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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14. 2024

불량교사 지침서

5일

  학교는 거대한 조직이다.

  그 속에서 종일 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수 백 명이 대화하고 소통하며 불협화음을 주고받는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거기는 바로 지옥이 된다.


  학교에는 학생과 학생의 배경인 학부모를 제외하고 동료 교사들과 교직원들도 있다.

  다른 사회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는 사수가 없다.

  신규 교사가 되면 제일 처음 당황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아무도 일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업무를 준다. 네가 알아서 찾으라는 반응이다.


  "나이스 작년 공문 보면 다 있잖아요!"


  어리바리하면, 제는 임용 합격자가 왜 저렇게 멍청해? 왜 저렇게 눈치가 없어? 머리가 나쁘나?

  뒤에서 자근자근 씹어댄다.

  또 업무를 집에 가져가서 밤새워 끝내고 오면, 제 잘난 척 심하지 않아?

  또 씹는다.


  여기에 선배사수는 없다. 다만 시집살이 고된 시누이들만 바글바글한 기분이다.


  그들은 모두 그냥 평교사다. 물론 선배 교사들이 층층시하 존재하고 교장 교감 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일반 회사나 다른 조직처럼 상하 관계도 없고 내 업무를 가르쳐줄 선배 사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교사가 좋다고 한다. 눈치 볼 것도 없고 큰 소리 못 칠 것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세상에 100프로는 없다. 눈치는 안 보지만 항상 외롭고 어떤 일이 터지면 모든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감당하기 벅참을 넘어 죽고 싶다고 한다.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명예퇴직을 앞둔 선배 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 외로운 직업이야. 그래서 우리는 더욱 동료교사가 필요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존감이 바닥을 치잖아. 그걸 안고 퇴근하면 안 돼. 동료와 수다도 떨고 술도 한 잔 하고 털어야 해. 안고 집 가면 가족에게 고스란히 쏟아버리거든. 그게 뭐야? 우리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데, 우리 가족이 무슨 죄를 졌다고...."


  참 씁쓸하고 잊히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해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오해와 편견은 갈등과 깊은 골을 만든다.

  여기는 아주 사소한 일들로 신경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잦다.

  그래서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담임교사가 보는 앞에서 그 반 학생들을 모질게 야단치고 질타하는 인성부장교사에게 과연 어떤 말과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학생들은 그 담임을 과연 바보라 여기지 않을까. 엄하게 훈육하고 교무실로 들어가 버리는 인성부장교사 등만 쳐다보고 서 있는 담임을 아이들은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늦은 밤까지 업무가 밀려 일하고 있는데 무서워 복도 불 켜 놨다고 밖에서 다 들리게 XXㄴ들, 이라는 욕바가지를 하는 야간근무반장. 일명 BTL이라고 교육청에서 학교를 짓지 않고 건설업체에서 지어 교육청이 세 들어사는 경우는 운영사라고 외부 업체가 상주한다.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이 학교 전반을 관리한다. 초과근무 쓰고 일하다가 복도에서 큰 소리로 욕설을 바닥에 질펀하게 흘리고 다니는 반장의 목소리에 너무 놀라고 화가 치민 기억이다. 과연 나도 같이 욕을 해야 할까?



<불량교사 지침서 3>


- 인성부장샘, 저희 아이들이 뭘 잘못했나요? 이 아이들도 인격이 있습니다. 복도에서 이렇게 하실 만큼 죽을죄를 지었을까요?


- 반장님, 저는 나름 귀한 자식이고 귀한 아내이고 귀한 엄마입니다. 제가 이런 욕을 들을 만큼 나쁜 짓을 저질렀을까요?



아!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나는 왜 이런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내게 욕설하는 사람에게조차 반듯한 태도와 예의를 갖추려는 걸까?  

정말 이 구역의 미친 XX가 되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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