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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 교무실 내 자리까지 이동하는 데는 채 2분이 걸리지 않는다. 날마다 꽤 많은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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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둘이 복도를 야생마처럼 질주한다. 둘을 불러세워 복도의 쓰임새를 묻는다. 복도는 어떤 기능을 하는 공간이지? 둘은 고개를 숙인다. 마주치는 학생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를 게을리하거나 일부러 눈길을 피하듯 지나치려는 학생들이 있다. 얼굴을 들이민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학생이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정중하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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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수업을 하지 않는, 지난해 다른 학년에서 가르친 학생과 마추치며 짧게나마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때가 있다. 철수(가명)는 재작년 수업 시간에 만난 남학생이다. 한 주에 한 시간만 진행하는 읽기 수업이어서 피차 애틋한(?) 관계를 맺기 애매한 수업이었다. 그 철수를 오늘 복도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치려는데 철수가 말했다.
"선생님, 그때 "총, 균, 쇠" 읽으셨잖아요."
맥락 없이 나온 철수의 말과, 말 속의 책 제목을 듣자마자 재작년 읽기 수업 시간에 그 책을 몇 번 들고 들어갔던 기억이 머릿속에 촤르륵 펼쳐졌다. 책 속 내용 중 어떤 대목을 확인하려던 참이었던 듯싶다.
책을 끼고 교실에 들어서는, 또는 책을 교탁 위에 놓았다가 표지를 넘기는 짧은 순간에 책 제목을 보았을지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면 내가 책을 소개했을지도. 여하튼 이러저러하게 알게 된 책 제목을, 철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짤막한 순간에 환기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기억의 힘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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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더듬어 보니 그래도 꽤 밀도 있는 책 읽기 시간을 보낸 해였다. 철수와 몇 번 말을 주고받은 기억도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철수가 책과 책 읽기에 대해 꽤 관심을 보인 학생 그룹에 속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런 유의 그룹이 있다면, 그 그룹에 따라 책과 책 읽기를 보는 관점은 꽤 달라진다.
철수의 눈에 내가 들고 들어간 책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총, 균, 쇠"가 아니라 다른 평범한(?) 책이었더라도 철수가 지금까지 기억할 수 있었을까. 말을 끝내고 저 앞쪽으로 제 갈 길 가는 철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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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이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교육자인 밀턴 마이어가 쓴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라는 책을, 그즈음 인상적으로 읽고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처럼 짧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얼마 후였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영철(가명)이 책상에 앉아 코를 박고 책 읽기에 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예의 밀턴 마이어의 책을 읽고 있었다. 놀랐다. 교사가 지나가는 말처럼 소개해 준 책을 기억해 두었다가 직접 구해 읽을 수 있다면, 정색하고 책을 소개하고 권하는 장면에서라면 그 책에 더 푹 빠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신중하게 골라 소개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깊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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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교사 공부 모임 집담회를 할 때였다. 교사의 책 읽기와 책 읽기 수업 사례를 발표하신 김 선생님(가명)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교사나 부모가 자신의 학생들이나 자녀들 앞에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김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학생과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책'이라는 구절을 두고 픽 웃음을 짓고 마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줄 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의 기준을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거나 어려운 시대이니까.
그래도 나는 믿는다. 누구나 언제나 누구에게라도 부끄럽지 않은 책, 경험, 공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힘이리라고. 역설적이지만, 책 읽기의 어려움과 즐거움이 그런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