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이런 수행평가 왜 해요?"
"수업에 이런 걸 왜 해요?"
"OO샘 있어요?"
"XXㄴ아, 이리 오라고!"
"도대체 뭐라는 거야?"
온종일 들리는 소음이다. 아니 소음을 떠나 이젠 폭력이다.
내 마음밭에 거름이 넉넉하고 뿌리가 단단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잘 넘긴다. 하지만 거름은커녕 메마른 땅으로 점점 마음밭이 변해갈 즈음, 이런 언어들은 내 귀를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듯 고통스럽다.
수많은 책들과 직무연수에서 들은 것처럼 객관성을 확보할 마음의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뭐라 했어?"
가장 가깝고 가장 쉬우며 가장 빠른 언어다.
이 말을 뱉는 순간 그 아이와 나는 영원히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보호하기도 벅차다.
"왜요?"
학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순간, 내 감정은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학생들이 어떤 말로 내 신경을 긁더라도 '지금 뭐라 했어?'라는 말로 반박하지 않는 거다. 이 말은 상황을 벼랑으로 몰아치는 칼이 된다. 잘못하면 그 칼에 내 손이 벤다. 절대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못 들은 척한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내 마음은 갈수록 쑥대밭이 되어간다.
나는 매일 이런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그것도 미성년들의 감정 쓰레기를 먹고 매일 독소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평소 보호본능이 너무 강한 나는, 참아내기가 점점 벅차다. 참지 않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표현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본능에 너무 충실한 기질 탓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딸로 자라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내 몸을 보호하고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아내로 살면서도 제일 먼저 터득한 것이 나를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부모로 살아가면서 내 자식을 보호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평생 몸에 밴 것이 나와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일이었다.
초임 때 나는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열망이 아주 강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과 학교라는 공간은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적이라고 인지하는 순간부터 내 보호본능은 아주 빠르게 작동했다. 더 예민해지고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힘들었다.
"고객님들인데 우리가 잘해야지!"
동료교사 중 누군가에게 들은 조언이었다.
고객님들도 우리에게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는 지켜야 건전한 상거래 형성이 되지 않을까?
<불량교사 지침서2>
"이런 수행평가 왜 해요?"
- 교육과정 구성에서 선생님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질문이니?
"수업에 이런 걸 왜 해요?"
- 입시에 안 나온다는 말이야? 아니면 내 수업이 싫다는 말이야? 싫으면 언제든 수업 거부할 수 있으니 나가 주세요!
"OO샘 있어요?"
- 교무실에 지금 친구 찾으러 왔어? 아니면 선생님들 쇼핑하러 왔어? 그런 샘은 없어요. 여기는 OO선생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XXㄴ아, 이리 오라고!"
- 선생님 귀가 썩을 것 같다. 듣는 우리들 모두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 안 듣게 해 줄래?
"도대체 뭐라는 거야?"
- 불만이 있으면 바로 말해요. 그렇게 불쾌하게 돌려 꼬지 말고!
학생들이 내뱉는 말들을 이렇게 대응하며 하루를 보낸다면, 아마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권운동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