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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17. 2024

당신은 지금, 갑질을 하고 있습니다!

4화

  나는 십 년 차 계약제 교원이다.

  기간제 교사라고도 한다.

  나의 첫 경력은 교과교실제 수준별 과목 강사였다. 

  그때 발을 들여놓은 이후 계속 자리가 날 때마다 기간제 교사 이력을 쌓아갔다. 

  덕분에 지금의 내 호봉은 제법 된다.

  

  그러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올해 초 구직활동을 하면서 나이가 경력을 추월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사실 이 바닥에서 십 년 넘게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웬만한 학교 현장 업무는 맡기면 다 해낼 수 있는 베테랑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그래서 나도 자신만만하게 원하는 학교에 지원을 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들여다보니,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다. 

  나이가 많은 기간제 교사는 경력을 떠나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이 협업하기 뭔가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 경력까지 쌓느라 나이가 들었는데, 이젠 나이로 밀리네. 진짜 아이러니하지 않아?"


  동료 기간제교사가 흥분해서 한 말이다.


  가만히 지난 십여 년을 돌아보았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근무한 학교에서는 한 달가량 교무실 누구도 나와 말을 섞지 않았다.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나는 차라리 그런 그들을 무시한 채 내 일을 했다. 동요하지 않았다.


  그 시기, 내가 동요 따위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 교사자격증 하나 믿고 학교로 다시 들어선다는 것은,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이 바닥에서 만날 동료든 후배든 누구든 얼굴에 철판 깔고 고개 숙일 작정이 아니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학교에 근무하던 첫날, 나는 다짐했었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고개 숙이자!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누구나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줬다. 덕분에 내 퇴근시간은 언제나 늦었다.


  교무실에서 공동구매로 좋은 물건을 살 때는 항상 내가 주문자가 되었다. 덕분에 중년의 여자 선생님은 툭하면 나를 불렀다.


  "OOO, 핸드크림 공구하자!"

  "OOO, 급식소 김치 너무 맛나더라!"

  "OOO, 쑥개떡 좀 공구해 줘!"


  나를 부를 때, '선생님, 샘' 이런 단어는 항상 빼먹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또 한 번은 학년실에서 근무를 하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를 뒷담 하면서,


  "기간제잖아!"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니 우리는 그냥 기간제였다. 선생님이 아니었다. 언제든 내일이라도 휴직교사가 복직하겠다고 하면 책상을 비워줘야 하는 존재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쌤, 쌤, 우리 반 애가 샘 수업에 그 재생산인가, OO인가, 뭐시깽인가 하는 그 수업 있잖아요, 그거, 준비를 안 해왔다고 발표를 못한다는데요!"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리고 경력이 겨우 2년 차인 선생님이, 몇 번 사석에서 식사를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쑥 이렇게 덤볐다. 너무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내 교과와 내 수업을 무시하는 건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1년 기간제교사 자리가 나지 않으면 처음부터 서류도 넣지 않지만, 이렇게 오기까지 적게는 며칠부터 많게는 몇 달까지 자리가 비는 대로 들어가야 할 시절도 있었다. 


  가장 불쾌한 경험은, 복직 교사가 방학식 다음 날 복직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개 기간제교사들은 방학식날까지 근무하고 나가야 한다. 담임이라도 맡은 날은 더 불쾌하다. 생활기록부며 나이스 업무를 거의 완료하고 나가야 한다. 관리자들도 싫어할 만 한데, 그래도 모든 선택권은 항상 복직 교사에게 있어 보인다. 


  방학 때 급여는 오롯이 복직교사의 몫이다. 이런 상황이 만약 겨울방학이라면 더욱 지독하다. 겨울에는 명절상여금에 정근수당에 연말정산환급금까지 들어오는 달이다. 그리고 교원성과급이 책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근무 일수가 모자라거나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몇 백만 원은 그냥 날아가는 거다. 물론 기간제 교사들은 언제나 대체 인력이므로 정규직 교사가 들어오면 내일이라도 나가야 한다. 계약서에 항상 그렇게 명시가 되어있다. 하지만 근무하지도 않을 방학 기간의 급여를 고스란히 가져가겠다는 생각의 정규직 교사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은 자신들의 권리이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관계는 공존의 관계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말이다. 


  물론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교사 간 차이를 두지 않은 선생님들도 아주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수많은 기간제교사들은 지금도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더 인정받으려 애쓰고 그 현장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불량교사 지침서 4>

 - 저는 이런 업무 못합니다!

 - 왜 저에게 반말을 하십니까?

 - 선생님, 이건 갑질입니다!


  또 참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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