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민족의 고독과 한과 외로움이 바다 한가운데 점으로 서 있는 섬!
고독의 섬 독도!
그대여!
독도에 가거든 까만 빤댓돌 위에 올려진 빨간 우체통으로 가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보내거라!
외로운 섬에서 생애 최초로 홀로 고독과 망망대해 바다와 이름 모를 바닷새들과 벗 삼으며, 팍팍한 육지에 남겨두고 온 그들에게 밤이 새도록 그리움을 풀어낸 편지를 써 내려가 보라.
그러다 전기가 나간 날 밤이면 누렇게 변색된 촛불 앞에서 닳아빠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하얀 편지지에 그리움과 소중함을 차곡차곡 개서 넣어보라.
괭이갈매기가 섬 주위를 돌면서 하품하는 이른 아침, 편지 한 통 가슴에 품고 이 빨간 우체통에 살며시 넣어보려무나!
올봄에 새 단장한 시골집 마당에서 빈 유모차 끌고 마실 나가는 팔순 노모 울 엄마.
노란 비옷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하루 종일 도시 구석구석 헤매며 유산균이 이백 억 마리나 들어있다고 몸에 좋다고 외치며 한 병이라도 더 팔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다리 하정맥류로 고생하는 아내.
아이돌 콘서트 티켓 못 구했다고 곡기를 끊고 이틀째 방에 틀어박혀 울다가 돼지갈비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벌떡 뛰어나오던 아직도 착하고 순진한 내 딸아이.
소중한 그들을 남겨두고 동해 한복판에 나와 앉아 폐 속 속까지 바다냄새 들어차 잔뜩 염장하여 더 늦기 전에 온전한 나를 다시 좀 만나봐야 하지 않겠느냐!
독도에 가거든 천연기념물 삽살개와 친구 되어 반나절이라도 온 섬을 땀나게 한 번 뛰어다녀 보거라!
칠십여 년 전, 조선 팔도 백만 마리 넘는 개를 도살하고 삽살개 씨를 말려버린 일본에게 보란 듯이 살아남은 영광스러운 후예들!
독도 지킴이로 거듭 난 그 삽살개가 멀리 지나해를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짖어대는 저녁 무렵을 가슴 벅차게 만나봐야 한다.
풍성한 털이 바람에 날리면서 덮은 눈가에 애환이 절절한 그 삽살개를 우리는 이제 좀 만나봐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가을이면 어김없이 자라는 참억새 옆에서 독한 생의 냄새를 맡아보거라!
해풍 맞으며 잘라도 잘라내도 더 꼿꼿하게 고개 치켜들고 올라오는 그 참억새 옆에서 억새 같은 한반도 운명과 인생과 삶을 고단하게 되새겨 보아라!
해풍 따라 날아든 하얀 씨방이 미친 듯이 번식하는 그 질긴 생명력.
지독한 생명력 덕분에 고유 생태계 위협으로 자라면 자르고 자라면 또 자르건만, 하얀 대가리를 더 곧추세우면서 흔들어대기까지 하는 미친 생명력을 가만히 지켜봐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갈색 줄기 끝에 매달린 해국 몇 송이를 꼭 만나 보거라!
늙은 노모 주름투성이 이마처럼 쭈글 대는 줄기 끝에 매달리듯 핀 파스텔 톤의 국화를! 보라와 노랑이 그렇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그것. 있는 힘을 다 뻗쳐 바위틈 사이 머금은 물 한 방울까지 뿌리째 빨아 당기면서 근근이 버티고 앉아 몇 장 안 남은 잎으로 해풍을 막고 서 있는 그것을.
그럼에도 평화로운 젊은이의 파스텔 톤 인생 같은 꽃이여!
우주의 별 하나 같은 섬 독도에서 누군가 두고 온 장미 같은 이 해국을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나러 가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죽은 해송 가지 위에 앉아 졸고 있는 섬 참새 떼를 만나 보거라!
절벽 바위 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젖은 날개를 털며 오늘은 또 어디서 매서운 겨울 찬 서리를 견뎌낼까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참새 떼.
어젯밤은 매서운 해풍에 날갯죽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는 둥, 울릉도 선창가에는 관광객들이 버린 과자 부스러기가 많다는 둥, 그런 거 먹으면 날갯죽지에 부스럼이 한 바가지 난다는 둥, 섬 반대편 응달 눈구덩이 속 얼지 않은 땅 속에 벌레들이 많다는 둥….
지친 몸으로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섬 참새 떼들과 같이 나도 신나게 수다나 떨러 가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바람이 거센 날이면 급하게 바다로 돌아간다는 괭이갈매기를 만나 보거라!
폭풍우 속을 뚫고 유유히 맹그로브 숲이 있는 바다로 간다는 어느 종족처럼 어쩌면 삶의 폭풍우도 그 중심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구나.
비바람 속 바다가 제일 안전하다는 모순의 지혜를 믿는 괭이갈매기의 그 의연함과 용기를 더 늙기 전에 배우러 가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천연기념물 물범 떼를 꼭 만나 보거라!
극성으로 많던 독도 강치 물범이 점점 사라져 가고 목에 현상금까지 걸린 그 독도 강치를!
태평양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종족끼리 쓸쓸하게 껴안으며 떨고 있을 독도 강치를 보거든 미안하다고, 인간인 우리가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꼭 한 마디를 속삭여 주어야겠구나!
독도에 가거든 60년 걸려 겨우 한 알 만들어진다는 보챌 한 알을 꼭꼭 씹어 먹어 보거라!
인간 한 생애에 걸쳐 만들어진 귀한 보챌 한 알을 천천히 씹어보면, 인간이 얼마나 건방지고 얼마나 오만하며 또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온몸으로 느끼지 않겠는가.
그 작은 한 알 만들어지는데 사람 한 생이 걸린다는데, 그것을 입에 넣고도 어찌 오만할 수 있으며 어찌 건방질 수 있다는 말인가!
장엄하고 숭고한 바다가 주는 귀한 보물을 욕심 내지 말고 꼭 세 알만 오물오물 잘 씹어 먹으려무나!
독도에 가거든 꼭 6위 비석 앞에서 긴 인생길 멈추고 잠시 몇 초나마 묵념을 하거라!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많은 희생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독도 그 위대한 섬을 위해, 그것을 목숨으로 증명한 그들을 위해!
독도에 가거든!
한반도바위와 독립문바위를 휘돌아 둘러보고, 살아있다는 것이 매 순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가슴 깊이 각인하고 돌아오너라!
부디 그대들이여!
고독한 섬 독도에 가거든…….
오래전 독도 관련 에세이를 어딘가 실은 적이 있다.
아! 독도에 가고 싶다!
참고자료
∙‘독도에 살다’, 전충진, 갈라파고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