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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Aug 12. 2024

사람은 변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을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위 문장들을 숱하게 말해왔고, 또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다른 인생을 꿈꾼다. 내일 당장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사랑에 빠져 해피엔딩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제와 똑 닮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런 영화 같은 일은 왜 일어나지 않을까? 나름대로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그 생각과 말에 기반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피하게 될 테니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그 생각은 그대로 스스로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나는 변하지 않을 거야, 내 인생에 변화는 없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 거야"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살게 된다. 스스로 진리라 정의하고 믿음을 가진 생각 때문에 자신조차도 변할 수 없고, 당연히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하지만 그냥, 우연히, 어쩌다 변하지는 않는다. 생각과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야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과 사고는 어떻게 변할까? 삶의 위기를 마주하는 순간, 삶이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순간, 우리는 생각과 사고의 전환을 맞이한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by 톨스토이


나 역시 반복해서 연애에 실패하고,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면서 점점 불안도가 높은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내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압도당했다.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지고 불안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일상은 엉망이 되어갔다. 결국 정신과에서 진정제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겨우 몇 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다.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조금 호전되다가도 회사나 일상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불안증은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인생이 어느 한 구간에서 멈춰서 그 자리만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자기 전 진정제를 먹으려 약봉지를 내려다보는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처럼 살면 앞으로 남은 생을 약을 먹으며 불안감을 누르기 위해 애써야 할게 뻔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적어도 이런 삶은 아니었다.  


의사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약을 먹지 않았고 더 이상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원래 복용량이 많지도 않았고 상태도 호전 중이었지만 심리적으로 더 불안한 느낌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인터넷에서 명상책을 검색하고, 무작정 명상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명상을 배우는데도 순서가 있을 텐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기 위해 명상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챕터로 바로 넘어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좋아지진 않았지만 약 없이 잠들 수 있었고 두근거림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보였다. 명상을 하며 나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명상의 과학적인 효과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지고 불안이 해소되면서 맑은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이전보다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지만, 그 사회성을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산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제 때 해소하지 못하면, 그 관성 그대로 계속 생존모드에 있게 된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지 않고, 계속 참고 감정을 누르기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폭탄이 되어 터지고 만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그동안 생존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번듯한 직장과 평균 이상의 연봉,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한 학력, 자격 등을 갖추기 위해 쉬지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인 사람은 나였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엄격하다. 늘 극도의 긴장 속에서 까칠한 모습으로 거만하게 행동했고, 매일 마주하는 가족, 연인, 친구, 동료에게도 예쁘게 말하지 못했다.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동안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랑 넘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다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웃으며 모든 사람을 대하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예쁘게 말하려고 했다. 그동안 날이 선 관계로 지내던 한 직원은 하루 아침에 달라진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마치 그 눈빛이 "뭐 잘못 먹었나? 드디어 미친 건가?" 이런 것 같았다. 그런 눈빛까지 웃음으로 넘긴 후, 우리는 날이 선 관계에서 같이 커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과 사이가 좋아지는데, 상대방이 변한 건 없다. 회사나 주변 사람들이 바뀌어서 웃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든 상황과 제반 조건은 그대로였다. 바뀐 건 나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말 뿐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변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며, 나의 생각과 말, 마음을 바꾸면서 인생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한 번에 확 180도 변하긴 어렵다. 그동안 살아온 관성이 있고, 그 관성을 이기고 한 번에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매일 아침 마치는 커피를 끊는 것만큼 쉽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관성은 살아있다. 지금도 힘든 상황을 마주하면 이전의 이기적이고 세상 거만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사실 한동안 예전의 모습으로 살기도 한다. 하지만 곧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자각하며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기 위해 방향을 튼다. 기존의 관성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이 변화를 위한 도전의 날이다.


        두려움은 움츠러들고 닫아걸고 조이고
     달아나고 숨고 독점하고 해치는 에너지다.
   사랑은 펼치고 활짝 열고 풀어주고 머무르고  
         드러내고 나누고 치유하는 에너지다.

         두려움은 우리 몸을 옷으로 감싸지만,
      사랑은 우리가 발가벗고 설 수 있게 해준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틀어쥐고 집착하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게 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 1권>


지금 나는 물리적으로 불합리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 상황의 해답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주변 조건과 상황, 사람을 탓하며 그 상황 속에 갇혀 사는 삶과 가난한 마음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삶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비록 우리가 억울하거나 불행처럼 보이는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화나 원망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주는 일이다(불행처럼 보인다고 표현하는 것은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당장에는 모르기 때문이다, 지나야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을 택하기로 다짐한다.  이것이 불행처럼 보이는 이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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