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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7. 2024

결석 처리 하겠습니다.

1화

여기는 남쪽 해안 도시, 출근길부터 험악하다. 

터널 3개를 미친 듯이 통과해서 덤프트럭들 사이를 곡예하며 컨테이너 박스 적재장을

넘어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 숲 속 작은 집처럼 들어앉은 학교 교문을 통과한다.

이십 여 분 정도의 출근 시간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중 가장 아찔한 것은 아침 출근 시간 학부모님 전화다.

스피커폰을 켜고 통화를 하면서 내 손과 머리와 발은 온통 질주하는 트럭과 어두운 터널을 직시한다.

터널 안에서 잠시 통화 연결이라도 어려우면 학부모님은 바로 불쾌함을 쏟아낸다.


오늘 아침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터널을 지나면서 등교가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몇몇 학생들의 문자를 눈으로 스캔했다.

항구 쪽으로 노선을 돌려 학교가 가까워질 즈음, 문자 한 통이 찍혔다.


학생의 아버님 문자다. 오늘, 지금 당장, 체험학습을 쓰겠다고 한다.


아! 이럴 때 담임교사인 내 마음은 불쾌함을 떠나 당황스럽다.


전화를 바로 했다. 이런 상황은 통화가 빠른 수습임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참 서글픈 경험이다.


"오늘 할머니 댁에 가야 해서요. 선생님. 친척들도 다 모이고, 시험 기간도 끝나고 해서요."


여기까지는 부드러운 대화였다.


"아버님, 체험학습 신청서가 최소한 3일 전에는 들어와야 하고 교감 선생님 결재까지 떨어져야 해서요...."


나의 이런 설명이 시작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아, 그러면 그냥 결석 처리 하세요!"


3월 이후 학생의 잦은 지각과 병결로 통화를 자주 했지만 거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아버님, 제가 지금 기본 매뉴얼을 설명드린 거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고자 사전에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아, 오랜만에 친척들 다 모이는 자리라, 지금 당장 가야 하는데, 바빠 죽겠는데요."


정말 무례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제 이 정도 일은 화도 안 난다.

나는 담임으로 아무런 잘못도 한 사실이 없는데 아침부터 날벼락 맞은 기분이다.

결석 처리를 하든 인정결석을 하든 그게 솔직히 내 인생에 별반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아버님은 협박처럼 이렇게 내뱉고 나는 또 안절부절못하며 방법을 찾자느니

아침부터 헛소리하는 걸까.


그냥 기가 막혀 얼른 상황을 넘기고 싶다.


"지금 학교에 신청서를 가지러 오지 못하는 상황이죠? 그럼 신청서 내용 Y가 문자로 보내주면

제가 작성해서 결재 올려보겠습니다. 제가 실수한 걸로 결재 올리겠습니다, 아버님."


자신의 의도대로 내가 움직여주자,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끊는다.

아, 도대체 뭐가 미안하신 걸까.

나는 당신의 무례함과 기막힌 협박에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불쾌하고 또 한 번 실망감이 음습하고

자괴감마저 드는데, 도대체 이분은 나에게 뭐가 미안하실까.

단지 안 되는 일을 우겨서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단지 당일 아침에 전화해서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사실 그런 것은 내 마음에 아무런 상처도 요동도 주지 않는다. 여기는 학교이고 나는 교사이지 않은가.

나는 판사도 경찰도 아닌 교사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전공 관련 지식과 학습을 지도하는 그런 일을 한다. 그래서 어떤 단호한 법적 결정도 판단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그런 신념에 금이 간다.

그리고 점점 그것이 아킬레스가 되어 이렇게 돌아온다.


출근하자마자 Y 학생의 체험학습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동료 교사들 몰래 말이다. 이런 나 자신이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 그래. 여기는 관공서가 아니잖아. 이 정도야 담임이 서비스할 수 있어. 


신청일을 며칠 전 일자로 쓰면서, 갑자기 분노와 눈물이 쏟아졌다.

순간, 나는 너무 당황했다.

왜? 아니, 왜 지금 눈물이 쏟아지는 거지?

동료 교사들이 출근 전이라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침 일찍 곱게 화장한 얼굴이 눈물로 범벅된 채 세면대 위 거울 속에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어떤 교사가 말이다.


불량 교사 지침서 1

"아버님, 학교 규정에 체험학습 신청서는 최소 3일 전에 결재 완료되어야 합니다. 당일 체험학습은 허가가 안 됩니다. 결석 처리는 당연한 절차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 협박~ 하신 건지요. 잘못은 제가 아니라 아버님이 하신 것 같은데 왜 저에게 화를 내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드립니다!"


전하지 못한 이 한마디가 오늘도 내 심장 속 작은 갤러리에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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