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죄수번호 3712 옥봉 씨.
멍하게 쇠창살에 비친 하늘만 한 시간째 바라보고 앉았다. 같은 방 살이를 하는 죄수들 슬금슬금 옥봉 씨 눈치만 본다. 쉰이 넘은 지친 여인의 눈에서 또르르 한 방울 눈물이 흐른다. 창살 너머 불어다 주는 바람 한 줄기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린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휴- 나도 이제야 사지 쭉 펴고 쉬는구나!
입술을 타고 내린 눈물을 삼키며 내뱉는 옥봉 씨 한 마디에 다들 말문이 막힌다.
내일, 울 엄마가 나 마중 나오려나?
촉촉이 젖은 눈가로 하늘만 뚫어져라 본다. 독방에라도 앉아 있는 듯 고요하다. 소름 끼치게 고요하다.
니들, 아니? 나 어릴 적 우리 집 주소가 37-12번지였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투명한 눈빛으로 방 안을 죽 둘러본다. 벽에 붙은 것처럼 앉아있는 방 안 여자 죄수들, 숨조차 죽인 채 고요하다.
그땐 참 행복했지! 다들 가난했지만 ….
옥봉 씨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고향이 함안이라는 곳이야. 음 … ‘고향의 봄’ 노래 알지? 그 노래 만든 이원수라는 사람이 자기 고향 함안을 배경으로 노래를 지었단다! 나의 살~던 고향은 ~~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참, 너희는 고향이 어디야?
고향?? 흐흐, 우리한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태어난 곳 말이야! 고~~ 향!!
흐흐, 난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에 나 버렸는데?? 고향이라면 … 베이비박스?
아! 그랬구나!
난 고향이 서울이야! 태어나 사십 년 넘게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어요! 맞네! 여기 교도소가 생애 첨 온 다른 도시구나!
씨팔, 고향은 무슨! 금 수저 물고 태어나지 못할 바에야 왜 낳았데?
아, 괜한 말을 했구나!
비슷한 연배의 금순 씨가 그런 옥봉 씨 옆으로 불편한 다리를 밀며 다가간다.
언니! 담아둔 말 하고픈 말 다 꺼내요! 이것들이 괜히 어리광 부리는 거라니까!
금순 씨, 유순한 얼굴에 무서운 척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방 안을 향해 둘러본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다들 움찔하며 다시 집중한다.
그래!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오늘은 너희가 좀 양보해라!
다들 금순 씨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니들도 알겠지만, 난 남편도 … 자식도 … 없어! 후 -- 참, 남편은 오래전에 있었구나! 일 년 살고 이혼했으니까 남편도 아닌 거지!
남편이 바람 폈어요?
흐흐, 이혼 사유는 …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거지!
예??? 말도 안 돼!!
그땐 그랬어! 80년대니까!
맞아! 신혼 첫날밤에 처녀막이 터져서 피가 나야 신부의 순결을 증명받던 시대였으니까! 흐흐, 언니 진짜 순진했다! 난 신랑이 코 골고 잘 때 몰래 닭 모가지 비튼 피 몇 방울 이불에 떨어뜨렸는데!
씨팔! 조선 시대 얘기야??
흐흐, 대한민국 얘기야!
그럼, 언니 첫사랑은 누구예요??
눈빛이 흐려지면서 더 붉게 노을 진 창살 너머를 아련하게 바라본다.
첫~~ 사랑~~ 이라~~~.
야! 이제 옥봉 언니 말씀하시는데 끊지 마라!!
흐흐! 우리 할아버지는 함안에서 대대로 농사꾼 집안 장손이었고 아버지는 읍내 작은 약방을 운영하셨지. 집안 친척들이 다 그 인근에 살았어. 어머니는 날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 치는 게 하루 일과였지. 아버지 아래로 작은 아버지 한 분과 고모 두 분이 계셨어. 작은 아버지는 근처 도시에서 공장장으로 일했어. 고모 두 분은 산 너머로 시집을 가서 설마다 졸망졸망한 애들 다 데리고 와서 정월대보름까지 있다가 갔지. 설이 시작될 무렵이면 우리 집은 완전히 잔칫집이었어. 할머니랑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낮에는 음식 장만에 밤에는 바느질에 정신이 없었지. 내 기억으로 할아버지는 항상 할머니가 지어주신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다니셨거든. 할머니나 어머니도 무명 한복을 항상 입고 일을 했어. 나도 일곱 살까지는 무명 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온 동네를 뛰어다녔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가 첨으로 도시에 사는 작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원피스를 사 주셨고 가 처음으로 책가방이랑 원피스를 사다 주셨어.
완전히 딴 세상 얘긴데??
70년대까지도 시골에 어른들은 두루마기에 한복 입고 다녔어!!
설이 다가오면 엿 고는 냄새, 수육 삶는 냄새, 술 익는 냄새가 온 동네 가득하고, 읍내 장날 뻥튀기 장수 옆으로 길게 늘어선 줄 사이에 내가 서 있었지. 방앗간에도 하루 종일 내가 줄을 섰어. 그땐 여덟 살짜리 내 담당이 줄 서는 거였거든!! 밤새 할머니랑 어머니가 가래떡을 썰어댔어. 다음 날 자고 일어나면 커다란 독에 가래떡이 수북했고, 작은 독마다 깨강정, 쌀강정, 콩강정이 수북하게 담겼지. 할머니는 우리 집 마당 구석에 있던 돌절구를 깨끗하게 씻어서 거기다가 김이 설 설 나는 찰밥을 가득 부었어.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오촌 당숙이랑 같이 절구를 찧기 시작했지. 그걸 방앗간에서 갓 빻아온 콩가루에 술 술 굴려 넓은 나무판에 죽- 올려 행랑 방 제일 깨끗한 데 넣어두지. 떡을 찧은 날 밤에는 할머니가 선심 쓰듯이 한 줄 꺼내서 숭숭 썰어서 저녁상에 내놓아! 미리 알고 오촌 당숙은 식솔들 다 거느리고 저녁상 머리에 앉았거든! 당숙네 애들이 집어가기 전에 할머니는 항상 내 입에 쏙- 한 개 먼저 넣어주셨지. 고소하고 쫀득한 그 맛이란 …. 남은 찹쌀로 다시 밤새 쌀을 불려서 작은 돌절구에 또 한나절을 찧기 시작해. 이건 유과를 만들기 위한 거라 할머니 담당이야. 그렇게 켜가 잘 쳐진 거를 또 세 등분해서 다시 꽈리를 만들지. 실처럼 되게 말이야. 거기다가 한 개는 치자 물을 들이고 또 한 개는 비트 물을 들여! 그러면 노랗고 빨갛고 하얀 유과가 되는 거야! 요새 마트에서 파는 유과는 발 뒤꿈치도 못 따라오지! 그걸 잘 달궈진 기름 냄비에 넣고 떠오르면 바로 건져서 쌀가루에 굴려! 꼭 누에고치 같다니까! 얼마나 뽀얀 게 이쁜지!! 어머니는 쌀가루에 그걸 굴리고 나는 옆에 앉아 부채로 부쳐 대지. 한겨울이라도 김이 빨리 사라져야 더 쫀득하고 바삭하다고 할머니가 늘 그랬거든. 그게 다 끝나고 커다란 독에 유과가 가득 찰 때 즈음, 이번에는 다식을 준비했지. 우리 집은 찹쌀다식, 송화다식, 팥 다식, 밤다식, 검은깨다식 정도 했어. 찹쌀다식은 찹쌀을 쪄서 볶고 가루를 다시 내서 엿물하고 꿀을 넣고 버무리면 되거든. 나는 송화다식을 진짜 좋아했어. 한겨울에 솔잎 향이 은은하게 입안에 퍼지면 정말 봄이 올 것만 같단 말이지!! 그즈음이면 한 달 전에 담근 술이 익어 달큼한 냄새를 풍기지. 술 지끼미는 겨울밤 어른들 간식이었어. 나도 따라 야금야금 먹다가 얼굴이 빨개져서 어머니 무릎에 엎어져 잠이 들곤 하던 때야! 누룩으로는 술을 담그고, 질금으로는 단술을 담그지! 질금으로 밥을 삭히느라 우리 방구들에 커다란 통이 며칠 째 발에 차일 때였지. 질금통에다가 콩시루까지 있었어. 그때가 지나면 또 청국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일 년 내 발 밑에 뭔가 들어있지 않은 때가 없었던 거 같아!! 흐흐흐.
아! 배고파!!
군침 돈다. 옥봉 언니도 그런 거 다 만들 줄 알아요?
난 못해! 별로 잘하는 게 없어. 책이나 읽을 줄 알았지. 어릴 때 아버지 약방 따라다니면서 신문 쪼가리부터 글자라는 글자는 전부 읽어낼 때가 있었지. 약방 약재 상자 한자를 뜻도 모르고 전부 외웠다니까!! 그때는 책이 귀할 때라 친척들이 두고 간 책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어냈어. 읽고 또 읽고 외우고. 흐흐흐. 아버지는 내가 신동이라고 약방을 물려주려 했고, 할머니는 내가 신문 쪼가리라도 들고 앉으면 바로 불쏘시개로 썼지. 계집이 글을 알면 신세 조진다고! 후- 한 오십 년 살아보니 우리 할머니 말씀이 딱 맞는 거 같아!
그래도 언니는 대학도 나오고 애들 가르치는 선생이었다면서요? 해 볼 만큼 다 해 봤구먼!
그게 탈이었다니까! 울 할머니 말씀처럼 꽃 겉이 조신하게 수나 놓고 다식이나 배우면서 있다가 할아버지가 봐 둔 혼처에 시집갔으면 ……. 조금은 더 오래 살았겠지!!
에이, 언니!
가만히 듣고 있던 미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언니가 진짜 어머니를 죽였다고요?? 내가 좀 거칠게 인생을 살아봐서 아는데요!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에 부모님까지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은 절대 살인을 못하지!! 그럼!
옆에 있던 금순이 미순에게 눈짓을 했다.
가만있거라! 이 방에서 태어날 때부터 죄수가 어디 있어? 모진 인생 살다 보니까 다 그런 거지!!
난 태어날 때부터 상당히 꼬였는데! 서른 넘게 죽어라 살아도 결국 봐! 여기 이 방이 자나!
후-- 그렇긴 해!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결국 내 자리는 여기 이 감옥이었나 봐! 환갑도 못 돼서 죽는 거였나 봐! 진작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안 사는 건데!!
금순이 또 그 유순한 얼굴로 죄수들을 째려본다.
이것들아! 이 밤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니들 꼬인 인생 나중에 들어도 되니까, 방해 좀 그만해라!!
괜찮아! 그래도 마지막에 이렇게 내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 몰랐어! 흐흐, 인복이 있긴 한가보다!
언니, 그 설날 음식 얘기 더 해 봐요! 나 요리에 관심 많아! 정말 맛나겠어!
설 전날에는 다른 집들처럼 커다란 생선을 몇 십 마리 가마솥에 불 지피고 짚을 깔아 그 위에 쪄 내지! 어머니는 마당 장독대 옆 화덕에 불을 지펴서 솥뚜껑을 뒤집어서 전을 부치지. 먼저 돼지비계 한 덩어리를 척 올려 솥뚜껑에 바르고, 녹두랑 쇠고기 다진 것에 메밀가루를 넣고 반죽한 것을 한 국자 확- 올려! 군침이 도는 게 온 집에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지. 요새는 그 맛을 어디서도 흉내 낼 수가 없어!
와! 진짜 맛나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랑채에서 손님 대접 하시느라 정신이 없었지. 아버지가 멀리서 “옥봉아! 술상 내 오너라!” 하고 부르시면 나는 “예!” 하고 말만 크게 하면 돼! 커다란 쟁반에 금방 구운 녹두전이랑 강정을 수북이 쌓아서 어머니가 들고나가시고 나는 할머니가 장독대에서 퍼 주시는 잘 삭은 막걸리 한 병을 뒤뚱거리며 들고 어머니 뒤를 따라 사랑채로 갔어. 아버지가 부르는 옥봉이는 사실 내가 아니라 어머니였거든!! 또 가끔 아버지가 “옥봉아! 찻상 내 오너라!” 하시면 어머니는 고운 다식 한 접시와 잘 우려낸 오미자차를 귀한 병에 담아 우리 집에서 젤 예쁜 잔이랑 같이 소반에 담아내었지. 그런 때는 꼭 나를 앞장 세우셨어. 찻상을 받는 손님에게는 항상 고운 향이 났어. 사랑채에 들어가면 할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손녀라고 하셨지. 그런 손님들은 대부분 내게 용돈을 쥐어주셨어. 할아버지 무릎에서 내려와 기름 잘 먹은 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있을 즈음, 멀리서 어머니가 “옥봉아!” 하고 부르셨다. 안채로 달려가면 젤 예쁜 다식이랑 유과를 고운 비단 천으로 정성스럽게 묶어서 주시면 또 그걸 들고 사랑채로 달려가! 손님 가시기 전에 툇마루에 살짝 놓으면 내 임무는 끝이야! 귀한 손님인 거지. 그런 손님은 안채에서 내 온 선물에 감격하면서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는 돌아가! 할머니는 담장 너머 손님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시면서도 내내 “다식이 입에 맞아야 할 텐데!” 그러시고.
작은 아버지네는 안 오셨어?
한낮에 일 다 치르고 나면 작은 아버지는 양장 잘 차려입은 작은 어머니랑 예쁜 도시 옷 입은 조카들 데리고 포니 자동차를 끌고 나타났지. 그럼 온 동네 애들이 그 차 뒤꽁무니만 따라다녔어! 멀리 동네 고갯마루부터 엔진 소리가 났으니까 벌써 알아차리고 할머니는 작은 식솔들 식사 준비에 바쁘셨지. 작은 아버지는 선물을 한 보따리 트렁크에서 꺼내고 숙모는 고운 양장이랑 구두에 흙이라도 묻을세라 조심스럽게 걸었어. 진짜 얄미웠지. 그때 즈음이면 오촌 당숙네도 식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지.
아, 진짜 얄밉다! 다 된 상에 숟가락만 얹는 거네!
그래도 할머니랑 어머니는 손님이 많아야 집안이 번창한다고 좋아하셨어. 할머니는 작은 어머니를 항상 손님처럼 대하셨거든. 어머니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어. 딸 하나 낳고 후손이 없으니 평생 죄인인 거지. 작은 어머니 네는 아들만 둘이었거든.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아들처럼 대하셨어. 약방도 물려주실 거라 하고! 결국 그 약방도 사촌이 차지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서울로 이사 왔구나!
그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오촌 당숙 네가 서울로 이사 가면서 나도 당숙 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지. 그때 즈음 할아버지는 작은 아버지네 첫째를 아버지 양자로 들여 장손 노릇하게 하기로 마음을 굳히셨거든. 어머니가 그때 마음을 많이 상하셨어. 나는 그걸 좀 이용했지. 아버지께 더 반항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 다 할 거라고 했지. 그런데 당숙 네 간 게 내 인생의 불발탄 시작이었어. 당숙 네는 보기보다 좀 교활한 어른이야. 나를 데리고 있다는 명목으로 아버지에게 온갖 돈을 다 뜯어냈거든. 아버지는 항상 “우리 옥봉이가 사내로 태어났어야 집안이 바로 잡혔을 것을!” 하셨지.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니까 양자인 사촌에게 전답이며 집이며 모든 게 다 상속되더라고. 그 녀석이 사업에 몇 번 실패하고 전답이며 집을 전부 담보 잡아서 하루아침에 다 날려 먹었지. 몇 백 년 이어 온 우리 집을. 그때 즈음 동네 소문이 났지. 이제 “최가네 집도 다 했다!”라고.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오갈 데가 없어진 거야. 양자 아들이 자산을 다 날려먹었으니. 나는 그때 여기 없었어. 이혼하고 휴직까지 하고 혼자 해외를 떠돌 때였지. 어머니는 차마 내게 말씀도 못하시고 작은 어머니네 얹혀살고 있었지. 그 집에서 작은 어머니 팬티 빨아주면서.
미쳤다!! 와, 정말 짜증 나!!
흐흐, 사람 사는 게 다 그래.
미친 거 아냐? 그런 어머니를 왜 죽였어??
야! 그만해라, 어??
글쎄 말이야! 왜 이 손으로 우리 어머니를 죽였다고 그럴까??
갑자기 감방 안이 오싹하게 싸늘했다.
언-니! 혹시 …… 언니가 죽인 거 아니죠?? 그죠???
옥봉 씨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난 어릴 때 우리 마을이 지금도 그립다!! 설날 밤이면 징 하게 피어나던 아궁이 탕국 냄새, 정월 대보름까지 우리 집에 북적대던 고모네 식구들, 당숙들 ……. 고종 사촌들이랑 구들에 서로 발 넣고 이불 다툼도 하고 할머니가 살얼음 가득한 단술 한 사발 주시면 서로 먹겠다고 다투고. 우리 할머니는 그 많던 사촌들 중에서 항상 나를 챙기셨어. 사촌들이 먼저 먹겠다고 난리 피우면, “옥봉이가 먼저다!” 하시면서 내 입에 젤 먼저 넣어주셨지. 할아버지가 양자 운운 하실 때도 “세상이 변했는데, 우리 옥봉이가 장손노릇하고 데릴사위 보면 될 것을.” 하셨지. 살아보니 할머니 말씀이 하나도 그른 게 없어!! 내가 꽃 같이 수나 놓고 다식이나 배우면서 조신하게 있다가 능력 있고 똑똑한데 가문이 기운 집안 데릴사위 데려다가 살았으면, 지금쯤 이 어두운 감옥에는 있지 않겠지!! 괜히 공부할 거라고 대학 갈 거라고 설쳐대다가 이 꼴 난 거지! 집안도 망했고 가산도 사라지고 몇 백 년 이어 온 우리 옛 집도 사촌이 벌써 다 팔아치웠고!!!
그래서 언제 한국 돌아왔어요?
IMF 터지고 좀 지나서 한 오 년을 떠돌다가 돌아와 시골집에 가 보니까 벌써 넘어가고 없더라고. 어머니는 작은 어머니 밑에서 그러고 있고. 갑자기 눈이 확 돌더라! 태어나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그땐 정말 화가 치밀더라고. 그래서 작은 아버지에게 갔지. 우리 집 내놓으라고. 작은 아버지 말씀이 전부 용식이한테 물려받은 거니까 나는 자격이 없단다! 용식이가 말아먹든 잡혀먹든 지 거니까 상관 말라고. 그러면서 “몸이나 굴리고 다니는 년이!” 이러는 거야! 그것도 작은 아버지가! 그런데 그 소리를 어머니가 따라오셔서 밖에서 들은 거야. 어머니가 갑자기 삽자루를 들고 달려들어 오셔서는 죽인다고 작은 아버지에게 덤비는 거야! 어머니 그런 모습은 태어나 처음 봤지. 다들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 길로 어머니 모시고 변두리 작은 아파트 하나 구해서 살기 시작했지.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동이 많아서 어머니가 주로 그 집에 사시고 나는 발령지마다 방을 얻어 살다가 이동하는 식이었어. 주말에 어머니에게 가고. 겉으로 보기에 참 평화로웠지. 그래도 딸 하나 있는 거 학교 선생이고 어머니는 그렇게 다시 평화로워지셨어.
아! 언니 인생도 참!!
그런데 가끔 주말에 집에 가면 다시 용식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야. 양자지만 법적으로는 어머니 아들이니까. 다 말아먹고 작은 아버지 네도 빚 투성이니까 다시 우리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한 거지. 어머니는 내게 받은 생활비를 꼬불쳐서 용식이에게 주기 시작했어. 난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아들이니까. 그런데 갈수록 빈도가 높아져. 그러더니 결국 빈 집에 어른 혼자 계시면 위험하다면서 식솔을 끌고 아파트에 들어와 살아버리네! 정말 가관이었지. 다시 어머니는 용식이네 도우미가 되어버린 거지.
아이, 씨팔!! 언니 어머니는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우리 어머니는 그랬어! 평생 순종이 미덕이라 생각했지. 자기 배로 낳은 딸보다 어른들이 들인 양자 아들에게 인생을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 나한테 미안해서 그랬는지도 … 우리는 다 잊고 살아라! 하셨으니까. “용식이가 오데 내를 갖다 버리기야 하겠나! 니는 제발 니 인생을 살아라!” 노래를 하셨거든.
구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리 씨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언니! 나 마약사범인 거 알죠? 우리 집이 좀 살아! 아버지께 얘기해서 변호사 선임할게. 내 아무리 봐도 언니 누명 쓴 거 같아!
이것도 내 운명이야! 말이라도 고맙다!
그래서? 결국 그 아파트도 사촌한테 다 뺏겼구나! 어머니 모신다는 명목으로? 에이, 진짜 그런 새끼 내 눈앞에 있으면 …….
원래는 착한 애였어. 세상 살다 보니 그렇게 변한 거지!
옥봉이 언니, 진짜 답답해!
언니, 여기 들어온 지 몇 년 되셨어요?
한 이 십 년 다 돼 가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안 하셨어요?
흐흐, 뭐 하러??
언니! 그럼 그 많던 친척들은 누구 하나 면회 오지도 않잖아?
현직 교사가 지 어머니를 살해했는데, 누가 아는 척하겠어?
자고 일어나니까 어머니가 죽어 있었다면서요?
모처럼 용식이네가 가족여행 해외로 떠났다고 해서 금요일에 회식 끝나고 택시 타고 어머니 집에 갔지. 그날따라 이상하게 울 엄마가 막 보고 싶은 거야. 우리 집에 가고 싶고. 지치고 힘들었거든. 그래서 우리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가니까 불이 꺼져 있고 늦은 밤이라 술도 취했고. 그냥 자는 엄마 옆에서 골아떨어졌지. 다음 날 아침에 깨 보니까 어머니가 피투성이였어. 이혼하고부터 우울증 약에 신경과 약을 달고 살았는데 병원에서는 정신분열증 초기라고 하고, 그래서 무의식 중에 술 먹고 어머니를 살해했을 거라고 ……. 나는 기억도 못하겠는데 …. 내 인생 정말 끝장났지!
다들 말문이 막혔다. 뭔가 잘못된 건 알겠는데 어찌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엉키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아! 언니 첫사랑이나 들읍시다!!
흐흐, 난 첫사랑 그런 거 없는데.
그럼, 처음 빠구리 한 그놈!!!
갑자기 옥봉 씨 눈에 광기가 일기 시작했다. 말을 꺼낸 미순 씨는 순간 움찔했다.
어-- 그럼 다른 얘기로 ….
고등학교 이 학년 때 성폭행을 당했어. 그게 처음이야!
다들 말을 못 하고 멍하게 입만 열었다. 세상에 ……. 영미 씨는 아까부터 교사 출신 옥봉 씨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뭔지 모르게.
오촌 당숙에게! 교활하고 음흉한 놈이었지. 그걸 미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협박했어. 당하는 줄 알면서도 어머니는 모른 척했고 그 집 식구 모두 묵인했지. 결국 임신해서 쫓겨났지. 고등학교 이 학년이 말이야!!
영미 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우리 딸이 살아있으면 영미 씨 나이겠다!!
영미 씨는 갑자기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다. 금순 씨와 미영 씨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영미 씨 얼굴은 점점 어두운 흙빛으로 변해갔다. 미영 씨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열여덟에 임신을 했단 말이야?
그때부터 금순 씨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기 인생은 거기에 대면 새발에 피 같았다. 이 늙은 사형수의 마지막 밤에 누가 어떤 말을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영미 씨 얼굴은 점점 더 어두운 잿빛이 되었다.
쫓겨나서 논두렁을 걷다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낳았어.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를 않아. 아무리 기억을 돌려 보려 해도. 깨어보니 어느 허름한 조산원 쇠 침대였어. 어머니가 옆에서 울고 계셨고. 아이는 죽었다고 했지.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없어. 영미 씨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환하게 옥봉 씨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나는 배냇저고리도 입고 있었는데.
그때 쇠창살 사이로 달빛이 환하게 비쳐왔다. 그 사이로, 옥봉 씨 오뚝한 콧날이 시리게 하얗다. 그래도 어딘지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은 영미 씨, 옥봉 씨 옆으로 바짝 다가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 늙은 사형수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달빛 아래 오뚝한 콧날에 얇은 입술을 다부지게 다물고 있는 그 아래 가는 목선이 마치 한 쌍의 학 같다.
금순 씨는 순간 달빛 아래 한 쌍의 학을 보고야 말았다. 입을 꾹 다문 채 말도 못 하고 눈만 커다랗게 꿈벅거리면서. 미영 씨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만다.
영미 씨는, 어느새 차가운 벽에 기대서 달빛 아래 앉은 옥봉 씨의 시린 어깨 죽지에 떨어져 곤하게 잠이 들었다. 같이 밤을 새우자더니 금순 씨와 미영 씨도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며 잠이 들었다.
마치 상가 집의 깊은 밤만 같다. 곧 다가올 죽음의 날. 옥봉 씨의 상을 미리 자기 손으로 치르는 것만 같았다. 옥봉 씨는 긴 숨을 내쉬며 쉰 넘은 여인의 어깨에 잠든 지친 어린 여인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게 지그시 눈물을 흘리고 만다.
3712.
옥봉 씨의 눈이 퀭하다. 죄수 번호 3712. 이제는 자기 이름조차 가물거린다. 3712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이름인 것만 같다. 밤새 달빛 아래 앉아 뜬 눈으로 지새웠나 보다. 어깨 죽지에서 잠든 영미 씨를 바라보며 기도처럼 되뇐다.
엄마! 다 가고, 이 어린것 하나 남았네요! 흐흐!
허공에다 대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지치고 퀭한 눈을 들어 쳐다본다.
3712. 3712. 3712.
그날, 옥봉 씨는 사형장으로 걸어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창살로 영미 씨가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에 진눈깨비가 날렸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타고 민들레 홀씨 하나가 포르르 날아 창살 안으로 들어왔다.
옥봉이 형님, 좋은 데 가셨나 보다.
금순 씨가 낮게 되뇌었다. 영미 씨는 옥봉 씨가 남긴 책들 가운데 한 권 사이에 홀씨를 넣어 소중하게 자기 관물함 구석에 숨겨 넣었다.
오후가 되자, 교도관이 들어와 옥봉 씨 물건들을 정리해 나갔다. 이십 년 만에 관물대는 텅 비었다. 창살로 다시 햇살이 비치며 빈 관물대를 빈소인양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