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시간의 진통과 자연분만 시도 끝에 제왕절개 - 다사다난 출산 후기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해 엘림아 - Welcome to the world my baby boy Elim!
엘림이의 출산과정은 참으로 다사다난했습니다. Long story short,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산 중에 난산이었습니다. 장장 29시간 동안 진통하며 자연분만을 시도했지만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결국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저희 가족은 엘림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그날의 진통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아 미루고 미뤄뒀던(.... ㅠ_ㅠ) 출산 후기를 오늘에서야 공개합니다.
감정이입 주의, 읽기만 해도 아픔 주의.

임신 39주 2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엘림이의 출산 예정일이 6월 30일이었으니, 이날은 예정일을 5일 앞둔 날이었지요.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이른 새벽, 심상치 않은 아랫배의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전에 없던 통증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면서 잠이 확 깰 정도였습니다. '설마 진통인 건가. 오늘은 아닌데... 오늘은 아녔으면 좋겠는데... '.
엘림이의 외할머니이신 나의 친정엄마께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려고 전날 오후에 인천공항을 떠나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오고 계셨습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5시간 후, 새벽 6시가 되면 일어나 준비하고 공항으로 가 친정엄마를 픽업할 예정이었습니다. '혹시 정말 진통이 시작된 거면 엄마를 모시러 가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픈 배를 잡고서 엉금엉금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세상에나...! 출산준비 책에서만 보았던 이슬(피가 섞인 분비물, 출산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림)이 비췄습니다. ‘드디어 열 달을 기다려온 엘림이를 만날 수 있는 건가...!’.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진통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임신기간에 미리 다운로드하여두었던 ‘순산해요’ 진통 간격 측정 앱을 켜고 진통 간격을 확인했습니다. 30-40초가량 배와 허리가 뒤틀리는듯한 진통이 이어진 후, 4-5분 동안은 견딜 만 해지는 휴식이 찾아왔습니다. 고로, 진통 간격은 약 5분 정도.
출산 전, 미드와이프(Midwife)와 출산 상황에 대해 함께 공부를 했었습니다. 미드와이프란 ‘조산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 옛날 출산을 돕던 조산사를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미드와이프가 임신과 출산, 산후 점검까지 임신, 출산의 모든 과정을 담당합니다. 임신기간 동안 2-3주에 한 번씩 미드와이프를 만나게 되는데, 미드와이프는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점검하고, 초음파나 피검사 등의 진료에 필요한 소견서를 써주며 지난 검사 결과를 확인하여 결과를 알려줍니다. 출산 시에는 내진에서부터 회음부 봉합까지 모두 미드와이프 담당입니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거나 아기의 상태가 위급할 때만 의사의 도움을 받고, 일반적인 자연분만의 경우 미드와이프가 출산에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도맡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산후 6주간 산모의 집에 방문하여 아기와 산모의 건강상태를 검진해주기도 합니다. 미드와이프를 만나 진료받는 일에서 출산 전 과정, 산후 미드와이프의 검진까지 모든 비용은 전적으로 나라 (New Zealand)에서 부담합니다.
미드와이프와 공부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의 제 상태는 진통의 첫 단계(First stage)인 ‘자궁의 열림’ 과정, 그중에서도 진통 간격이 매우 긴 Contraction 단계였습니다. 밤중에는 연락하지 말고 휴식이나 잠을 청하라는 메모를 보며 이어지는 진통을 이를 악문 채 견뎠습니다.
전날 신랑과 저녁으로 미역국을 끓여 맛있게 먹었는데 그걸 모두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은 간격을 줄여가며 이어졌지만 진통 1분에 휴식 3분, 아직은 4분 간격. 이미 다섯 시간 반의 진통을 견딘 상태라 일단 미드와이프에게 연락했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집에서 진진통이 될 때까지 대기명령.
뉴질랜드의 출산 병동은 자궁문이 5cm 이상 열리지 않으면 입원 수속을 해주지 않습니다. 아기를 출산하려면 자궁문이 완전히 열려야 하는데 그 길이가 10cm로, 일반적인 초산모의 경우 자궁문이 1cm 열리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고생해서 병원에 간다 한들, 자궁문이 5cm 이상 열리지 않았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례로 저보다 일주일 앞서 출산한 한 산모의 경우, 자궁문이 5cm 이상 열리지 않아 병원에서 세 번을 퇴짜 맞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의 임산부들은 출산에 앞서 미드와이프와 함께 어느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지 계획을 세우고 출산을 원하는 병원에 미리 등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제 경우, 원래 오클랜드 시티병원(Auckland City Hospital)에서 출산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미드와이프가 담당하고 있던 다른 산모가 이미 노스쇼어 병원 (North Shore Hospital, 집에서 길이 안 막히면 40분 거리, 막히면 1시간 40분까지 걸려본 적 있는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 곳)에서 진통 중이라며 저희가 노스쇼어 병원으로 와주거나 아니면 다른 미드와이프(Backup midwife)를 통해 출산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태껏 임신기간 동안 저를 살펴봐주신 분이 아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다른 미드와이프와 출산을 진행하는 것은 어쩐지 탐탁지가 않아서 먼 곳이지만 노스쇼어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신 친정엄마의 공항 픽업을 저희 부부가 나가는 일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남편과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진통을 함께 견뎌내는 동안, 친정엄마 픽업은 시부모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친정 엄마와 함께 저희 집에 도착하신 시부모님께서는 곧바로 출근하셔야 했기에 잠깐 무사히 순산하기를 기도해주신 후 가셨고, 친정엄마는 그때부터 집에서 생진통하는 저를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토하는 증세가 여전히 이어졌습니다. 아기를 낳을 때 힘주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물만 마셔도 위액까지 토하는 바람에 완전히 빈속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탈수 증세가 오면 어떡하나.. 뱃속의 아기는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은 길면 2분까지 지속되었고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진통이 오면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야 했습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져 남편에게 부탁해 미드와이프에게 사정을 설명해보기로 했습니다. 임신기간을 함께해온 미드와이프와 출산까지 함께하기 위해 먼 거리지만 노스쇼어 병원까지 가기로 작정했는데, 저희가 가겠다고 한들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리 등록하지 않은 새로운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병원 측에 물어봐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노스쇼어 병원에는 여유 출산 병실이 있었고, 원한다면 와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 1분 이상 지속되는 진통이 매 2-3분 간격으로 이어졌고, 결국 12:30pm까지 병원으로 오라는 미드와이프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며칠에 걸쳐 미리 챙겨뒀던 출산 가방을 챙겨 들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언제 진통이 올 지 몰라 임신 막달에 조금씩 챙겨뒀던 출산 가방이 드디어 빛을 발할 타이밍이었습니다. 당일에 챙겨야 할 세면도구, 미역국, 밥을 제외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가방이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빨리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입원 수속을 밟은 후, 병실에서 미드 와이프를 기다렸습니다. 12:30 pm, 병원에 도착한 미드와이프를 만나 첫 내진을 실시했습니다. 세상에나... 자궁문은 겨우 1cm 열려 있었습니다. 별수 있나요, 저도 역시 집으로 돌려보내 졌습니다.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는 진통인데도 불구하고 병실에서 쫓겨나는 심정이란... 실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진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드와이프의 조언대로 파나돌 (뉴질랜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진통제, Painkiller. 태아에게도 무해한 성분으로 진통 시 매 6시간마다 2알씩 먹을 것을 권장한다.)을 두 알 챙겨 먹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토해냈습니다. (...ㅠㅠ)
물만 마셔도 게워내기를 또 서너 번, 집에서의 진통시간이 벌써 14시간째였습니다. 바로 옆을 지키던 남편과 친정엄마 두 사람 모두 이어지는 구토에 탈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구토가 심하다는 연락에 결국 미드와이프도 4시까지 집에서 버티다가 그쯤 다시 병원으로 와보라고 허락했고, 퇴근시간이 가까워 길이 막힐 시점인지라 20분 서둘러 병원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출퇴근이 한국보다 빠른 (참고로 제가 막달까지 엘림이와 함께 다녔던 저희 회사의 출근시간은 오전 여덟 시, 퇴근시간은 오후 4시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오후 4시부터 서서히 길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보겠다고 20분을 서둘러 나왔지만 확실히 오전보다 길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보조석에 앉아 차량 손잡이와 차문 손잡이, 남편 손, 친정엄마 손 등 진통이 오면 뭐든 잡고 이를 악물고 버티는 그 시간이 마치 억겁 같이 느껴졌습니다. 겨우 병원에 도착해 미드와이프를 만나 두 번째 내진에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자궁문은 4cm.....! 원칙을 따르자면 또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어진 구토로 인한 탈수 걱정과 너무 먼 집까지의 거리를 배려한 미드와이프 덕분에 입원이 허가되었습니다. 진통이 시작된 지 벌써 16시간째. 일단, 구토로 인한 탈수를 막기 위해 수액을 먼저 맞았습니다. 친정엄마는 한국에서부터 12시간 이어진 비행 후 쉬지도 못하시고 내내 딸이 진통하는 모습을 지켜보셔야 했고, 그 무렵 회사일을 마치신 시부모님 두분도 병원에 도착하셨습니다. 입원과 동시에 매 한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내진이 진행됐습니다.
상상조차 힘든 출산 진통을 16시간째 견디다 보니 진통제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지금 이 고통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임신 기간 중 저희 부부는 진통제의 부작용을 알게 된 후, 가능하면 모든 진통제를 쓰지 않고 오직 산모의 정신력과 부부의 사랑(?)으로 진통을 버티는 Mindful birthing (번역하자면 자연주의 출산에 가까움)을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란 가혹합니다.... Mindful Birthing은 이미 제 머릿속에서 안드로메다급으로 빠르게 멀어져 갔습니다. "Gas 줄까요?"라는 미드와이프의 질문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네, 당장 주세요"라고 대답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출산 시 뉴질랜드에서 사용되는 진통제의 종류를 소개해보겠습니다. 먼저 Gas에 대한 설명입니다.
Gas는 아이와 산모 두 사람에게 모두 해가 없고 자궁의 수축이나 출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아 가장 흔하게, 거의 모든 산모가 사용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진통제입니다. 흔히 한국에서는 웃음가스 (Laughing Gas)로 알려져 있으며 흡입했을 때 술 마시고 취했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약간 어지러워지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어떤 산모는 Gas를 흡입하고서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정말 취했을 때 모습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산모의 구역질과 구토 정도가 있습니다. 저도 Gas의 도움을 받아 약간 알싸(...?) 하게 취한 느낌으로 진통을 조금이나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가스!!!'를 외쳤고 옆에서 가스 호스를 들고 대기하던 남편은 입에 호스를 착! 붙여줬습니다. (생각보다 가스 호흡기의 무게가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고, 약 한 시간이 지나자 그렇지 않아도 진통 내내 이어지던 구토가 가스로 인해 배가 되어 자꾸 구역질이 났습니다. 진통제로서 가스가 수명을 다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없이 이어지는 진통에 너무 괴로워하자 진통제 안 주기로 소문난 저희 미드와이프님께서 먼저 진통제를 권유(...!)하는 진기한 풍경이 발생했습니다. "Pethidine (페씨딘, 다음 단계 진통제. 근육주사로 허벅지에 맞는다) 줄까요? "
"Pethidine 당장 주세요 ㅠㅠ" 망설일 여력이 없었습니다.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효력이 발생한다던 페씨딘. 허벅지에 주사를 맞으며 부작용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페씨딘의 부작용은 이러합니다.
산모 부작용 : 메스꺼움, 구토, 호흡 부진
아기 부작용: 페씨딘을 맞고 4시간 안에 태어난 아기는 호흡 부진을 경험할 수 있고, 젖을 찾고 빨려는 본능이 약해질 수 있다. 신생아에게 페씨딘을 주사하는 일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무렵에는 배에 태동기와 진통계를 달아놓고 아이의 상태와 진통 주기를 모니터하고 있었는데요, 혹시라도 태아의 심박이 느려지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이를 출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엘림이는 페씨딘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이른바 'Happy Baby'였습니다. 심박도 너무 좋았고 배안에서 태동하며 노는 것도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페씨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비단 엘림이 뿐이 아니었으니... 제 몸에도 페씨딘은 전혀 진통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진통이 이어졌고, 미드와이프는 그다음, 마지막 진통제이자 '무통 천국'으로 불리는 무통주사 (Epidural)을 제안했습니다. 임신기간 동안 다른 진통제를 다 써도 무통주사만큼은 안 쓰겠다고 (척추에 꽂아야 하는 굵고도 굵은 바늘을 먼저 봤으니... 주삿바늘 공포가 심한 저로서는 제발 피하고 싶은 진통제였습니다ㅠㅠ) 다짐했던 저였지만 그 결심은 단번에 무너졌습니다. "당장 무통주사 주세요~~~~"
무통주사는 원한다고 모두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금식을 해야 하고, 무통주사를 맞기 시작하면 하반신이 마비되므로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소변줄을 꼽아야 하며, 수액을 맞아야 하고, 태동기를 달며 태아의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계속해서 이어진 구토로 본의 아니게 금식 중이었고, 수액도 맞고 있는 상태였으며, 페씨딘 덕에 태동기도 달고 있는 상태라서 소변줄만 꼽으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무통주사는 마취과 전문의를 통해 맞게 되는데, 의사가 도착하고 척추에 주사를 맞기 위해 침대 끄트머리에 척추를 웅크린 채로 대기하면서 남편에게 기대 눈물을 퐁퐁 쏟아냈습니다. 그 죽기 살기의 진통 중에도 척추에 들어갈 주삿바늘은 무서웠습니다. (....ㅋㅋㅋ 다시 생각하니 참 웃기네요) 무통주사가 척추를 타고 흐르는 느낌과 함께 쏴- 하게 등이 시원해지면서 마치 심봉사가 눈뜨듯이 (?) 세상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와 다리의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진통을 느낄 수 없게 되었으며 드디어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나... 무통 천국이란 것이 이걸 말하는 거구나 200프로 공감하게 됐습니다. 진통이 느껴지지는 않으나, 여전히 자궁 문의 벌어짐이 진행 중이었고 진통계의 수치는 계속해서 진통이 잘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무통주사로 인해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가족들과 대화도 가능해졌습니다. 진통하는 내내 곁을 지켜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해졌습니다. 그사이 자궁문은 7cm 까지 벌어졌습니다.
무통주사의 부작용도 어마어마합니다. 일단 산모와 아기의 혈압이 떨어질 수 있고, 기절하거나 구토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출산 과정 자체가 지연될 수 있고, 힘주는 게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게는 일어나지 않은 부작용이었고, 감사하게도 여전히 뱃속의 엘림이는 Happy Baby였습니다. 엘림이의 혈압도, 태동도 감사하게도 정상적이었습니다.
'어, 이상하다... 무통주사 잘 맞았는데 이건 뭐지....' 1시간쯤 무통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아홉 시가 되니 갑자기 아랫배 쪽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오른쪽 허리가 쎄- 하게 아파왔습니다. 오른쪽 허리의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미드와이프는 마취 전문의를 다시 부르기로 했습니다. 꽤 자주 무통주사의 마취가 풀리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만 마취되기도 한다는 의견을 들은 후 매시간 무통 주사액의 복용량을 늘려 주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경우 오른쪽 몸 반신의 마취가 풀려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왼쪽 몸과는 달리 오른쪽 허리와 배로 모든 진통이 느껴져 그 반신의 감각을 이겨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무통은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매시간 복용량을 늘려 무통주사를 주입 (Top up)하고 있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오른편 몸을 오징어처럼 뒤틀며 "아아아 아~ 내 허리 ㅠㅠ"를 반복해야 했고, 남편은 애꿎은 오른쪽 허리를 계속해서 마사지해야 했습니다. 쏟아부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무통 주사액에도 불구하고 천만다행으로 뱃속의 아기 엘림이는 여전히 Happy Baby 상태였습니다. 미드와이프와의 내진은 계속해서 매 두 시간마다 이뤄졌습니다. 무통주사를 맞기 전 7cm 열려있던 자궁문이 두 시간 후 9시에도 7cm 그대로였습니다. 그 후 11시에도 여전히 7cm. 수축(Contraction)이 오는 순간 힘을 주면 겨우 9cm까지 벌어지긴 했지만 남은 1cm가 문제였습니다. 밤 11시, 미드와이프는 두 시간을 더 기다려본 후 새벽 1시에도 자궁문 열리는데 차도가 없으면 다른 수를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신 마취가 풀린 저는 짐승 소리를 내며 새벽 1시까지 버텨냈습니다. 진통이 시작된 지 딱 24시간째가 됐습니다. 여담으로 그 사이, 옆방에서 진통하던 저의 진통 동기 산모는 오로지 Gas만을 진통제로 사용하며 12시에 드디어 아기를 낳았습니다. '응애!' 하는 옆방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도 곧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새벽 한 시가 되었고, 미드와이프의 내진 결과 여전히 자궁문은 7cm에서 더 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내진 결과를 의사랑 상의하고 온 미드와이프가 얘기했습니다. '아무래도 태아의 자세가 문제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자궁문 열리는데 차도가 없는 걸 보니.. 아기가 OP position 즉,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게 아무래도 문제인 것 같네요.'
태아의 뱃속 자세에 대해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Anterior (왼쪽 사진) : 아기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있고 아기 얼굴이 엄마의 등을 보고 있는 자세. 아기의 턱이 가슴에 붙어있고 머리가 골반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자세로 아기는 머리와 어깨를 움직일 수 있고 턱을 가슴에 붙일 수 있다.
Posterior (오른쪽 사진) : 아기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지만 얼굴은 엄마의 등이 아닌 배 쪽을 보고 있는 자세. 이 자세는 OP (Occipito- Posterior)라고 불리며 분만 1기에 적게는 약 1/10에서 많게는 1/3 아기가 이 자세. 이 자세를 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출생 전에 얼굴을 등 쪽으로 돌리는데 10-28% 의 아기는 마지막까지 돌지 않는다고. 이 자세를 하고 있는 아기는 분만 기간이 길어지고 심한 요통을 겪을 확률이 높다.
출산 전부터 걱정해왔던 엘림이의 자세가 출산 순간에도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엘림이는 임신기간 내내 Posterior 자세로 저와 같은 방향을 보고 누워있었는데요, 배 쪽에서 뱃속 엘림이의 손이며 발을 모두 느끼고 만져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진통 기간 내내 심각한 허리 통증을 겪은 이유도 바로 이 Posterior자세 때문이었습니다. 태아의 척추와 엄마의 척추가 나란히 있을 경우 요통이 아주 심해진다고 합니다.
미드와이프는 걱정 어린 얼굴로 두 가지 얘기를 전해줬습니다.
첫 번째,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자궁 안으로 전문의사가 손을 넣어 아기의 자세를 돌려서 자연분만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나는 이제 집으로 가야 한다.
두 가지 얘기가 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 잠시 눈물....) 첫째로, 손을 넣어서 뱃속 아기의 자세를 돌린다...? 처음 겪은 내진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는데, 이 무슨....
둘째로, 집에 가셔야 한다고요? 그럼 저는요...? (... 또다시 눈물....)
미드와이프가 집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벌써 12시간 이상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무리라며 병원의 Staff들이 퇴근을 종용한 것입니다. ' 12시간 이상 근무하게 되면 피로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수 있어. 너는 이제 퇴근해야 해.' 그렇습니다. 이곳은 뉴질랜드입니다. 의료인이 피로로 인해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과도한 근무는 애당초 불가능하게 법으로 제한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24시간 진통한 시간이 아까워서 이대로 제왕절개를 하지는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진통을 빨리 끝내고는 싶었지만 이대로 수술을 한다면 나중에 후회와 미련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상의 끝에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 손으로 아기를 돌려보자!'
이윽고 제 담당 미드와이프는 집으로 돌아갔고, 병원 소속의 미드와이프들이 저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태아를 손으로 돌리는 일은 숙련된 담당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전문적인 의술(?)이었습니다. 그 의사를 만나 아기의 상태를 점검하려면 무통주사 없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벌써 시간은 새벽 3시였습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아기를 손으로 돌리는데 최고의 권위자라는 여의사가 도착했습니다. 초음파기기를 가지고 와서 어떤 식으로 진료가 이뤄질지 설명 해준 후, 본격적인 진료에 들어갔습니다.
여의사는 당차고 자신만만했습니다. '내가 꽤 많은 아이들을 손으로 돌렸고, 그렇게 해서 제대로 자세를 잡고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아주 많았어. 물론 손으로 자세를 돌린 후에도 또 원상태로 돌아가서 수술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꽤 자신 있어. 너의 미드와이프로부터 들은 아기의 자세라면 내가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거야.' 암요, 저도 당신을 믿어요. 24시간의 진통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음파 기기를 설치 후, 내진을 하는 여의사의 표정이 이상합니다. 동공 지진...? 몇 번을 뱃속 아기를 만져보고 또 만져보던 여의사의 입에서 드디어 짧은 한마디 표현이 나왔습니다.
"Hmmm, Interesting...."
흥미롭다니요... 도대체 뱃속의 엘림이는 뭘 하고 있는 건가요.... ㅠㅠ 이어 의사가 설명했습니다. 보통의 아기들은 출산에 앞서 머리를 가슴 쪽으로 당긴 채로 정수리부터 자궁문을 통과할 준비를 하는데, 엘림이의 경우 얼굴을 치켜들고 자궁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수리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넣은 손에 엘림이의 얼굴이 만저져서 여의사가 놀랐던 것입니다. 여의사는 엘림이의 턱을 엘림이 가슴 쪽으로 붙여 정수리가 자궁 문쪽을 향하도록 자세를 돌리고 척추를 돌려세워 Anterior 자세가 되도록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내진보다 더 심한 공포의 손 넣어서 아기 돌리기가 시작됐지만, 진통이 너무 힘들었기에 실은 아기를 돌리는 일은 그리 괴롭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자세를 의사가 돌려서 고정하면 아기를 낳을 것처럼 힘을 주라고(Push) 했습니다. 아기를 돌리는 일은 대성공! 아기가 이제 산도로 많이 내려왔고 이대로 아기의 자세가 고정된 채 자궁문이 1cm만 더 열리면 자연분만까지 무리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계속해서 힘을 주며 한 시간을 대기한 후, 내진을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아기를 손으로 돌린 후 대기하기를 한 시간, 내진 시간이 또 다가왔습니다. 이번 내진에서 자궁문이 다 열렸다면 이제 정말 힘주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뜨든..... 엘림이는 개구쟁이였습니다. 힘들게 손을 넣어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자세로 복귀해있었습니다. 엘림아....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이제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이 사라졌습니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이 결정됐습니다. 수술실이 준비되고 수술실 Staff들이 구성되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고 새로운 마취제를 준비하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무통주사마저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진통제를 새롭게 준비해서 맞아야 했는데 감사한 것은 이 과정에도 불구하고 엘림이는 여전히 Happy baby 였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수술실로 이동하여 가장 강력한 마취제를 투입했습니다. 하반신 마취제였는데 마취제를 주사하자마자 전신이 들썩거리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습니다. 팔다리 어깨 이까지... 덜덜 떨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 우리 이제 곧 엘림이 만나는 거야..'라고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마음이 뭉클해졌고 곁에서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남편의 사랑에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술 시작하고 약 십분 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으앙~~~~" 엘림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리 부부도 함께 울었습니다. 엘림이 가 태어난 시각은 6시 13분이었습니다.
길고 긴 29시간의 진통 끝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우리 엘림이의 출산 후기였습니다. 오늘은 엘림이가 태어난 지 28일째 되는 날입니다. 4주가 지났으니 신생아를 졸업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4주 만에 돌아보니 아득하게 먼 옛날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엄청난 양의 진통제를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Happy Baby로 태어난 우리 엘림이가 참 기특해집니다.
출산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겪고서 엘림이를 낳고 보니, 한 생명이 탄생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도 값진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