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타트업(이하 A사)은 요 근래 가장 핫한 기업이다. A사의 서비스는 성공적인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또한, 새로운 신규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으레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그렇듯 A사도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A사의 모집공고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 그들은 '워라밸! 자기 계발 지원! 자유로운 분위기!'를 외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이하 B)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을 원했지만 견고한 대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전문 인재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B는 나와 함께 입사했지만 꼼꼼한 업무 처리와 사람 좋은 미소로 회사에서 유명했다. 모두가 그를 부하직원으로 두고 싶어 했던 인재였다. 매너리즘에 퇴사를 고민하던 시점에 B는 A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게 된다. 상당한 연봉 인상과 대기업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운 복지에 B는 혹하게 된다.
더군다나 말이 스타트업이지, A사는 우리 어머니도 아는 회사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 중 그 서비스를 이용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떠나가는 B를 보며 나도 조금은 마음이 동했다. 그는 이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뜻을 펼치겠지.
그렇게 스타트업으로 떠난 B는 약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거치게 된다.(사실 경력직의 수습 기간은 형식적인 거였다. 최초 제안했던 수준의 급여도 그대로 지급되었다.) B가 대기업에서 배웠던 다양한 업무 프로세스와 그와의 신뢰로 묶여있던 많은 협력업체들이 A사와의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B는 새로운 업무에 열정적이었으며, 인상된 급여에도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 종종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는 날이면 '회사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를 예찬하며 나에게 많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한동안 바빠 만나지 못했던 B를 다시 만난 건 B가 떠나고 4개월 후였다. B는 A사를 떠나서 다시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나는 속사정은 모른 체 '아니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가 좋다더니, 회사 중에 가장 관료주의적인 회사로(B가 이직한 회사는 상명하복의 문화를 가진 모 그룹이었다.) 이직하셨네요?'라고 물었다.
B는 말했다.
"그래도 대기업은 사람을 자르진 않잖아?"
B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가 처음에 A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담당 팀장은 B를 멀리했다고 한다.(심지어 채용 자체에 대해 큰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 A사 신입사원에서 시작했던 팀장은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직무에 대해 전문성을 지닌 B를 멀리했다. 종종 그는 B에게 '대기업 사람들은 부속품이라 주도적인 업무를 못한다.' 라며 힐난하곤 했었다. 하지만 팀장의 그런 꼬장과 차별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 묵묵히 B는 일을 했다. 하나 수습기간의 종료 시점에 팀장은 도저히 일을 함께 못하겠다며 B와 함께 일하는 것을 거절했다. 당시 B의 팀장과 인사 팀장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함께 스타트업을 키워낸) 인사팀장은 B를 불러 이야기했다고 한다.
'B 씨의 업무 성과가 너무 저조해서 채용을 못할 것 같다.'
'외부에 발설하지 않고 나가는 조건으로 3개월 치 월급을 일시불로 주겠다.'
'그리고, 동의하시면 이직하실 때 레퍼런스 체크가 오면 좋게 이야기해드리겠다.'
'좋게 이야기하겠다.'
반대로, 이 제안을 거절하면 안 좋게 이야기하겠다는 이야기. B는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그들은 B의 미래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 결국 강압적인 회의실에서 짧은 미팅 끝에 B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개인 일신상의 사유로 퇴사.
아직도 A사의 서비스에는 B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서비스가 있다. B가 직접 기획하고, 밤새서 완성했던 그 서비스. 만약, 성과가 저조했다면 그 서비스는 왜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걸까?
실제로 사회에 나오니 기업의 이미지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기업의 이미지 마케팅은 중요하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냐 안 받냐의 문제니까. 외부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종종 내부 직원(이라 쓰고 내부 고객 읽는다)에게 너무 인색하다. 기업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은 그 기업의 가장 자발적인 홍보대사이고, 충성도 높은 고객이다. 내부 고객에게 함부로 하는 기업은 절-대 더 성장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위의 이야기를 B에게 들으며 느낀 것은 스타트업이라고 선하지 않다. 그들이 기술적으로 선도하고 일반적인 기업보다 개방적인 분위기를 지녔다한들 크게 다른 것 없다. 수많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사내 정치와 사일로 효과는 동일하게 발생하는 것 같다.
경력직을 고용해 3개월 만에 해고한 그 회사는 어디까지 성공할까? 아니면 그들은 혁신의 원천에서 그저 그런 기업으로 전락한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