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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야 Mar 05. 2021

아빠, 힘들면 울어도 돼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일이 다 술술 풀리기만 할까?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 한다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오픈빨이 지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오픈빨도 지난 데다 대형 경쟁업소 출현으로 매출이 급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금 갚아야 할 날은 다가오고. 똥줄 타는 심정, 아무도 모른다. 매출은 안 나오고, 돈 구할 데는 없고. 막막했다. 미칠 뻔했다. 말할 데도 없고. 부모님에겐 걱정하실까 봐, 아내에겐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라고 한 소리 들을까 봐 말도 못 했다. 혼자 끙끙 앓았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사방팔방 돈 구하러 뛰어다녔지만 지인들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간신히 친구에게 돈을 빌려 급한 불을 껐지만 나중엔 결국 또 간신히 대출받아 돌려막기로 해결해야 했다. 그 후 여차저차 가게를 살려 3개까지 확장하며 10년 이상 버텼다. 장사 책까지 한 권 썼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를 버티지 못하고, 가게 하나를 접었다. 폐업이었다. 수많은 대리기사님을 통해 말로만 듣던 폐업이었다. 그 일이 내게도 닥쳤다. 한 때 이태원에서 열 개 정도의 가게를 운영하던 홍석천도 얼마 전 마지막 가게를 접었다. “금융위기, 메르스는 이겨냈는데 코로나 19는 버티기 힘들었다”면서 “주말 하루 매출이 1000만 원을 찍기도 했는데 최근 하루 3만 5000원으로 떨어졌다”고 고백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리기사님과 술 한잔하고 싶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장사 하며 잘 먹고살았는데…. 퇴사할 때도 힘들었지만 폐업할 때도 역시 쉽지 않았다. 폐업해야 하나, 버텨야 하나? 버티자니 월세와 월급이 감당이 안 되었다. 전국적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가게가 세 개니 세 배로 힘들었다. 남들이 3개월 버틸 수 있다면 난 1개월밖에 버틸 수 없다는 얘기였다. 가게 하나를 정리해서 나머지 가게 비용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폐업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임시방편이었다. 당분간은 가게 빼고 받은 보증금과 코로나 정책자금 대출로 버텨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일이 다 술술 풀리는 건 아니었다. 결국, 잘 되겠지만. 퇴사로 고민할 땐 고통을 잊으려 술로 버텼다. 걱정이라는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다행히 지금은 걱정도 생각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오르는 걱정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켜볼 수는 있다. ‘아, 또 걱정이 밀려오는구나. 폐업 때문에 걱정하고 있구나. 장사 책까지 썼는데 폐업한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지 않을까 신경 쓰고 있구나. 그런들 어떠하리 하고 있구나.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고 있구나.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한잔하자 생각하는구나. 어라, 진짜 술을 마시는구나.

단골 술집에서 혼술


술을 마시며 세상 다 산 것 같은 코스프레를 하는구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하나? 다시 택시라도 몰아야 할까? 요즘 택시 기사도 힘들다던데. 가족은 어떻게 먹여 살리지? 학원비, 생활비를 못 벌어다 주면? 일단, 학원은 그만둬야 하고, 아내도 돈 벌러 나가야겠네. 그 지경까지 안 되게 하려고 이렇게 애썼는데, 아빠인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쳤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가오도 안 서고, 말도 못 꺼내겠네. 생각에 빠져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무는구나. 가만,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잖아. 미리 생각으로 걱정만 하고 있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떡하지? 일단, 대출금으로 몇 개월 버티며 그동안 해결책을 찾아야겠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해결책을 찾고 있구나. 다행히 희망을 찾았구나. 작가, 1인 크리에이터로 먹고살 궁리를 하는구나. (뭐, 골라도 하필 죄다 어려운 것만 골랐구나. 그래도….) 하고 싶은 글 쓰기, 유튜브에 한 가닥 희망을 거는구나. 그것도 안 되면? 그건 그때 걱정하고 희망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는구나. 그러면 오늘 당장 뭘 해야지? 책을 써야지 생각하는구나.’ 마음공부를 한 덕분에 생각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은 마음 중심에 굳건히 자리 잡은 건 아니라 항상 끌려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의 본질은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을 지켜보는 무엇이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걱정과 불안이 줄었다. 걱정과 불안은 생각과 감정이고, 생각과 감정은 생겼다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상요법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은 이름인데, 심리학에 있는진 몰라도 ‘삶의 끝에서 돌아보기’이다. 역시 내가 보는 게 아니라 그 무엇이 먼발치서 돌아보는 나를 보는 것이 핵심이다. 삶의 마지막 날 지금을 돌아보며 회상하는 거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그 회상하는 나를 지켜보는 거다. ‘40대 때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를 했었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가게 3개까지 확장하고 책도 쓰며 10년 이상 잘 버텼지. 그러다 50대 때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는데, 그때 가게 하나를 접었어. 힘들었지. 앞으로도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망가지지 않고, 잘 견뎌냈기에 지금 이 나이까지 잘 산 거 아니겠어? 그땐 어떻게 이겨냈나 몰라. 지나고 나니 이것도 다 그리운 추억이 되었네. 50대, 한창 좋을 나이 아니야? 안 그래?’ 삶의 끝에서 돌아보면 다 추억이다. 그리움이다. 성공도 실패도 지나간다. 이것도 삶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나에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그 후에 선택은 내가 한다. 폐업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일어난 사건에 저항하는데 에너지를 쓸 것인지 흘러가는 삶에 순응하고 희망에 집중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도 ‘나’다. ‘술독에 빠져서 지낼 것인가, 될 때까지 한 번 더 해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아빠, 힘들면 울자. 지금 힘들어 우는 나를 지켜보자. 실컷 울고, 툭툭 털고 일어서자. 우리 함께. 가족도 있지 않은가. 퇴사해도, 폐업해도 나는 아빠다. 언젠가 쨍하고 볕 들 날,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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