 끝은 보통 나처럼 - 사랑 안 해, 사람 안 믿어를 입에 달고 사는 불신론자가 되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M은 항상 사랑을 믿었다. 누구를 만나도 언제나 좋은 점을 찾아냈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은 더 빛나는 순간들로 덮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연애를 뚫고 지나가면서 자주 다른 색의 껍데기를 입었지만 본질은 언제나 같았다. 영원한 사랑을 믿는, 그래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강한, 귀여운 돈키호테. M을 보면 별사탕이 떠오른다. 



크고 탐스럽게 만들어낸 빠알간 사탕이 선반 위에 둥글게 앉아있다가 어느 날 쾅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모습 그대로 또 다른 달콤한 존재가 된 양. 


정호승 시인의 한 구절을 마음에 품고 살아서 더 그러는지도 모른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B는 연말정산을 하는 어른이 되어서야 만났다.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진 다 문학이었다. 집안사가 복잡하고 뭘 하든 운이 상당히 없는 편인데, 그걸 숨기지 않고 말하면서도 기구하지 않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처음 같이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날, B가 한 말이 혀 끝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내가 별이잖아. 그니까 주변이 새까맣지."



그 말을 하고서 B가 지었던 웃음은 정말로 - 몇 광년을 날아온 것처럼 아득하게 멋졌다. 그에게 밤은 빛나기 위한 무대였다. 제 밝기를 확인할 장치였다. 어두운 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쓰고, 한강을 걸으며 울던 내 구질구질한 얘기를 듣고도 비슷한 말을 해줬다. 너가 거기서 건져낸 것들을 보라고. 그 뒤로 사람과 예술을 대할 때의 네 모습이 좋지 않냐고. 그와 대화하면서 나는 한 번 더, 함부로 나아갔다고 단언하지 않고 아픈 자리에 충분히 머무르길 잘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인공조명을 다 끄고 매연까지 걷어낸 밤하늘에 맑게 뜬 내 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 사실은 해가 밝을 때도 별은 보이지 않을 뿐 떠있으니 - 그에게 밤이 찾아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전에도 (놀랍게도 3번째) 접촉 사고로 아스팔트 도로에 넘어지는 바람에 피부재생 주사를 맞고 있다는 B의 말에 아이고오- 하며 끙끙 앓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고 B는 말했다.


"느낌 있어. 남자다워졌어."


바보 같았다. 

하지만 깨면 깰수록 더 반짝이는 게 꼭 별사탕 같아서 그만 그래 좋겠다 -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별사탕 같이 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 알 한 알 뾰족하니 첨예하게 깨어있다. 한 알 한 알 맛도 향도 색도 다르다. 

앞으로도 조금 어설픈 모양새로 이래저래 깨어질 예정인 듯한데 -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결국엔 반짝이고 마는 그들의 여정을 가만히 응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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