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야 Mar 13. 2021

인생은 꿈보다 해몽

[퇴사 후 인생 2막 아빠 에세이]

깨달은 이들은 인생은 꿈과 같다고 한다. 꿈을 꿀 땐 꿈속의 내가 진짜인 줄 알지만 깨고 나면 진짜가 아님을 알 듯 현실의 ‘나’ 또한 깨고 나면 생각이 만들어낸 환(幻)이라는 걸 알게 된단다. 경허 선사도 생각이 나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생사라고 했다. 아인슈타인도 눈에 보이는 것은 환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진실한 세계라고 했다. 전도몽상이다. 양자 물리학이 점차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과학이 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허나, 우리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대신에 살며, 살아가며, 어떤 일에 부딪힐 때마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인생은 꿈보다 해몽이라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명상을    쓰러 바로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에 가면 내가 맨날 앉는 자리가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  분이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시작했다.  많은 자리 중에 하필  자리만 앉는 할아버지가 얄미웠다. 내가 매일  자리에 앉는  아시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엔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선점한 자리인데. 웬만하면 선점한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도서관의 아름다운 예법 아닌가? 자기가 노리는 자리가 아니라면.  할아버지도 내가 선점한 자리가  났나 보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서관 오픈 시간보다 5분만 늦어도  할아버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늦지 않으려 10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할아버지가 없으면 앗싸, 내가 이겼다!’ 하며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그런데 승리감도 잠시  놀리려는 건지 헐레벌떡 내가 일찍  날엔 아예 나타나질 않는 날이 많았다.  내가  분이라도 늦는 날에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없었다. 매일 일찍 오려고 기를 썼다. 그러던 어느  문득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고마우신 분이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나올  없었다.  늦게 나와도  자리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신과 약속한 시간을 어긴 적이 많았다. 할아버지 덕분에 스스로  약속을 지킬  있었다. 할아버지는 얄미운 분이 아니라 고마운 분이셨다. 역시 인생은 꿈보다 해몽이다.

또 한 번은 오전 내내 열심히 쓴 글을 커서(Cursor) 한 번 잘못 눌러 다 날린 적이 있었다.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며칠 전에도 한 번 그랬는데, 또 그러니 더 열 받았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 거야. 이전 버전은 안 그랬는데, 이번 버전은 업데이트된 게 왜 이 모양이야’ 하며 엄한 곳에 화풀이했다. (그 당시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모르고 있던 임시 저장 기능을 찾았다. 이제는 자동으로 임시 저장을 해 가며 글을 쓰니 날릴 일이 없었다. 해결되고 나니 ‘아, 초반에 알았으니 다행이지, 나중에 알았으면 더 많은 걸 날릴 뻔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마음이 내게 미리 알려준 신호’라고 받아들이니 이번 일이 감사하게까지 느껴졌다. 삶은 역시 꿈보다 해몽이다.

이번에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에는 무려 현금 50 원이 들어있었다. 아버님 생신에 드리려고 찾아  돈이었다. 법화경에 이런 말이 있다. ‘원래 자기 것이 없는데, 잃어버린  어떠한가.’  ‘그래, 50   지갑. 원래 자기 것은 없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번만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 오늘 엄청 좋은   거다. 지갑 주운 사람은 로또 당첨된 기분 아니겠냐.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거냐, 내가. 에구 바로 내가.  돈은  필요한 사람한테 갔을 거다.  돈이 없으면 방세도  내고 굶을 판인데  때문에  거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려 줬기 때문에. ,  진짜 좋은   거다.  받을 거다. 천당  거다. 그러다 다시  많은 한량이 주워서  떡이냐 하며 흥청망청 써버리는  아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은 꿈보다 해몽이다. 해몽이다. 해몽이다.’ 아무리 애써도 이번만큼은 정말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가 죽어야겠다. ‘그래 , 어차피 잃어버린  인생에 에피소드 하나 추가했다, 글감 하나 늘었다, 좋게 생각하자.’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고민이 밀려왔다. ?  얘기를 책에 사례로 써서 아내가 알게 되면,    죽는다. 이제, 운명이다.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아도, 열심히 쓴 책이 안 팔려도 그것으로 됐다. 일단 울고 싶으면 울자.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더 이상 울 수도 없을 때까지 운 후엔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더 힘내라는 신호일지 모르니 좋으면 또 하면 그만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알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인생은 꿈보다 해몽이라 생각하면 내가 좋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일에 대한 반응은 내가 선택한다.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된다. 그러면 뭐든 감사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세상에 감사하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훗날, 아내에게 두 번 죽더라도 난 기필코 감사할 것이다. ‘당신의 죽을 만큼 퍼붓는 잔소리로 저의 수행은 깊어만 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판단이다.’ 수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 말이다.  생각 문제인 거다.

무슨 일이 닥 치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