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엘림이를 뱃속에 품었던 열 달, 임신기간 동안의 기록.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흔히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기적 같다고들 말합니다. 저는 임신기간 열 달 동안, 만나보지도 못한 미지의 존재인 뱃속의 아가 엘림이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는 말 아니고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임신 열 달 동안을 열심히 뱃속에서 꼬물거리며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던 우리 아가 엘림이. 사랑하는 아가엘림아, 너를 품은 열 달 동안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단다.
결혼하고 4년, 엘림이의 태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엘림이 이름과 관련된 스토리는 다음 포스트에 나눌 예정입니다.) 기도하길 1년. 엘림이를 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인내하며 엘림이가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작 엘림이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던 그 날은 생각했던 것만큼 극적인 기분이 들지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도, 기뻐 마음이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고 꽤나 무덤덤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상상해왔던 그 순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두줄이 선명한 테스터를 들고서 그저 눈을 껌뻑껌뻑거렸습니다. 정말, 임신인 건가. 남편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서로 바라보며 두 눈만 껌뻑이다가 서로를 안고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뉴질랜드는 공식적인 임신 확인을 GP (General Practitioner: 지역 보건의. 병원이 아닌 지역 담당 의료 기관에서 일반적인 진료를 하는 의사)를 만나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해서 합니다. 임신이 확진되면 Bounty Book이라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를 담은 책을 선물로 줍니다. Bounty Book을 들고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남편이 찍었었던 거 같은데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남편의 휴대폰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서 참 놀랐습니다.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줄이야.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작은 교회당이 있습니다. 저희는 작은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가족을 포함한 총하객이 40명 정도 되는 결혼식이었습니다. 이 낡은 예배당을 결혼식 장소로 택하게 된 데에는 한 백인 할머니와 손주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크리스천이기에 결혼식을 혼인 예배로 드리기로 결정하고 장소는 교회로 결정했지만, 세상에 교회는 수도 없이 많고 적당한 교회를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작은 결혼식을 했기 때문에 교회당도 화려하고 큰 것보다는 수수하고 작은 곳을 찾고 싶었지요. 그러던 중에 발견한 이 교회. 교회 관계자와 약속을 잡고 교회를 둘러보러 찾아간 날이었습니다. 저희가 혼인예배를 드렸던 작은 교회당은 1843년에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오래된 건물 특성상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문을 잠가둔 채로 한 달에 한번, 매 첫째 주 주일에만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예배(Communion in the Chapel) 드리기 위해 사용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희가 교회를 둘러보느라 문을 열어둔 틈에, 한 백인 할머니와 다섯 살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가 손을 잡고 들어왔습니다.
"문이 열려있어서 반가워서 들어왔는데... 잠시만 손주와 함께 둘러보고 나가도 될까요?"
우리에게 교회당을 투어 시켜주던 담당 목사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허락하셨고, 아이의 손을 잡고서 백인 할머니는 교회당을 걸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여기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결혼했던 곳이야. 이 복도를 걸어가 할아버지와 저기 끝에 나란히 섰단다.”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순간, 저는 '아... 나도 이 교회당에서 결혼해야겠다' 다짐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그 백인 할머니처럼 나이 지긋이 들었을 때, 저도 손주 손을 잡고 이 교회당을 찾아와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어 졌습니다. 비록 뱃속에 있었지만 엘림이와 함께 보내는 첫 결혼기념일이었고, 우리는 이 교회당 앞에서 결혼식 때와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임신을 확인한 후 첫 초음파 날이 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7일, 임신 6주 3일 차 (2개월).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초음파 기계의 검은 화면에서 반짝이는 작은 하얀색 무언가를 보며 뭉클해졌습니다. 아기의 심장이었습니다. 잘 뛰고 있었고, 콩처럼 작은 주머니(난황)가 아기의 심장 바깥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임신기간 동안 아이나 산모에게 큰 이상이 없다면, 딱 3번만 초음파를 봅니다. 임신 6주 차에 한번, 임신 12주 차에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임신 20주 차에 정밀 초음파. 그리고 한국처럼 넉넉하게 초음파 사진을 뽑아주지도 않습니다. 가지고 싶다고 부탁을 하면, 두어 장쯤 인쇄해서 줍니다. 그래요... 이날도 저희는 초음파 사진은 구경도 못해보고 눈과 마음에 반짝이는 작은 아기의 심장을 담고 나와야 했습니다.
첫 초음파를 보고 와서부터 드디어 입덧이 시작되었습니다. 입덧이란 게 이렇게나 힘든 건 줄 몰랐습니다. 입덧 중에서도 가장 괴롭다는 토덧이 시작되었습니다. 뭘 먹어도 토하는 입덧입니다.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물을 마셔도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내 몸이 너무나 아프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데, 심지어 이 아픈 몸에 약도 쓸 수가 없으니 정말 괴로운 심정이었습니다. 이러다 탈수로 아기나 제게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급기야는 응급실 행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입덧에 좋다는 건 뭐든지 했습니다. 입덧 차, 입덧 약, 입덧 완화 용품들... 효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입덧기간 내내 의지했던 것이 위에 보이는 입덧 팔찌입니다. 손목에서부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아랫부분에 지압해주는 저 돌기가 닿도록 착용만 해주면 되는데 실은 이 제품은 멀미에 탁월한 효과를 가진 제품입니다. 입덧도 하루 종일 멀미하는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나름대로 조금의 심리적인 위안이 되긴 했던 것 같습니다. 입덧기간 내내 제 손목에는 하얀색 지압 부분으로 인해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몸은 아픈데 아직은 임신을 알리기엔 이른 시기라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못 하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드디어 임신 안정기로 불리는 12주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임신 4개월 차가 되었고, 초음파 사진을 올리며 임신을 알리는 대신 우리만의 색다른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남편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알아주는 집순이입니다. 집을 꾸미고 살림하고 정리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임신 알림 사진도 현란한 스튜디오 사진보다는 집이라는 우리만의 편안한 공간에서, 우리 둘의 힘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우리만의 임신 알림 사진! 신혼집을 꾸밀 때 다른 것보다 신경 썼던 가구가 바로 이 의자입니다. 미국 모던 가구 디자이너 부부인 Charles와 Ray Eames가 디자인해 일명 Eames Chair ( 임스 체어)로 유명한 이 의자를 독특하고 통통 튀는 색깔로 모으기 위해서 몇 개의 가구점을 돌아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임스 체어 아기 버전! 이걸 보자마자 '그래! 언젠가 엘림이가 찾아오면 임신 알림 사진을 꼭 이 의자를 이용해 찍겠어!' 하고 다짐했었더랬죠. 그리하여 완성된 우리의 임신 알림 사진입니다.
뉴질랜드에서 12주 차 임산부는 두 번째 초음파를 찍게 됩니다. 이날은 특별히 NT Scan이라 불리는 목 투명대 검사를 집중적으로 하게 되는데요, 태아 목둘레 검사란 태아 목 뒷부분의 피부 아래 투명대의 두께를 측정하는 검사로 임신 11~13주 6일 사이에 초음파를 통해 측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아기들의 투명대 속에 액체가 들어있는데 다운증후군 아기의 경우 이 액체의 양이 더 많습니다.
태아 목둘레 검사는 다운증후군 위험도를 측정하는 선별검사입니다. 선별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 위험도를 가늠한 후 고위험군으로 판단될 경우 융모막 융모검사(CVS)나 양수천자 검사와 같은 진단 검사를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검사의 경우 확률이 아주 낮긴 하지만 검사 자체로 인한 유산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 목둘레 검사만으로 아기의 다운증후군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낼 수는 없기 때문에 진단검사를 시행해야만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림이의 목 투명대 두께는 안전 범위였고 초음파를 봐주던 전문가는 "모든 게 정상이야. (All is normal.)"라고 말했습니다. Normal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들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보통인 경우, 평범한 경우에 자주 썼던 Normal 이 이렇게 기분 좋은 단어였을 줄이야. 앞으로의 임신기간 동안 모든 엘림이의 상황과 저의 상황이 Normal이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연말이 되었고 임신 4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아랫배가 제법 나왔고, 타이트한 옷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에 살도 제법 올랐고, 힘겨웠던 입덧이 거의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임신 16주 차에는 한국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친정 엄마의 환갑을 맞이하여 3주간 한국에 방문해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먹덧을 뽐내고 왔습니다. 입덧이 진정되자 세상의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 보이는 진귀한 경험, 먹덧이 시작됐습니다. 어릴 때 병아리를 키웠었는데 그때 봤던 귀여운 병아리의 발이 닭이 되며 징그러워지는 게 너무 끔찍해서(...?) 태어나 한 번도 닭발을 먹어본 적 없었는데 세상에나.... 먹덧이 시작되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닭발까지도 너무나 먹고 싶어 져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한국에 간 김에 먹고 싶었던 음식 리스트를 한가득 적어서 미션을 수행하듯 하나둘씩 지워가며 다 먹고 왔습니다. (ㅋㅋㅋㅋ) 임부복이 편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느덧 임신도 중반을 넘어가고 6개월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먹덧이 본격화되면서 체중이 늘기 시작했지만, '내 평생에 언제 이렇게 체중 걱정 없이 먹고 싶은걸 또 맘껏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져서 이 시간을 즐거이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때부터의 삶은 한마디로 '먹고, 먹고, 또 먹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임신 25주 차부터는 산전 교실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산전 교실이란, 앞으로의 임신 3기 (Third trimester)에 나타나는 증상들과 출산에 대해 부부가 함께 본격적으로 배우는 곳입니다. 성격 급한 저와 신랑은 25주가 되자마자 산전 교실 수업을 받으러 갔는데, 막달 임산부들만 가득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터질 듯이 불러온 배를 안고 앉아있는 만삭 임산부 부부들 사이에서 엘림이 엄마와 아빠는 동글동글 작은 배를 쓰다듬으며 앉아있었는데, 그 덕에 만삭 임산부들의 귀여움을 한껏 받았습니다.
7개월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법 배가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분들로 부터는 '배가 작다'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배가 작다니 정말 그런가? 숨쉬기도 불편하고 지금 배도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아기가 작나?' 괜한 걱정들이 머릿속을 오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윗 사진의 배경은 아가 엘림이 임신 막달까지 다녔던 저희 회사의 쇼룸입니다.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기록 샷을 종종 여기서 찍곤 해왔어서 사진에 심심찮게 등장할 배경입니다. 일반적으로 배가 급격하게 나오기 시작하는 임신 후기(Third trimester)에 접어들었고, 거짓말처럼 제 배도 트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마음에 튼살을 하나 발견하자 마자부터 열심히 튼살 크림을 발랐지만 소용없을 정도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곳이 터있고 그다음 날이면 또 다른 곳이 터 있었습니다. 튼살로 인해 배가 빨갛게 얼룩덜룩 해졌고, 그 모습이 마치 수박의 줄무늬 같았습니다. 튼살은 유전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친정 엄마가 배에 튼살이 있으시다면, 그 딸은 거의 95% 확률로 배가 틀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저희 친정 엄마는 네 번의 출산으로 인해 배에 튼살이 꽤 있으셨고, 저보다 먼저 임신한 두 명의 자매들도 튼살로 고생을 했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튼살이 생길 거라 미리 각오하고 있었지만 실제 튼살을 마주했을 때 벌겋게 살갗이 찢어진 형태도, 찢긴 곳마다 발생하는 간지러움도 생각보다 더욱 괴로웠습니다. 튼살크림.. 임신 초기부터 열심히 바르세요. 튼살이 생긴 후, 여러 제품을 사다가 발라봤지만 설명서에 적힌 한결같은 내용이 바로, '피부의 탄력성을 증가시켜서 향후 튼살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튼살이 생긴 후 바르는 건 의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튼살크림 배 별로 안 나왔다고 임신 초기에 무시하시지 마시고 초기 때부터 열심히 바르셔서 피부의 탄력성을 증가시키시길 바라요.
뉴질랜드에 산지 벌써 햇수로 9년 차이지만, 아직도 종종 문화 차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도 참 여러 가지 문화 차이를 경험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임부복입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카페에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펑퍼짐한 임부복 덕에 배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구분하기 힘든 모습으로 서있는 제 앞에 다른 한 임산부가 서있었는데, 그 임산부는 어찌나 몸에 꼭 붙는 원피스 드레스를 입었는지 (심지어 기장도 짧은 그런 드레스였습니다.) 부른 배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님께서 남사스럽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너도 저렇게 달라붙는 임부복을 입는 게 어떠니? 배가 나온 게 확 티가 나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더 조심해줄 수 있고, 너 역시 임산부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아도 주변에서 인지 할 수 있게 되잖아. 이 나라 임산부들은 거의 다 저렇게 꼭 붙는 옷을 입더라고."
23년 동안 이민생활을 해오신 어머님의 조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져서 당장 쇼핑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사게 된 임부복이 바로 저 윗 사진의 원피스 드레스입니다.
드디어 앞자리가 바뀌고 임신 31주 차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매 토요일이 주수가 바뀌는 날이었는데, 사진을 찍었던 저 날은 주일이었고 이제 막 31주 차 임산부가 된 날이었습니다. 남편은 출장으로 인해 집을 비웠던지라 홀로 교회에 갔다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아침에 교회에 갈 채비를 하느라고 샤워 중인데 전에 없던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생리통 같은 느낌이었고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정도였기에 간신히 샤워부스를 빠져나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나 홀로라는 게 갑자기 무서워져, 출산 경험이 있는 언니와 동생에게 연락해 지금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게 바로 가진통이라는 거야.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가진통이라니. 앞자리가 3으로 바뀌고 나니 정말로 출산이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9개월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배가 나오는 것만큼 몸이 붓기 시작했습니다. 잘 붓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9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들 만큼 눈과 얼굴이 붓기 시작했습니다. 8개월 때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먹고 있었음에도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에 많으면 3-4kg까지 늘던 시절입니다. 임신 전에는 커피만 좋아했습니다. 오죽하면 뉴질랜드에서 가진 첫 직업이 바리스타였을까요. 커피 볶는 향도, 진한 에스프레소도, 단짠 쓴 신맛이 다 느껴지는 오묘한 커피의 세계가 좋았습니다.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시켜먹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만큼 커피를 사랑했던 제가, 임신기간에는 어찌나 핫초코가 당기는지... 길을 가다 스타벅스가 보였다 싶으면 무조건 들러서 시그니처 핫초코를 시켜마셔야 했습니다.
임신 9개월 차가 되면서 본격 출산 이후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산하고 나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머리가 그렇게 빠진다고 합니다. 앞머리가 숭덩숭덩 빠져서 새 머리카락이 자라고 그 잔털로 고생하는 엄마들을 수도 없이 봤고, 친언니도 경고처럼 탈모 얘기를 해줬습니다.
" 난 정말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기분까지 들었어. 나중에 잔머리가 올라오면 그것도 정말 답이 없다... "
그렇지 않아도 풍성한 머리숱이 아닌데 수유부가 탈모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출산 이후가 급격하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탈모 방지 샴푸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이 길 수록 그 무게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기 쉽다는 얘기까지 접하게 됩니다. 당장 미용실로 달려가 댕강 단발머리로 잘라버린 임신 9개월 차, 탈모 걱정 많은 임산부였습니다.
임신 9개월 차가 되니 앞으로 출산하고 나면 우리 부부 두 사람이서만 다닐 날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지런히 데이트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해졌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디로든 의무적으로 데이트하러 다녔습니다. 부른 배를 잡고서 여기저기 참 열심히도 다녔습니다.
아가 엘림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참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임신 축하선물로 많은 아가 옷을 선물 받았고 자연히 더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 스스로는 단 한벌의 아기 옷도 구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직접 고른 배내옷을 입고 손싸개를 하고 양말을 신고서 나를 바라볼 아가 엘림이를 상상하게 됐습니다.
'엄마가 직접 만들지는 못해도 너에게 입힐 첫 옷 정도는 꼭 사주고 싶어, 엘림아'
남편과 함께 아기용품 가게로 달려갔고, 거기서 엘림이에게 입혀줄 첫 옷과 손싸개, 양말들을 고르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왜 아기용품들은 그렇게도 예뻐서 다 필요한 것만 같을까요. 충동구매를 억제하느라 혼이 났습니다.
드디어 10개월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아가 엘림이의 Baby Shower가 있었습니다. 가장 빛났던 시절, 가장 즐겁게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전 직장동료이자, 교회 친구인 네 명의 지인들과 저희 부부까지 총 여섯 멤버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분기마다 모여 파티를 하고 친분을 나누는데요. 벌써 몇 년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 감이 오실까요. 그 친구들과 엘림이의 Baby shower 또한 함께 했습니다. 임신 알림 사진을 찍었을 때 입었던 노란색 드레스를 꺼내 입고서 Baby shower를 했습니다. 볼록해진 배 덕분에 같은 옷, 다른 느낌이네요.(ㅋㅋㅋ) 이제 정말 엘림이가 오려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실감 났습니다.
뱃속 아가 엘림이와 함께한 임신 열 달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그때 찍어놓은 배 나온 전신사진들이 많은 것에 참 감사해집니다. 스튜디오에서 찍는 만삭 사진보다는 임신기간 내내 자주자주, 배 볼록 나온 전신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저처럼 시간이 지난 후 봤을 때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집니다. 물론 각자의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예쁘게 꾸미고 단 하루만에 찍어내는 만삭 사진 보다, 사진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일상에서의 배 나온 사진이 더욱 마음에 드는 엘림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