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관한 아무 말 대잔치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라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사는 사람과 하루가 24시간 일지언정 하루 8시간 이상은 자야 하는 사람. 나는 후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8시간은 자야 한다.
아침에 십분 더 자느라 지각을 밥먹듯이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들어 책을 보는 척하며 꾸벅꾸벅 졸았던 국사 시간. 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려 벌을 서야 했던 수많은 나날들. 모두가 사당오락을 외칠 때에도 하루 7시간은 잤던 고삼 수험 시절.
방학 때는 매일매일 늦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부지런한 어린이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방학 생활 계획표를 만드는 시간이 오면 나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기상시간을 아침 8시로 정했지만 지키지 않을 것은 진작에 알았다. 매 방학, 기상 시간은 아침 10시 즈음되었고 이러한 방학 패턴은 초 중고를 거쳐 대학 때까지도 이어졌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한 달 내리 늦잠을 잘 수 있는 방학이 없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잠을 많이 자는 만큼 꿈도 많이 꾼다. 자고 일어나서 기억나지 않는 꿈도 많지만 나는 대부분의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전날 일어났던 걱정이나 불안이 그대로 투영되는 경우도 있고 먼 과거에 만났던 이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세상 애틋한 연애를 하기도 하고 내 안에 어떠한 잠재의식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끔 하는 끔찍한 내용의 꿈을 꾸기도 한다. 혹자는 꿈의 기능이 잠재적 의식의 해소라는데, 그렇다면 한 때 꿈을 즐기던 나는 잠재적인 욕구불만이 강했었나 보다.
영화 ‘인셉션’을보면 주인공들이 꿈속에 들어가서 또다시 꿈을 꾸며 겹겹의 꿈을 꾸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이런 인셉션을 경험한 적이 있다.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는데 아직도 꿈속이었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시간도 꿈일지도…
세 달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꿈을 꾸는 게 더 좋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약간 우울증 증세였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현실이 재미없고 심드렁해서 꿈을 꾸기 위해 잠을 청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꿈을 꿀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늘은 또 어떤 꿈을 꾸게 될까 하는 기대도 나쁘지 않았다.
꿈을 꾸고 난 후 그 꿈이 선명하고 흥미로웠다면 나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꿈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문제는 잠결에 쓴 내용이라 몇 시간 뒤 제정신으로 다시 읽으면 대체 무슨 내용의 꿈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분명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할리우드 영화 스토리라도 하나 뽑아낸 듯했는데… 이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가 끝내주는 영화 대본을 하나 써야지 하지만 후에 읽어보는 기록은 앞뒤가 맞지 않는 그저 글자의 나열일 뿐이다. 그렇게 할리우드 흥행 대박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얼마 전까지 나는 모 의류회사 타임 스퀘어 매장 매니저로 2년간 근무하였다. 뉴욕 별칭 중 하나가 “City that never sleeps” 일 정도로 뉴욕시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상점들이 많다. 본인이 근무했던 매장은 24시간은 아니었지만 매일 새벽 두 시까지 영업이었고 영업 후 약 한 시간여 정도 직원들 모두가 ‘클로징’에 참여한다. ‘클로징’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부터 전 매장 구석구석 내일의 오픈을 위해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포함된다. 내가 근무하던 매장은 면적상 세계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매장이었기에 한 시간 클로징은 매일 두 시간으로 늘어났다. 직원들을 다 보내고 매장 안 상태가 완벽하게 점검되면 그제야 알람을 걸고 퇴근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약 두 번 많게는 세 번도 클로징을 했는데 보통 클로징을 마치고 나서는 퇴근 시간은 새벽 4시, 5시 정도 되었다. 새벽 5시에 해 뜨는 것을 보고 퇴근하여 잠을 청할 때쯤은 이미 동이 터 암막 커튼을 설치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 사정을 모르고 입사한 것은 아니다. 인터뷰 당시 새벽 세시 퇴근이 잦을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심정에 당연히 상관없다고 답했다. 입사 후 육 개월 정도 지나면 본사로 발령이 날 수 있겠지, 아니면 좀 더 한가한 매장으로 갈 수 있겠지 한 것이 어느새 이 년이라는 시간이 되었고, 퇴사를 결정하였을 즈음 나는 이미 육체적으로 아주 많이 지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2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회사에 몸 담고 있었을 당시에는 불규칙한 수면이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일이 많아서 피곤한 것이겠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몸에서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둔한 것인지 건강한 체질을 타고나서인 건지 잘 느끼지 못했다. 일단, 이년 동안 살이 급격하게 살이 쪘고, 피부의 노화가 급진행되었으며 삶이 무기력해졌다. 육체적인 피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사실 정신적인 무기력함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생각만큼 생활 깊이 침투했다. 나이를 먹으며 찾아오는 권태의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삶이 너무 버겁다고 느껴졌다.
유난히 살이 잘 찌는 '체질', 공부가 적성인 '체질', 고기가 잘 받는 '체질' 등 여러 가지 부류의 체질이 존재하는데 잠을 많이 자거나 적게 자는 이유에도 체질에 따른 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잠을 적게 자도 전혀 건강이나 뇌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른바 숏 슬리퍼 (Short Sleepr)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본인과 같이 잠을 8시간 이상 자야 잔 것 같고 5시간 미만으로 자게 되면 다음날 막대한 영향으로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롱 슬리퍼(Long Sleeper)가 있다.
예상대로 이런 숏 슬리퍼 들 중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비교적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이 뒤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을 드는데, 하루 4시간 정도만 자며 잠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에디슨과 반대로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내가 잠이 많은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누구를 원망한 적은 없다. 잠을 적게 자야 성공한다고 믿었던 세대 속에 자란 터라 휴일 아무것도 안 하고 낮잠 자는 것에 설레어한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법도 한데, 학창 시절 낮잠을 퍼자도 아무런 잔소리 없이 옆에서 바라만 봐주시던 부모님 덕에 무사히 사춘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온 가족 모두가 낮잠에 빠져든 일요일 오후가 나에겐 따듯한 유년기의 추억이다.)
본인이 잠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 쏟아지는 졸음과 싸울 필요가 없다. 어쩌다 휴일 잠으로 하루를 날리기라도 하면 '오늘 하루 사람답게 잘 쉬었다.'라며 뿌듯해하는 마인드로 바꿨다.
인간이 왜 잠을 자야 하는지는 아직도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잠을 오랫동안 자지 않거나 조금만 자면 다음날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부지런함과 잠의 관계는 더 나아가 개인의 능력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능력 있는 사람은 그까짓 8시간쯤 안 자고 4시간만 자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정도 능력을 갖춰야 어디서 성공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OECD 국가 중 평균 근로 시간이 살인적으로 긴 나라에서 잠이 많다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자기의 무능함으로 평가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 농락이 아닐까? 태초부터 잠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존재 하지 않았것나 반비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웃자고 하는 실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잠에 대한 나의 예찬만큼은 진지하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휴일 친구와의 약속 대신 집에서 낮잠을 선택한 어느 일요일 오후 문득 든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니.... 개인마다 잠의 대한 접근은 다르기에 각자에게 맞는 수면 방법과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잠이 많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당당하게 잠을 예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