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소김 Apr 04. 2024

삼성전자 마케팅을 퇴사한 이유

이제야 정리해 보는 퇴사 결정 사유



2017년 11월의 어느 날, 떨리는 마음으로 접속한 삼성그룹 채용 사이트. 조심스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간 페이지에는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떠있었다. 그 얼마나 고대했던 화면이었는가. 수많은 날을 합격 화면을 인증하는 상상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당장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타 회사 면접 스터디를 취소하고,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약 6년이 지난 2023년 8월 15일, 나는 삼성전자를 퇴사했다.


삼성전자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수많은 기회와 도전을 안겨주었다. 1년 차에는 낯선 환경과 적응되지 않는 관계들에 힘이 부쳐 화장실에 들어가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햇병아리였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퇴사 무렵에는 어느 정도 짬(!)이 차 새로 입사한 신입 사원의 업무 OT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임을 느낌⋯




삼성그룹연수 SVP. 뭐든 열심히했다.



그 유명한 프라이드 인 삼성.




다 담기에는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 있기에 짧게 조금 줄이자면, 입사 초기에 글로벌 상품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내부 직무 전환을 통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마케팅 팀으로 이동했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마케팅. 감사하게도 SEO와 데이터 분석과 같은 Tactical 한 부분부터 웹, 소셜, 제품 캠페인까지 정말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업무가 매우 세분화된 삼성전자에서 드문 케이스였다. 무엇보다 한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나는 디지털 마케팅의 중요성과 그것이 전 세계 소비자들과의 소통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감사한 이 기회들과 단기간의 큰 성장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나는 정말로 이 길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1년간의 휴직 그리고 그 끝에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나의 미래가 명확해서 불안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사이클이 보였다. 1년 뒤, 3년 뒤, 10년 뒤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연봉도 차분하게 오르고 또 때로는 높은 고과의 즐거움 혹은 성과급의 즐거움을 느끼겠지. 누군가는 이를 안정적이고 마음 편안한 삶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깜깜한 세상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다양한 업을 영위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나의 인생의 핸들은 내가 잡고 싶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업무 혹은 프로젝트를 운 좋게 맡게 됐거나 나의 실력으로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이유로 혹은 내부 정치 싸움으로 인해서 이리저리 휩쓸리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애정을 갖고 하던 일들, 책임지고 이끌던 일들을 타의적인 이유로 못 하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경험이 많으신 분이 정말 큰 그림에서 봤을 때 그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으니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내 의지대로 선택하지 못한 것이 컸다. 그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든 효율적이지 않든 나 스스로가 직접 부딪히면서, 이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을 져보고 그 책임에서 오는 무게감을 한번 나도 이겨내 보면서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을 해야 되는데 나 스스로가 너무 수동적인 성향으로 바뀌어갔다. 그것에서 오는 무력감을 느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무력감으로 인해서 사실 당시에는 정말 목소리도 작아지고, 예전이라면 당당하게 얘기했을 의견들을 그냥 넘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어요. 사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라며, 나 스스로가 이렇게 위축되고 작아지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잃은 것 같고 내가 좋아했던 나의 그런 밝고 긍정적이고 열정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줄어드는 것. 그게 내가 아닌 외적인 영향으로 변한 것. 그게 스스로 못 견딜 만큼 싫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단 한 가지 큰 이유는 인생의 후회를 최소화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물론 조금은 아쉬움과 후회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런 부분이 가능한 적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나날들로 내 인생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은 조금 힘들더라도 나 그래도 그때 열심히 살았지 - 그 인생이 그 자체로 소중하기에 다른 무엇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되기를 바랐다. 그 후에 그렇게 후회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퇴사를 결정을 하게 되었다.




아마존 창업자 Jeff Bezos 역시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퇴사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사실 이거 하나는 전하고 싶다. 퇴사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마냥 좋은 선택도 아니다. 결국 나를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커리어를 정말 훌륭하게 쌓아가시는 분들은 또 그게 본인의 지향점과 맞는 길이라고 선택 길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신 것이고, 그 분야에서 정말 최선을 하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꼭 회사를 나와서 창업을 한다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그 지향점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나씩 해 가는 것이 인생에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퇴사 이야기를 이곳에 쓰게 된 이유는 내가 가졌던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아,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나랑 비슷한 갈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정말 어지러웠고 아득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책도 보고 모임도 나가봤지만 대부분 성공에 대한 이야기일 뿐 고민과 걱정 같은 조금은 진지해지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아 답답했다. '어쩜 저리 다들 잘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휴직을 결정했고, 마켓노드를 시작했고, 그렇게 삼성전자 퇴사까지 이른 나지만 사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씨름했고, 아직도 씨름 중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면의 힘과 자신감이 상승됨을 느끼고 있다. 하나하나 내 손길에 따라 만들어가고, 내 결정에 책임을 다하면서, 또 때로는 누군가와의 협업을 통해 큰 책임을 느끼면서. 분명한 것은 나는 내 일을 직접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군가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결국 내 길을 찾아 조금씩 해내면 된다고. 회사를 나와도, 또는 회사를 나오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당신의 어떤 선택이든 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퇴사 후 현재는 이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marketnod.com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앞두고 훌쩍 눈물이 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