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해외 마케팅
줄곧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언니들이 유창하게 젓가락질하는 모습을 보고 혼자 눈에 불을 켜고 꼼지락꼼지락 연습을 하더니 독학으로 젓가락질을 배웠다.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나를 일찍이 어린이집에 보낸 이유도, 언니 오빠들이 유치원에 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생떼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꿈도 많았다.
어렸을 때 꿈이 계속 바뀌었지만 공통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해외/문화예술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분야였다. 거기에 집안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 아니 사실은 어려웠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하고 지방에 있던 집을 떠나 주거 독립을 하게 되자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물꼬를 터 갔던 것 같다. 공연 기획을 꿈꾸며 관련 대외활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춤을 무대 위에서 추기도 하고, 꽤나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냈다. (더 과감하게 놀걸.)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봐 교환학생을 가지 않은 것은 아직도 조금 후회가 되긴 하지만.
그렇게 대학교 4학년이 되고, 정말 치열하게 몰입했던 취업준비 기간에 들어갔다. 바쁘게 인턴생활을 하고, 어학 점수를 준비하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첨삭하고, 인적성 시험 준비와 면접 준비까지. 다른 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눈앞에 놓인 것들에 집중했다. 그렇게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입사의 문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 '나는 안될 것 같은데.. 근데 제일 좋은 회사니 일단 넣어보지 뭐'라는 생각을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했었다. 그런데 서류에 합격하고, GSAT를 통과하고, 면접까지 가게 되면서 점점 붙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최종합격했다. 누구나 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입사 후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은 계속되었다.
삼성그룹 연수(SVP)와 삼성전자 연수, 직무 연수와 최종 부서 배치까지.. 내가 입사를 할 시절에는 '삼성전자 해외 영업/마케팅'의 비교적 큰 덩어리로 문과계열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사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사업부와 직무/부서는 정해져 있었기에, 입사를 했음에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느낌이었다. 모든 연수와 프로그램들에 성실히 임했다.
그렇게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사업부와 부서로 배정을 받았다. 첫 1년 동안에는 상품기획 업무를 했는데, 나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1년 차 신입사원임에도 한 상품의 PM으로서 상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전 프로세스를 리드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발, 영업, 디자인 등 다양한 직무의, 최소 10년부터 많으면 20년의 연차를 가진 분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고 우리 팀이 원하는 사양을 제품으로 구현해 내는 일을 이제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된 26살의 어린 사원에게 믿고 맡겨주셨다는 점이 정말 감사하다. 많이 불안하셨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부딪혔고, 나름 괜찮은 성과를 보인 덕분에 인정을 받았다. 덕분에, 1년 뒤에는 최종적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마케팅팀으로 팀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성장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견뎌내야 이루어진다.
회사의 규모가 크다 보니 마케팅팀 안에서도 팀이 세분화되어 있는데, 내가 옮긴 팀은 디지털마케팅그룹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셜/웹 데이터 분석과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한, 소셜 업무를 맡게 될 줄 알고 지원을 했는데 내 상상과는 달랐으니까. 거기에 내가 제일 약하고 자신 없는 분야가 숫자와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데이터 분석이라니! 상품기획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숫자를 필수적으로 다뤘지만, 나의 업무를 숫자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숫자'만'다루는 일은 정말 다르니까. 사실 너무 싫었다. 팀을 옮긴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 기회를 오히려 '내가 자신 없던 것을 배우는 시기'로 삼기로 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니 업무 습득력과 응용력이 높아졌다. 내가 정말 자신 없던 분야가 자신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소리를 키워가니 자연스레 팀 내에서 인정도 받고 기회도 생겼다. 진짜 성장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견뎌내야 이루어짐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