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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May 20. 2023

새끼 고양이가 집으로 왔다.

독박육묘의 시작

새끼 고양이가 집으로 왔다.


“아빠 고양이 3마리 키우게 생겼어!”


둘째 딸은 수학여행을 마치고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오는 길, 정문 옆 잔디밭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고 한다. 너무 어려 ‘야옹’ 울지도 못하고 ‘짹짹’ 울고 있는 엄마 없는 새끼 고양이. 너무나 불쌍해서 그냥 지날 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부담스러워했고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 둘째 딸이 데려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둘째 딸은 한참을 걸어 동물병원에 가서 새끼 고양이를 수의사 선생님께 보여 드리니, 한 3주 정도 되었고 눈 상태가 안 좋다고 딸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새끼 고양이용 분유가 없어 4주 이상 새끼 고양이가 먹는 이유식을 주셔서 가지고 왔다.


전화를 받고 나는 차마 딸에게 데려오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딸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내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 일단 데리고 오라고 했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살짝 비쳐 안심이 되었다.



새끼 고양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았다. 얼마나 작은지 손바닥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먼저 키우고 있는 두 고양이, 미소와 밍키는 이게 뭔가 하고 잔뜩 긴장했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고 혹 옆에 가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하악질을 하고 도망갔다.



눈에 안약을 잔뜩 바른 새끼 고양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짹짹거렸다. 어떻게 할지 몰라 일단 바닥에 내려놓고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뭘 해야 하는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내와 나는 이것저것 읽어 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쿠팡에서 당장 내일 받을 수 있는 새끼 고양이용 분유와 젖병을 주문했다.


다 큰 두 고양이 미소와 밍키가 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끼 고양이를 침대에서 같이 재우기로 하였다. 새끼 고양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슴팍에 새끼 고양이를 올려놓고 이불을 덮어주고 손으로 살짝 안아주니 내 손을 빨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젖이 나오지 않는 내 손을 빨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동물병원에서 받아온 이유식을 주사기에 넣어서 입에 조금씩 짜 주었다. 제대로 된 이빨이 없어 씹는 둥 삼키는 둥 이유식을 먹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까 저녁에 마트라도 가서 분유를 사 올걸 그랬다. 새끼손톱만큼 이유식을 먹은 새끼 고양이는 내 손바닥 위에서 잠이 들었다. 새끼 고양이는 내 검지 세 번째 마디 통통한 살을 빨며 잠이 들었다.


‘아빠가 재워줄게’


나도 같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짹짹거리는 소리가 났다. 새벽 1시 20분. 잠이 든 지 2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딸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두세 시간마다 일어나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멍한 하루를 시작했던 그때 생각이 났다. 자다 깨다를 서너 번 반복하니 아침이 되었다. 머리는 멍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육아의 느낌이었다. 아내와 내가 새끼 고양이 데려 오는 것을 주저한 바로 그 이유였다.


딸들은 먼저 있는 두 고양이 미소와 밍크를 데려올 때 자기들이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다 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겠지 하는 헛된 바램의 씁쓸한 경험 덕분에, 우리는 딸이 새끼 고양이를 돌볼 것이라는 마음을 가진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적어도 8주가 되어야 알아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린다고 한다. 앞으로 5주 정도는 독박육묘이다. 그래도 아내와 함께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멍한 머리로 출근을 했다. 수업시작 전 학생들에게 새끼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니 다들 귀여워 쓰러졌다. 아마 공부를 하기 싫어 쓰러졌겠지만, 학생들의 말랑말랑한 마음이 참 이뻤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 아직 이름이 없다고 했다. 자기네들이 이름을 지어주겠다며 이 이름 저 이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면학 분위기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이름은 좀 있다 생각하자고 했다.


쉬는 시간에, 개교기념일이라 집에서 혼자 쉬고 있는 딸에게 괜찮은지 전화를 했다. 딸은 빨리 와 달라고 했다. 하루종일 짹짹거려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했다. ‘니가 어릴 적 딱 그 느낌… 니가 당해….’ 말은 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집에는 어제 주문한 분유와 젖병이 와 있었다. 젖병소독을 했다. 아이들 어릴 적 생각이 또 스쳐갔다. 분유를 타서 젖병을 물렸다. 동물 젖병이라고 너무 막 만든 것 같다. 분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새끼 고양이는 너무 힘들어했다. 구멍을 약간 크게 낸다는 게 그만… 구멍이 너무 커졌다. 분유가 너무나 쉽게 나왔다. 다 쏟을 뻔했다. 이미 밤이 되어 내일 아침에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육묘 이틀째 밤은 찾아왔고 자다 깨다의 후유증인 멍한 머리로 셋째 날 아침을 맞이했다.


새끼 고양이는 밤사이 더 깜찍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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