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점의 미래'와의 만남
커버레터 주제로 아직도 쓸게 남아있다니 신기할 뿐이다.
이 브런치에서의 커버레터(cover letter)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의미하며, 좀더 넓은 의미로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나 직장 혹은 하고싶은 일 살아보고싶은 인생을 모두 포함하여 미래에 보내는 나에 대한 소개 및 편지로 해석하여 표현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그동안 다녔던 직장의 이름, 학교의 이름, 활동했던 유명한 프로젝트명, 얼마나 다니고 준비했는지의 시간의 연수를 주요 경력으로 표현하지만, 여기에서의 커버레터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은지 살고싶은 미래를 상상해보고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글로 남겨보는 데 중점을 둔다.
그리고 이 커버레터를 받는 대상-나의 경우 살아보고싶은 인생을 뚜렷하게 찾고자하며, 이를 위해 포기할건 포기하고 집중할건 집중하여 하루에 작은양이라도 한발짝이라도 전진했을때 만족과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글로 써 놓는 미래는 그 자체로 큰 생명력을 가진다. 2016년부터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기록해온 미래는 하나하나 현실로 살아졌고 다이어리를 들춰볼때마다 현재시점에서 만나는 '과거시점의 미래'에 대한 신기함이 있다.
2016년 당시 나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임신 당시 자꾸 처지는 몸과 기분에 태교로 도서관에서 문득 집어든 '만화로된한국사'를 시작으로 뭐든 공부를 해보자했고 이왕 하는거 목표를 두고 공부하자하여 국가직 공뭔 시험으로 이어졌다.
점수 0.5점으로 합격의 당락이 갈리는 깨알같은 시험준비에 스트레스를 느낄수도 있었지만. 합격과불합격 이전에 본인과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만족과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남길 바랬고 그래서 시험 공부와 함께 나와 함께 했던 것은 다이어리였다.
입덧의 길고긴 터널을 지나 배가불러와 배가땡겨 도서관책상의자에 오래못앉으면 못앉는대로. 저혈압이 와 중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도서관 소파에 잠시 누워있게 되면 또 그러는대로. 힘이 부쳐 공부를 못하는날은 하루에 한쪽이라도. 또 부족한 실력은 그 실력대로 모의고사점수를 다이어리에 담담히 적어놓았고 다른 한쪽에는 '4/8 국가직 합격' 이라는 글을 또 담담히 적어놓았다. 현재의 실력이 부족할수록 시험당일 신나게 문제를 푸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이럴때쓰라고 상상이 있는거니까.
3월 중순이 되어도 진통이 없자 시험장에 갈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다. 그날의 다이어리를 보면 '아기는 왜 나올 생각을 안 하지..'라는 글 한쪽면에는 '4/8시험에 국어90 영어90 한국사90 행정학 90 사회90을 받고 최종합격'이라는 미래에 대한 편지를 담담히 써놓았다.
아무 기척도 없던 막달의 중순을 보내고 반갑게도 3월 19일에 확실한 진통이 왔고 자연분만후 반가운 아이와의 만남..마치 아이는 이 모든과정을 이미 알고있다는듯...엄마는 공부에나 집중하라는 듯...잘자고 잘먹었다. 밤에는 모유유축, 낮에는 모유수유를 하면서 틈이 나게되면 ox문제로 복습을 했고..
4월 8일에는 시험장에 배정된 맨 뒤의 책상에 오롯이 앉아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험장에서 신기하게도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문제를 막히지 않고 풀 수 있었고 그 해의 국가직 시험 난이도는 이례적으로 쉬웠다고 했다. 내가 실력이 잘 준비되었나보다라는 착각에 혹시나해서 이어서 쳤던 서울시 시험에서는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경험하게 되면서.. 임신과 출산과 시험과 합격을 경험하면서 이 모든 건 나의 힘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래에 쓰는 편지는 그 힘이 정말 강력하다. 그걸 경험한 사람은 현재의 장애와 어려움을 담담히 기록하고 미래에 바라는 모습 또한 담담히 기록해나가면 된다. 미래를 향한 신뢰에 미래가 담담히 반응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이걸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