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브랜딩 하기
나는 와인과 맥주, f&b 다루는 브랜딩팀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팀은 총 마케터와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다. 먹고 마시는 브랜드를 만들고 더 나아가 새로운 리테일의 미래와 고객 경험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첫 3개월은 팀을 세팅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기존에 있던 팀원과 호흡을 맞추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팀원들이 합류했다.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손발이 맞춰 갔을 때 팀 브랜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주도하는 일도 있지만 팀원들의 목소리로 우리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의 내리길 바랬고 앞으로의 방향성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있기를 바랬다.
프로젝트를 하나씩 끝내가며 깨달은 것은 스스로 와닿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않는다. 대부분 브랜드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이유도 같다. 오래가는 브랜드를 보면 기억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내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으면 곧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어떤 사람들로 모였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했으면 좋을까?
우리에게 맞는 이름은 뭘까?
우리를 알리려면 어떤 콘텐츠가 필요할까?
하나씩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정체성에 대한 탐구
우리 팀은 슬래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와 걸맞은 이름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각 팀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 보기로 했다. 이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어떤 팀원 짱구 애니메이션으로 팀을 표현하기도 했고, 어떤 팀원은 강아지로, 어떤 팀원은 색깔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 우리는______입니다. 우리를 대변하는 이름 찾기
슬래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이름을 찾고자 했다. 이름의 범위를 넓히고 좁히고 회의 때마다 투표도 진행하였다. 과연 이 이름이 우리를 대변하는지 고민했다. 이 과정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의견을 좁히는데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하나하나 다 좋은 이름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슬래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세 번째 : 우리만의 문화 설정해보기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이것은 콘텐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일하면서 어떤 태도로 일할지,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어떨지, 우리만의 문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그리고 더 나아가 업무의 성과를 도달하였을 때 어떻게 보상받기를 원하는지. 서로의 생각이 비슷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의견들도 많았다. 특히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열린 마음과 유연한 사고를 가졌으면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들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의견들이 많았고 다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노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문화를 만들고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가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도제 시스템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선배가 가지 못하면 퇴근은 없었고 아이맥 너머로 선배의 기술(?)을 엿보며 알고 싶었다. 늘 비딩이 존재했고 pt준비를 위해 가제본을 만드는 건 일수였다. 인쇄소에서 밤새는 날도 많았다. 그런 과정이 있어서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화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일 할 이유는 없다.
주류와 관련된 마케터는 술케터로, 먹는것과 관련된 마케터는 먹케터로,
그리고 디자이너는 토스터즈로
그리고 더불어 마케터와 디자이너라는 이름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본질을 고민하고 창의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팀으로서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아닌 우리만의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류와 관련된 마케터는 술케터로, 먹는것과 관련된 마케터는 먹케터로, 그리고 디자이너는 토스터즈로 부르기로 했다.
네 번째 :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다움 알리기
표현의 자유 시대다. 그래서 치열하게 나눈 우리의 생각들을 공유해보기로 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등 많은 플랫폼이 있지만 우리는 발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www - workwithwine : 우리가 와인과 함께 일하기에 발 빠른 론칭 소식과 콜라보 소식, 다양한 와인 프로젝트를 알립니다.
tlc - thursdaylunch club: 매주 목요일 먹고 마시는 슬래시의 이야기를 알립니다.
slash overflow : 넘쳐흐르는 슬래시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주류 마케터 화려한 그 이면, f&b 브랜딩의 고충, 디자이너의 삶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3가지 카테고리를 만들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다섯 번째 :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길
슬래시는 단순히 브랜드를 만들고 마케팅을 하고 디자인을 하는 팀을 뛰어넘어 자생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해야 한다. 모든 비즈니스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본의 츠타야를 만든 일본의 기획회사 CCC의 마스다 무네아키는 말했다.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여기서 말하는 디자이너는 단순 비주얼을 뽑아내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객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의 제안, 사람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획과 제안을 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모두가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단순 주어지는 업무가 아니라 회사의 성장에 도움 될 프로젝트를 만들고 더 나아가 팀의 존재가치를 더 분명하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슬래시는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내려 한다.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의 본질, 소비의 본질을 어느 때보다 더 깊게 탐구해야 할 시대다. 새로운 리테일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등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인간이 살아갈 이유와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우리만의 속도로 걸어 나가야 할 때이다.
우리만의 속도로 걸어 나가야 할 때
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늘 긴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다.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멘트가 제일 무섭다. 이탈자도 생겼다. 하지만 팀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담담해지고 있다. 제각기 다른 10명이 모였다. mbti도 다르다. 완벽한 것은 없다.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 돌아가 맞는 길을 걸어가면 된다.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은 만드는 것. 이게 내가 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