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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na Nov 21. 2021

결국 물마시기(Water Tracker) 앱을 설치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물을 안 찾기 시작한 게.

뇌에서 갈증을 인지하고 물을 마신다면 이미 몸의 세포는 탈진 상태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나, 나는 목이 마르고 말라야 물을 마시는 사람인데 불쌍한 내 세포들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물 마시는 습관을 기르는 게 여간 쉽지가 않았다.

대체 물 안 마시는 나의 이 나쁜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아마도 학교를 다니면서부터이지 않을까.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초등학생 시절, 그때의 성격으로 미뤄보면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선생님께 말하는 것도 어려워했을 것이 뻔하다. 아마도 그쯤부터 화장실 자주 갈 일을 만들지 말자하는 마음으로 물을 잘 안마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 물이 어디 있었는지, 어떻게 마셨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반마다 정수기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도시락 대신 급식을 먹었던 게 기억나는 걸로 봐선 물병을 챙겨 다니지도 않았을 것 같고. 이쯤 되니 진짜 어릴 적부터 물을 안 마시며 지낸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수능날 모두 지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없다.

이거슨 마치 기억상실. 보나 마나 그 시절에도 아마 물 안먹고 살았을테지.


고화질처럼 선명한 20대 시절을 돌아본다.

아… 본격적으로 물 안 마시는 습관이 정점을 이루던 시절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물보다 술을 더 마신 것 같다. 그간 안 마신 물의 양을 전부 술로 대신해서 마신 것 같….


일을 시작한 후로 물 안 마시는 습관이 더 심해진 것은 확실하다.

지역 방송국에서 막내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촬영 다닐 때는 수많은 스태프들을 기다리게 하며 화장실 다녀오는 것이 폐가 될까 무서워서,

스튜디오에서는 자리를 비우면 혹여라도 누가 찾을까 싶어서 촬영을 앞두고는 물 마시는걸 일부러 피했다. 지금 생각하면 화장실 다녀오는 거 그거 뭐 몇 분이나 걸린다고 그러고 살았나 싶다마는…

어리고 패기 넘치고 흠잡히기 싫어하던 시절.

뉴질랜드에서 워킹 홀리데이 하던 시절, 시티 한 중간에 버젓이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오픈 멤버로 일했었는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어떤 날에는 홀로 쉬프트를 견뎌야 했다. 손님을 응대하고 음료와 음식을 건네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정산하는 것까지 홀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며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나는 그냥 갈증을 택했다.

내가 물을 잘 안 마시는 이유는 뭘까에서 시작된 생각이 이런 기억들에 가 닿은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일부러 물을 피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같고.

휴대폰에  마시기 (Water Tracker) 앱을 깔았다. 하루 9잔의 물을 마시도록 권해주는 앱인데 일정 시간 동안 물을  마시면 고맙게도 알람을 보내준다.   써보니  마시는 습관 기르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당신 선인장이세요?’ ‘물을 이렇게 안마시면 뇌에 이상이 생깁니다’ 등 가끔 어처구니 없는 알람을 보내오기도 하지만 물 마시라고 챙겨주는 친구하나 생긴 기분이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서 내린 커피를 오전 내내  대신 마시던 내가 요즈음엔 오전에만 4잔의 물을 마신다. 목마르기 전에 먼저 물을 찾아 마시며 이거  어려운 거라고 그간 못했나 싶기도 하다.


물 마시기의 장점은 아니 그냥 말해 뭐해이고, 물 마시기의 단점은 화장실 자주 가야 하는 거지 뭐.

이제는 화장실 가는 일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괜스레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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