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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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토했다.
산소가 점점 부족했다. 답답한 실내 공기를 한 시간이나 참고 있었다. 문제는 그놈의 감이었다. 오렌지 빛깔의 그 볼록한 형태감이 주는 식감 때문에 덥석 한 입 베어 물어버렸다. 위장 기관에 남아있던 모든 음식물이 전부 역류했다.
빌어먹을 감.
기차 복도 바닥에 마흔이나 넘는 어른이 장 속 내용물을 전부 토사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다행히 객실에 승객이 두어 명뿐이었다.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토사물은 끈적이는 주홍색 액체가 전부다. 새벽부터 물이나 간단한 음료수 외에는 별로 먹은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감을 보는 순간, 그 탐스럽게 느껴지던 감칠맛과 입 안 가득 고이던 침.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기진맥진 한 척했다. 남편과 승무원이 토사물을 치우는 내내. 강심장이 아니고는 도저히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내 손으로는 더욱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쓰러진 척 실눈으로 내려다보자니, 남편이 복도의 오물을 정리하면서 간혹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흘겨보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남편은 이제 안다.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밀어붙여 시작한 그 훨씬 전부터. 무모하고 대책 없고 즉흥적이라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안다. 뒷마무리는 언제나 남편 차지라는 것쯤도.
한 달 전. 도시 변두리에 있는 어머니 소유의 작은 주택을 매각하기 위해 갔다. 어릴 적부터 살았던 집. 아버지 유품은 이미 오래전 정리를 했다. 어머니 유품은 옷가지 정도가 전부라 별반 정리할 것이 없었다. 그 뒤로 몇 년간 그 집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작고 초라한 집.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시멘트 담벼락, 포크 레인으로 한 대만 치면 금방이라고 와르르 내려앉을 것만 같은 슬레이트 벽돌집. 동생들의 권유로 매각을 결정하고 집 상태를 보기 위해 간 것이다.
녹슨 철 대문을 겨우 열어 마당으로 들어섰다. 시멘트 콘크리트가 다 깨져 쩍 쩍 들고일어난 틈으로 잡풀들이 무성했다. 참 희한한 광경이었다. 70년대 슬레이트 구조물이라, 집 한 채 안에 작은 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방은 모두 다섯 개였다. 건평 스물 대 여섯 평도 안 되는 집에 방만 딱지처럼 붙어 있다. 그 방들을 식구들이 다 쓴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식구가 다섯 명인데 방 두 개로 사춘기 접어드는 시절까지 버텼다. 나머지 방 세 개는 전부 세를 냈다. 아버지의 박봉을 만회하려면 식구들이 방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루 위로 올라갔다. 안방 부엌방 건넌방 쪽방 가겟방. 방마다 제 나름 이름표는 있었다. 내 유년은 이 다섯 개의 방들을 내 방처럼 드나들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는 , 울면서 건넌방 세 들어 사는 자취생 언니들에게 가서 위로를 받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쪽방에 숨어버렸다. 그 방 주인은 교련복을 자주 입고 다니던 고등학생 오빠였다. 건넌방 언니들 남동생이다. 그에게 들켜 혼이라도 나는 날은 더 서러워 울었다. 사실 부끄러워 그런 것이다. 또 어떤 날은 동생들과 장롱 속 옷들을 전부 꺼내 부엌방에서 귀신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도 저도 다 시큰둥해지면 가겟방 양장점 이모에게 건너가 옷감 패턴으로 장난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방을 순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벽지가 거의 벗겨져 시멘트가 다 드러난 방들을 지나 쪽문을 통해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 작은 부엌 아궁이에서 어머니는 다섯 식구들을 위한 음식을 쉬지 않고 만들었다. 오래된 재래식 부엌이라 부뚜막도 있었고 우리 식구가 사용한 두 개의 방으로 연결된 아궁이가 두 개 있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처음 이 집에 이사 올 때는 연탄 온돌방이었다. 철이 들면서 방들을 전부 뒤집어 보일러 선을 깔아 연탄보일러로 교체를 했었다. 온돌일 때는 아랫목만 데일 정도로 뜨거워 온 식구가 그 밑에서만 모여 잤다. 그런데 보일러로 교체를 하고는 밤마다 바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꾸르륵 거리는 보일러 관을 타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캄캄한 동굴 속 더 깊은 곳에서 들리는 듯 아득한 소리. 그래도 더 이상 식구들은 한 데 엉켜 자지는 않아도 되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보일러 관이라도 터지는 날이면 온 식구가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동생들을 품에 안고 재웠고 나는 아버지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다.
부엌 아궁이는 재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반대편에 오래전 쓰던 낡은 찬장이 아직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온통 기름때와 얼룩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원래의 색이 어떤 것이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천천히 찬장 문을 열었다. 깨진 사기그릇들과 스테인리스 양푼들이 그대로 들어차 있다. 수저도 얼룩진 민트 색 플라스틱 수저통 속에 얌전히 세워져 있다. 신기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 수저들 사이에서 내 숟가락을 찾아냈다. 장미모양 음각이 새겨진 가는 목 부분이 조금 휘어진 그리고 숟가락 끝이 닳아빠져 동그랗게 나이테를 그리며 낡아있는 바로 그것. 그것으로 음식을 떠서 혀끝에 가져다 대면 혀끝이 닳은 쇠와 교감해서 쉐- 한 느낌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던 것. 신이 나서 아예 수저통을 꺼내 부뚜막에 쏟아부어서는 식구들 숟가락을 찾아보았다. 전부 그대로 있었다. 묵직하고 커다란 이제는 색이 가 버린 아버지 은 숟가락과 가장 얇고 가늘고 구부렁거리는 어머니 쇠숟가락과 동양화 한 폭이 고스란히 음 양각으로 새겨진 큰 동생 숟가락과 끝에 일 센티미터 정도 포크 서너 개가 파인 막내 동생 숟가락까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숟가락으로 매일 밥을 떠 넣기 위해 부모의 인생이나 꿈 따위는 아궁이 속 재처럼 태워 버린 그들. 그들이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인생. 이 다섯 개의 숟가락.
찬장 속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수저통이 있던 자리에 동그란 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그 뒤에 신문지로 싼 작은 뭉치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펼쳐 보았다. 꾸게 꾸게 쌓인 그 안에는 다시 누런 종이가 뭔가를 덮어 싸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펼치자, 누런 가락지 한 쌍이었다. 순금 가락지였다. 분명 순금이다. 이상했다. 어머니가 생전에 한 번도 이 물건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숨겨둔 것조차 잊고 살았을까. 종이에 볼펜으로 적힌 글씨가 빛을 바라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삼 - 랑 - 진 - 아 - 짐 - 매
내 호기심은 그때부터였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 사람이라면 기억이 났다. 어머니가 과일 장사를 할 시절 한 때 어울려 다니던 사람이었다. 이 반지가 그 사람 것이라면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 죽었다. 어머니가 그 사람의 반지를 가지고 있다가 돌려줄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머니도 바쁜 일상 속에서 이 반지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기억에서 놓쳐 버린 것. 그렇지만 어머니는 임종 직전까지 정신이 선명했다. 이렇게 비싼 반지의 행방을 잊어버릴 어머니가 아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알고도 여기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이상한 집착증에 시달렸다. 반지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고 그 후손들도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후손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도 없는 그 반지를 덜컥 내가 가질 수도 없었다. 난처한 일이었다. 나는 동생들을 불러 어머니 명의의 그 집을 당분간 매각하지 말자며 몇 시간을 설득했다. 동생들은 돌변한 내 태도에 의아해했다. 그 집을 제일 지겨워하고 벗어나고 싶어 해서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그 집을 팔지 않고 그 초라한 집에서 임종 직전까지 버티고 있었던 사실조차 미치도록 싫어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 갑자기 웬 집착?
큰 동생이 끝내 한마디 내뱉었다. 그 집을 매각한다고 당장 큰돈이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동생들도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우리 삼 남매에게 그 집은 이미 생활에서 배제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서로 그 집에서 먼저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제일 심하게 요동을 친 사람은 나였지만 동생들도 진학이나 취직을 핑계 삼아 다른 도시에 정착을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오래된 그 집을 지킨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끝까지 집의 존재 자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이 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참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다 반지 때문이다. 내 집착증은 사실 집이 아니라 반지였다. 반지가 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밝혀낼 때까지 집은 거기 그대로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동생들이나 남편에게 굳이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랬다.
나는 그때부터 쌍 가락지를 목에 걸고 다녔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물건을 내가 버젓이 내 손가락에 끼고 다니지는 차마 못했다. 그렇다고 그 비싼 순금 가락지를 마땅히 보관해야 할 곳도 찾지 못했다. 내 소유물이라면 잊어버릴망정 집안 어딘가에 숨겨두겠지만 남의 소유물이고 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이 반지의 존재를 아는 이가 나 밖에 없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짐으로 남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최선책이 목에 걸고 다니는 것.
- 너 취향 바꿨냐?
남편은 평소 내가 즐겨하고 다니던 액세서리 분위기를 잘 알았다. 금보다는 은을 더 좋아하고 수공품이나 원석을 더 즐긴다는 것을. 남편이 외국에 출장을 가면 면세점을 들르지 않고 벼룩시장이나 노점을 더 기웃거린다고 동료들이 말해 준 적이 있다. 그런 곳에서 꼭 천연기념물 같은 반지나 목걸이를 건져 온다고. 그런데 갑자기 번쩍거리는 금반지를 두 개씩이나 걸고 다니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 이미테이션.
나는 그 정도로 정리해 주었다. 남편도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반지가 내 목에 걸려 다니면서부터 나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일을 하다가도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반지에 손이 갔다. 그리고 혼자 여유롭게 차를 마시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지하철에서 넋을 놓고 초점 없는 눈으로 앞사람을 응시할 때나. 그냥 내 손이 자유롭게 반지 두 개를 장난치듯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남편과 다투고 화가 나 혼자 공원을 돌고 있을 때였다. 가끔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 나는 걷기를 했다. 어디든 걸었다. 그날은 집 근처 공원을 돌았다. 한 열 바퀴는 돈 것 같았다. 다리가 아프고 머리도 조금 어지러웠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그때. 나는 또 무의식적으로 반지 두 개를 만지작거렸다. 벤치 옆 가로등이 눈부셨다. 긴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오른쪽 옆에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에 달그락거리던 반지에서 뭔가가 보였다. 반지 안쪽에 뭔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다시 찬찬히 보았다.
23-9.
이게 뭔가. 도대체. 놀라서 한참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다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건 또 뭐야. 반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이 암호 같은 숫자는 또 뭔가.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지겨움과 권태가 확 밀려왔다.
- 맨날 이런 식이야.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서툴렀다. 그래서 항상 자신만 아는 뭔가 암호 같은 것을 자주 사용했다. 나는 딱 질색이었다. 수에 대한 계산도 느려 종이 박스 한 귀퉁이에 자신만 아는 수 암호를 적어서 기억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 이름을 어딘가에 적어본 적이 없었다. 이상한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낮은 자존감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새벽시장 경매에서 받아오는 모든 과일 상자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은 한 자도 세상에 보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자식 이름은 당당하게 척하니 적어내는 것이다.
영자.
그래서 어머니는 장사꾼들 사이에서 ‘영자 아지매’로 통했다.
영자 아지매.
나는 이름 때문에도 몇 번이나 심통을 부렸다. 내 나이에 이런 이름 가진 아이가 어디 있냐며.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거라 어쩔 수 없다며 그 덕에 밑으로 아들 둘 낳아 쫓겨나지 않고 시집살이한 거라고 했다. 가끔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가게로 나갔다. 상자를 옮겨 정리할 때면 가게 안에 온통 내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 상자에도 영자, 사과 상자에도 영자, 심지어 곶감 상자에도 영자였다.
- 온 전신에 영자다.
심통이 나서 쏘아붙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 입에 귀한 딸기 한 알을 쏙 넣어주면서 입을 막았다.
- 얼매나 복 많은 이름인데 그라노. 니 이름 이래 떡 써 나 -모 어떤 사람은 이기 상푠 줄 알고, 허허허. 영자사과 한 박스 주이소. 한다 아이가.
기가 막혔다. 딸 이름을 온 동네방네 돌리고 나누고 브랜드까지. 그래도 많이 팔리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과일 가게를 한 덕에 삼 남매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건 달랐다. 마치 주소지처럼 정확하게 ‘23-9’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때 남편이 등 뒤에 와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늦은 밤 가로등 밑의 벤치. 나는 그 날 밤 남편에게 반지에 관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나를 지그시 보았다.
- 병이다, 병.
또 화가 나려고 했다.
- 주인도 모르는 거고 장모님도 잊어버린 거고, 그 집에 있었으면 집 소유주가 주인이지. 그걸 무슨 고민이라고. 나 원 참.
정말 간단했다. 그런데 뒤에 남는 찝찝함은.
- 반지에 주소 같은 암호도 적혀 있는데.
남편은 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너, 지금 추리소설 쓰냐?
남편은 반지에 새겨진 글자를 가로등에 비추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 주소라고 치자. 대한민국 다 뒤져 찾을래?
나는 말문이 막혔다.
- 뭐, 장모님이 추억하고 싶은 뭔가가 있겠지. 혹시 금덩이라도 든 상자 번호인가?
남편의 장난질에 그만 웃고 말았다.
집착과 호기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누런 종이에 적힌 삼랑진 아지매를 기억해 보았다. 삼랑진 역 인근에 산다고 어머니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들이나 주변 농가의 과일들을 직접 기차에 싣고 새벽시장에 와서 팔았다. 오랜 장돌뱅이 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본능적인 직감으로 물건을 보는 안목도 있었다. 그 사람은 문맹이었다. 글자 하나 숫자 하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경매를 했다. 어머니 표현을 빌리면 경매 볼 때는 아주 딴 사람이라고 했다. 빠른 손놀림과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순식간이라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머니에게 그 사람은 정말 귀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꼭 받고 싶은 물건을 반드시 싸게 경매에서 따 와 주고 구전도 받지 않았다. 거친 장사꾼들이 어머니에게 협박이라도 할라치면 그 사람이 덤벼들어 싸워주기도 했다. 집에서 어머니 보호자는 아버지였지만 시장에서 어머니 보호자는 그 사람인 셈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과 그림자처럼 같이 다녔다.
그 사람 나이는 어머니보다 열 살 정도 위였다. 거구였다. 얼굴도 시커무퉤퉤하여 크고 손도 크고 발도 컸다. 가끔 어머니와 집에 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온 방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크고 트림 소리도 크고 거칠었다. 웃는 소리마저 컸다. 밥 먹는 소리도. 말도 쉬지 않고 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밥알이 밥상이며 바닥이며 온 사방에 다 튀었다. 말하면서 국 마시고 밥 떠먹고 기침하고 소리 지르고 입 안 가득 밥이 불룩했다. 수저 놓는 소리도 시끄러웠다.
후루룩- 쩝쩝- 으하하하- 하이고- 퉤퉤.
그래서 그 사람이 집에 오는 날이면 다들 피했다. 내가 한 번은 신경질을 낸 적이 있었다. 먹다가 사래가 들려 입 안 음식물이 온통 반찬마다 다 튀어버렸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 사람이야, 짐승이야?
어머니는 내게 눈을 흘겼다. 그 사람은 급하게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못 들은 듯 그대로 밥을 먹었다. 나는 토라져 일어나 버렸다. 그 사람은 돌아갈 때쯤 슬그머니 내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잘 익은 홍시 한 알을 책상 위에 놓았다.
- 이거, 묵고해라!
그 뒤로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기억은 없었다. 밥때가 되어 어머니가 식사를 권해도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 장에 가서 국밥이나 한 그릇 사 묵지, 머.
어머니 말처럼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장터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자라 거칠고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천성은 착한 사람이었다. 눈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하며 살아낸 것이다.
그래. 그거다. 삼랑진. 그날부터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삼랑진 어디 즈음에 있는 주소지일 것이다. 기억하기 쉽게 반지에 새겼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직감을 사실화시켜 버렸다. 남편은 마지못해 나를 따라나섰다. 직감이든 객관적 사실이든 맞다고 판단을 내리고 나면 뒤도 옆도 보지 않고 무조건 돌진한다는 것을 남편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말릴 단계가 훨씬 지나버렸다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와 그 사람이 한참 어울려 다닐 절정기에 감 장사를 몇 해 했다. 삼랑진 근처 감 농사를 짓는 밭을 봄에 미리 선금을 주고 계약을 해서 가을에 그 밭의 감 수확량을 전부 밭 채 넘겨받는 것이다. 수확량이 많고 감 농사가 잘 되는 해는 돈을 꽤 벌어들였다. 밭을 알아보고 거래를 터는 것은 모두 그 사람 몫이었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챙기는 것은 어머니 몫이었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냉동 저장고에 보관했다. 모든 수익은 반으로 나누었다. 어머니는 겨울 한 철 감을 판 그 돈으로 세 남매 등록금이며 교육비를 충당했다. 그래서 더욱더 어머니에게 그 사람은 귀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분명 그 숫자는 삼랑진 어딘가에 있는 감 밭 주소지일 것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머리를 짓눌렀다. 그러면 그렇게 중요한 것을 어머니가 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어떻게 잊겠는가. 반지에까지 새긴 것을. 몸이 달았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른 새벽, 일어나자마자 삼랑진에 간다며 기차역으로 달려가려는 나를 남편이 잠깐 잡았다. 예매를 했느냐, 삼랑진 인근 주소지를 검색해 봤느냐, 인근 주택과 임야 전부 다 감안했느냐 등등. 나는 그만 주저앉았다.
겨우 약속받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새벽에 역으로 오느라 빈속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역 부근을 배회하다가 간단한 요기를 하고 탐스럽게 생긴 감을 몇 알 샀다. 일반 단감이 아니라 볼록하게 솟아오른 대봉 감이었다. 그것을 어머니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다.
도~ 감.
독에 넣어 익힌 감이라는 뜻이었다. 발음의 높낮이가 단어 하나에 극과 극의 운율을 형성하는 정말 특별한 소리였다. 단감을 밭 채 받아 팔 때 즈음 그 사람과 어머니는 또 이 도~ 감이라는 것을 사들였다. 차돌처럼 딱딱했다. 이것을 커다란 독에 넣고 숙성시켰다. 그즈음이면 집 마당에 커다란 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숙성이 잘 된 감은 먹기 좋을 만큼 말랑말랑하게 익어 있었다. 그것은 시장에서 원 가격의 두 배 이상 비싸게 팔렸다. 그래서 나는 그 도~ 감의 숙성된 맛을 잊지 못한다.
오늘도 그 맛을 기대하고 기차 안 불쾌한 히터 바람 속에서 그 감을 한꺼번에 세 개나 먹어 치웠다. 그리고 십 분도 안 되어 다 토해버린 것이다.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토사물을 치우고는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쓰러진 척 실 눈을 한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 창피하지? 도착할 때까지 눈 뜨지 마라! 내가 창밖으로 던져 버릴지도 모르거든.
삼랑진 역.
도착하고 역사에서 나올 때도 남편 눈치를 흘금흘금 보았다. 23-9번지. 임야였다. 길을 물어가며 천천히 걸었다.
가을이다. 길옆으로 감나무들이 즐비했다. 탐스러운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가을이었네.
남편은 그제야 내 손을 잡으며 나란히 걸었다. 우리는 마을을 돌아 넓은 논을 지나 야산이 보이는 모퉁이를 돌았다. 그때였다.
황금산. 온통 황금빛이다. 낮은 야산 하나가 전부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감 밭.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내질렀다.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서 있었다. 저 쪽에서 허리가 휘어진 노파 한 사람이 낡은 유모차에 의지해서 다가왔다.
- 감 밭에 가는 교?
나는 머뭇거렸다.
- 감 딸라 카모 쪼매 기다리소. 이장이 와야 시작할 기요.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입구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손에 봉지나 커다란 광주리를 든 채.
- 여기, 무슨 체험장인가요?
남편의 말에 노파는 신기한 외래어를 듣는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기 먼교? 요~는 감 밭인데.
그때, 멀리서 이장인 듯 보이는 오십 대 사내가 바쁜 걸음으로 왔다. 그 뒤로 새마을 모자를 쓴 장년들이 몇몇 따라왔다. 모인 사람들 앞으로 나가더니 입에 손나발을 만들었다.
- 보이소! 한 사람이 스무 개 넘끼는 안 됩니더. 그라고 하루에 딱 한 번만 따야 됩니더.
남편이 손을 번쩍 들었다.
- 체험비는 얼만가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웃어댔다. 나는 갑자기 창피했다. 이장은 우리를 외계인처럼 바라본다.
- 거~ 오데서 왔능 교?
나는 남편 옷자락을 끌어 무리에서 빼냈다. 많이 창피했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었다.
- 23-9번지를 찾고 있어요.
- 여~가 거~ㄴ 대.
남편과 나는 기가 막혀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이장이 이상한 듯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 오데 찾는 교?
나는 대략의 정황을 설명하고 반지에 새겨진 번호를 보여주었다. 이장은 한참 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웃었다.
- 하이고. 인자사 주인이 왔네.
- 예?
거의 동시에 놀랐다.
- 일단, 사람들 감 쪼매 따구로 우리 집으로 가입시더.
우리는 의아해하며 이장 집으로 안내되어 갔다. 감 밭에서 멀지 않은 작은 부락이었다. 그 한가운데 위치한 낮은 벽돌집. 오십 대 초반의 아낙이 이를 드러내며 반겼다. 늘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인 것 같았다. 이장은 남편과 나를 볕이 잘 드는 거실로 안내했다. 아낙은 유자차와 감을 바로 준비해 내왔다. 나는 또 감을 덥석 잡았다. 남편은 나를 흘깃 보더니 감을 한 입 배었다.
- 십 년도 더 됐지예. 감 밭주인이 안 온 지가. 밭을 사 가꼬 울 아부지한테 감 농사를 부탁했지예. 그라고는 한 번도 온 적도 엄꼬 연락도 엄꼬. 아부지 말이 아짐매 두 사람이라 카는데. 알 길이 있어야제. 처음에 몇 년은 아부지가 농사짓고 조합에 감 소출 넘기서 제할 거 제하고 남는 거를 모았지예. 주인이 오모 주야 된께. 근데 해가 갈수록 모이는 돈은 자꾸 커지고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아부지도 자꾸 부담시러버 하시고. 그래, 내가 몇 해 전에 이장이 되고부터 고마 저래 감 밭을 아무나 와서 따구로 해삤지예. 처음 나오는 소출만 제할 거 제하고 남는 거는 전부 다 퍼 주는 기라. 허허.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하게 저려왔다. 아. 어머니. 그리고 그 사람. 낡은 집 수저통 뒤에 숨겨둔 주소.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곳.
- 아부지 말이 처음 일 년을 삼랑진 인근 마을을 돌민서 그 아짐매들을 찾았답니더. 그런데 알 길이 있나. 그라다 역 근방 어떤 집에서 늙은 과부 한 사람이 상을 당했는데 아부지 말이 똑 그 사람 같다는 기라. 아짐매 한 사람은 도회지 사람 같았고 한 사람은 역 근방에 사는 장날 마이 본 장꾼 같았다 카데예.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십 년쯤 전, 그 사람은 삼랑진 자기 집에서 밤에 자다가 심장 마비로 죽었다. 며칠이나 지나도 장에 나타나지 않아 어머니가 그 집까지 내려가 보고 발견한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일주일 동안 물만 먹다가 쓰러져 입원했다. 어머니가 입원한 것은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감 장사가 성황을 이루어 둘이 돈을 모아 이 밭을 샀을 것이다. 사고 얼마 안 되어 그 사람이 죽고 둘이 하나씩 나눠 가지려고 주소를 새겨 간직한 반지는 주인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잊힌 듯 있었을 것이다.
- 인자 주인이 왔으이 됐소.
남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내 알기로 그 삼랑진 아지매는 피붙이가 엄소. 그러이 당신들이 주인이지.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낙도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가 아득했다. 갑자기 구토가 났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남편은 이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아낙이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준다.
- 괜찮십니꺼? 우짜노. 빈속에 감 잡샀는 갑다. 속 다 베리는데….
다시 와서 자리에 앉자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장은 아낙을 향해 낮게 말을 건넸다.
- 찬 준비해라. 귀한 분들 오싰는데.
- 참. 내 정신 바라.
아낙은 입가에 미소를 물고 부엌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이장 집 작은 방에 누워 있었다. 창 너머 붉은 감나무가 한 그루 보였다. 어지러웠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멀리 감 밭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산을 타고 메아리처럼 아련하게 들려왔다.
- 이장님. 이장님.
- 와.
- 감 밭에 사람들이 하도 마이 와서. 쪼매 와 보시야 되겠습니더.
- 쪼매마 기다리라. 귀한 손들 오시서. 밥만 퍼뜩 묵고 가세.
이장이 누군가와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 올라가서, 가족들과 의논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라이소. 내는 주인 찾은 것만 해도 묵은 체증이 팍- 내리 가는 기라. 허허.
남편과 이장의 목소리였다.
아낙이 끓인 쇠고깃국과 나물 반찬을 먹고 속이 조금 편해졌다. 우리는 다시 감 밭으로 가 보았다.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입구에 줄을 지어 있었다. 이장은 신이 나서 밭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감을 따는 사람들을 도왔다. 시골 사람들도 있었고 자가용을 타고 온 인근 도시 사람들도 많았다. 이장 말에 의하면 한 해 두 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제는 마을 행사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입구에 자가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꽤 오래 지켜보고 있다가 돌아오는 기차를 놓쳤다. 남편은 나무라지 않았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사 안에서 해지는 가을 들녘을 바라보았다. 황혼의 들녘은 모든 감성을 다 끌어내어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눈시울을 붉히며 앉아있었다.
- 나, 비밀 하나 가지고 살고 싶다. 어머니처럼.
남편은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참 멋진 사람들이다. 너도 …….
늦가을 황혼은 오래도록 감빛으로 물들어 저물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