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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Oct 14. 2021

1화_네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뭐야?

나를 발견하기

덕업 일치라는 말을 아는가? 덕질과 직업이 일치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덕업 일치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되었다.


어떻게 덕업 일치가 되었냐고?

이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글을 끝까지 일어주길 바란다.


디자인을 하는 직장인으로 살기

나는 시각디자인을 졸업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산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디자인은 내 전부였다.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삼았던 친구들과 달리 스튜디오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뒤 유학을 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나만의 스튜디오를 만들어 멋진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꿈을 꾸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즉, 나를 몰랐다.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유학이 목표였다.

여기서의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즉, 나를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인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디자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그에 맞는 시각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아닌 회사의 아이덴티티 안에서 움직이는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야근이 싫어서 새벽출근을 자주했다. 직장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하여-



즐거웠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기뻤고 돈을 번다는 것도 기뻤다. 월급을 받는 기쁨은 진짜 어른이 된 거 같았다. 좋은 팀원들을 만나고 좋은 팀장님을 만난 건 축복이었으며 내가 첫 번째 커리어가 F&B 분야가 아닌 IT 비즈니스에서 일한 것 또한 지금 돌이켜보면 내 시야를 넓힐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배움은 길 위에서

모든 게 만족스러웠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 따스한 안락함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다.

나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메우려 매일 밤 판교와 이태원을 오가며 지냈다.



안락함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 왜 행복하지 않을까?



안락함이 문제였을까? 극복하지 않은 좌절감이 문제였을까? 이상하게 그렇게 좋아하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디자인을 하는 삶이 전혀 행복감을 주지 않았다. 유리 도시였던 차가운 판교의 밤보다는 반짝거리는 이태원의 밤을 사랑했다. 반짝거리는 이태원 거리는 나에게 새로운 배움터였다. 길거리의 간판에서, 레스토랑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그렇게 나는 길 위에서 다시 디자인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어떤 날이었다. 나의 14년 지기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준다며 이상한 뒷골목으로 나를 끌고 갔다. 무서웠다. 이 뒷골목은 뭐지? 마치 마피아 갱단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2013년 가을, 처음으로 아드백을 마셨고 칵테일의 세계에 빠졌다. 촬영이 금지여서 내부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똑똑똑”

긴장이 가득했던 마음과 의심하는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눈만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창문 사이로

“몇 명이세요? 자리 있습니다.”

그곳은 스픽이지 바였다. 번쩍거렸다. 아니 이런 곳이 있다고?

조용히 지나가면 모를 이곳에 수백 병의 위스키와 싱글몰트가 있었다.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바텐더는 예술가나 다름없었다. 목재로 만든 스피커에서는 니나 시몬의 재즈가 흘러나왔다. 그래, 이곳이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술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공간과 분위기, 그리고 이곳을 채워주는 다양한 술(콘텐츠)과 바텐더의 에티 듀드, 사람들의 대화 소리, 나무 냄새 등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매일 나는 판교에서 9001번 버스를 타고 길거리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같은 길을 걷지 않고 매일 다른 골목을 구경했고 공간을 채우는 브랜드, 콘텐츠 대해 다시 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으로 매일 새로운 곳을 사냥하러 다녔다. 인생 중에 가장 제일 신이 났다.


여느 때와 같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경리단 중턱에 위치한 루프 xxx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산타워와 서울시내가 보이던 루프의 뷰는 아직도 기억에서 잊어지지 않는다. 일에 지치고 인간관계에서 슬픔이 찾아올 때,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해결해야 할 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싶을 때 늘 찾아가던 이곳에서 나는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미켈러 서울이 없을 당시, 미켈러 방콕을 찾아갔다.


그리고 만난 내 사랑, 미켈러를 만났다. 미켈러는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덴마크 출신인 미켈러는 과학선생님이었다. 맥주를 좋아하던 미켈러는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맥주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 오이를 섞고 커피를 섞고 각종 과일들을 섞었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담아 라벨을 만들고 소규모 양조만 고집하는 집시 브루어리를 만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미켈러의 스토리에 푹 빠져 비행기표를 사고 말았다.



맥주를 마시러 왔습니다만...

대부분 맥주를 생각하면 미국을 꼽지만 맥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벨기에에 갔다. 혼자 간 벨기에는 백마 탄 왕자가 손을 흔들어줄 것만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수도원 맥주는 한국에서 매우 비싼 값에 마셔야 하기 때문에 맛있는 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케리어를 끌고 가장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갔다. 벨기에 또한 영국처럼 맥주카페가 발달하였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엄청 두꺼운 책을 주었다.  이게 메뉴판이라고? 맥주도 빈티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혼자 왔니?”

옆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대화를 거셨다.

 “네, 맥주가 궁금해서 혼자 마시러 왔어요”

푸근한 인상의 미국 할아버지는 80이 넘은 나이셨는데 은퇴 후 미국에서 맥주 여행을 위해 벨기에에 오셨다고 했다. 우리는 맥주라는 공통 관심사로 한참 대화를 나눴다.


브뤼셀의 깐띠용 양조장


첫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눈을 뜨자마자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브뤼셀에만 하더라도 정말 유명한 양조장들이 많이 있다. 맥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괴상하게 느낄 수 있는 람빅 맥주과 수도원 맥주를 잔뜩 마셨다. 람빅은 자연 효모를 발효하여 만드는 맥주로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벨기에 브뤼셀 지역에서만 생산하였다. 하지만 1950년 이후 여러 람빅 브루어리가 양조를 시작하여 널리 알리고 있다.


세상에서 기분 좋은 마트 쇼핑, 한결같이 마시는 것이 잔뜩!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마트 투어. 마트는 나의 가장 큰 놀이터이자 학교이다. 마트는 온갖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브랜딩의 집합소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맥주 특성에 맞는 라벨 디자인과 병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맥주를 어떻게 세일즈하고 프로모션 하는지도 마트의 특성에 맞게 볼 수 있어 마트는 브랜딩 학교라고 생각한다.


마심, 나는 왜 마시는 것을 좋아할까?



벨기에를 시작으로 나는 다양한 “마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압생트를 만나기 위해서는 베를린에 갔고 포틀랜드는 오로지 커피와 맥주를 위해 방문했다. 가장 가까운 일본은 두말할 것도 없다. 유학을 열망했던 젊은 디자이너는 모든 답이 길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직접 맛보고 만져보고 경험하면서 배워야함을. 길 위에서 배울 것들이 너무 많았다.



교토에서 맥주를 마시다 만난 외국인 친구는 실리콘 밸리를 초대해주었고 나파밸리에 데려가 주었다. 밀라노 토박이 알베르토는 리조토는 포크로 떠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와인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를 뼛속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경리단길에서 만난 야마모토는 출장 차 들린 한국에서 나를 만나 도쿄의 브루어리 투어를 시켜줬다.



포틀랜드에는 위스키 라이브러리가 있다.


먹고 마시는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디서 느낄 수 없는 너무나도 값진 경험들을 선물해줬다. 정말 모든 경험이 선물이었다. 모든 것들이 나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고 있었던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나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긴 한마디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건 뭐야? 좋아하는 일을 해!


“은별아, 네가 좋아하는 건 뭐야? 좋아하는 일을 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래,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29살의 가을이었다.

디자인을 하는 직장인, 이제 이 삶을 끝내자.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안락함을 버리자. 늦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인생에서 혼란의 시기를 겪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부분이 강점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럴 땐 나에 대한 일대기(일기) 써보세요. 자문자답도 좋습니다. 태어나서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가장 눈물 흘리고 슬펐던 일이 무엇인지. 그렇게 나를 다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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