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부 Jan 02. 2022

굼벵이 두 마리, 한라산으로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10

개 짖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비몽사몽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알람 소리.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벌써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빠 일어나”


바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샤워는... '갔다 와서 하자' 커피 포트에 물을 끓였다. 1리터 보온병 가득 뜨거운 물을 채우고 백팩에 컵라면 두 개, 어제 먹다 남은 김밥, 하루방 빵 그리고 생수 4병을 넣었다. 그리고 수건 하나와 얇은 겉옷 하나를 넣었다. 시계를 보았다. 5시 15분


“뭐 빠뜨린 것 없지?”

“없어”


숙소를 나와 한 10분 정도 차를 몰았을 때 냉장고에 둔 쥬스가 생각이 났다.


“쥬스 안 챙긴 것 같은데, 가방에 있나 볼래?”

“지금?”

“아니다. 놔둬라. 없다고 돌아갈 것도 아닌데...”

“그러게 잘 챙기지...”


없다고 돌아갈 것도 아닌데 왜 물었을까? 없으면 없는 대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딸은 얇은 외투를 두고 왔다고 했다.


“잘 챙기지...”

“외투가 필요할까?”

“필요하겠지, 산이 높아 추울 수도 있을 거야”

“그래?”

“괜찮아, 아빠 꺼 입으면 된다”

“아빠는?”

“아빠는... 괜찮아”


산이 춥지 않기를 바랬다. 5시 45분, 꼬불 꼬불 산길을 돌아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다. 5시 30분까지는 가야 주차자리가 있을 거라던 친구의 말과는 달리 주차장은 꽤 한산하다. 간단한 안내를 받고 QR 체크를 하고 안내 아저씨의 꼬임에 넘어가 안 그래도 무거운 백팩에 생수 2병을 더 넣었다. 가방이 묵직해졌다.


신발끈을 질끈 묶었다. ‘너무 조였나? 피는 통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입구에 들어섰다. 등반이 시작되었다. ‘괜찮을까? 그래도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성판악 코스는 편도 9.6km이다.

등반 난이도는 A/B/C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C는 쉬움, B는 보통, A는 어려움’으로 나누어져 있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사라오름 입구까지 5.8km C등급 예상시간 2시간, 사라오름 입구에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1.5km B등급 예상시간 1시간 그리고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까지 2.3km A등급 예상시간 1시간 30분 총 예상시간 4시간 30분이다.


시작은 무난하다. 적당히 ‘업’도 있고 ‘다운’도 있다. 온도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20 몇 도, 구름은 적당히 껴있고 부드러운 산바람이 불어 살짝 나는 땀을 식혀준다. 산새들 적당히 울어주는 더 좋기도 쉽지 않은 아침 6시. 실없는 웃음이 난다.


딸과 둘이 오른다. 가끔 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끔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들,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둘이 걸었다.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나무 냄새, 풀냄새, 인간들이 만든 소리가 멀어지면서 인간 없는 소리가 들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를 딸과 걷고 또 걸었다.


“괜찮아? 힘들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누가 물었는지, 누가 대답했는지 중요하지 않은 대화들이 오고 간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자. 빨리 갈 필요가 있나?”

“오키”


나름 페이스를 조절하며 산을 올랐다. 주위도 둘러본다. 지나갈 돌계단, 지나온 바윗길, 비슷한 듯 다른 나무숲, 자연의 소리만 남아있는 낯설고 어색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거친 숨을 쉬며 걷는다.


그렇게 거친 숨을 쉬며 나름 ‘유유자적’ 산을 올랐다. 앞, 저기 멀리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30대 초반,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전력질주로 산을 달려 내려왔다. 딸과 나는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지?’ 딸과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동네 언덕도 저렇게 달리기는 힘들 텐데...’ 여유를 부리며 유유자적 오른다고 하나 우리는 산을 오르는 여유로운 두 마리의 굼벵이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어디까지 갔다 온 걸까?”

“그러게?”

“꼭대기까지 갔다 온 걸까?”

“설마...”

“저 속도면 아마도...”

“그럴지도.., 에이 그래도...”

“그래도... 정말 대.다.나.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까보다 좀 더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정말 비현실적인 속도로 우리를 스쳐갔다.


“이 길이.. 달릴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닌데...”

“어떻게, 뛸 수가 있지?”

“이건... 말이 안 되는...”


딸과 나는 우리가 본 것은 분명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빠 굼벵이와 딸 굼벵이는 2시간 넘게 기어 이제 막 중급코스에 접어들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토바이 라이딩을 같이 할 날이 올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