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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Jun 03. 2022

무엇을 상상하 든 그 이상

미국의 진상 고객에 대하여 (1)

한국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진상 고객, 혹은 갑질 고객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배달 앱에 후기를 나쁘게 쓰는 것부터 온갖 폭언과 욕설로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들었던 소상공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고객이라 부르기도 뭐한 사람들. 대학 때부터 편의점 알바를 시작으로 식당 알바, 매장 관리직까지 두루 경험이 있던 나는 사람 상대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기에 유난히 갑질 시전 한 고객의 뉴스를 보면 감정이입을 깊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진작 인류애를 잃는다고들 말한다. 


나 또한 그렇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내가 오늘날 인류애를 잃은 결정적인 계기는 뉴욕 매장에서 2년간 근무를 하면서부터였다. 그 기간 동안 몰상식한 고객을 상대한 에피소드를 모으면 책 한 권은 금방 쓸 수 있을 만큼 나는 희한한 사람을 많이 상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근무했던 곳은 뉴욕 타임 스퀘어 한복판에 위치한 스파(SPA) 브랜드의 플래그쉽 매장이었고, 코로나 이전 하루 방문자 수가 적으면 오천명 주말에는 만명도 넘었기 때문에 출퇴근길 강남역을 오가는 사람들 만큼의 유동 인구를 감당했다. 


실제 매장 근무 당시 촬영한 이미지, 참고로 세 개의 층 중 한 층의 모습이다.

모든 진상 고객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년이 흘러도 회자되는 고객이 몇 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특이했던 에피소드로 술 마실 때 안주거리로 요긴하게 쓰이는 이야기들이지만,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시피 일어났던 현실이었다. 그래도 그때 그렇게 내공을 쌓은 덕분에 멘탈이 강해진 점도 있으니, 그런 면에서 아주 쓸모없는 경험은 아니었다. (나름 긍정적인 편)


1.  환불해줘! 환불해달란 말이야!

연말이 되면 뉴욕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크리스마스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때문에 미국인들이 연말에 가장 여행하고 싶어 하는 도시는 단연코 뉴욕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서비스직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게 연말은 헬게이트가 열리는 시즌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일주일 간격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떨어지는 공(Ball Drop)을 보기 위해 몰린 관광객의 숫자는 상상 그 이상이다. 


2018년 크리스마스 연휴 근처의 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2층 직원의 부름을 받고 계산대로 향했다. 매장 업무의 반은 고객 응대이다 보니 매번 직원들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줄곳 긴장했다. 한 번도 좋은 이유로 불려 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 안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며 오늘은 또 어떤 진상이 나를 반기고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다다랐다.


카운터 뒤로 들어서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방긋 웃던 그녀는 딱 보기에도 타지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15살쯤 돼 보이는 딸과 그녀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서있다. 가족 고객이었다. 


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녀: "당신이 매니저인가요? (미소) 혹시나 당신이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찾았어요. 내 말 좀 들어봐요."

나: (어디 한번 들어 보자 하는 표정) 네.

그녀: "우리 아이가 이 옷을 너무 좋아하는데, 얼마 전에 세탁을 했는데 재킷에 달려 있는 털이 다 망가졌지 뭐예요. 바꿔 줄 수 있나요?"

나: "영수증 있으신가요?"

그녀: "없어요."

나: (옷을 받아 들고 제조 번호를 확인한 후, 시스템에 검색한다. 2016년 제작이라 나온다.) 2년 전에 나온 제품이네요.

그녀: "그런가요? 몰라요 그런 건, 우리는. 하지만 어떻게 옷을 빨았는데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죠?"


제품은 누가 봐도 2년간 열심히 입어서 닮고 닳은 옷이었고, 한 번의 세탁으로 입혀진 대미지가 아니었다. 


나: "현재 이 제품은 저희 매장에 없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그녀: "그럼 환불해 주세요."

나: "영수증이 없으면 환불 안됩니다."


이후 그녀는 이런 제품을 팔아도 되는 거냐며 한참을 불평했다. 진작에 영혼을 잃어버린 소울리스였던 나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녀가 하는 불평을 듣고 있는 척했지만, 사실은 곧 다가올 점심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대한 연설을 마쳤고, 그에 나는 대답했다.


나: "환불은 해줄 수 없고, 현재 매장에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10% 할인해드릴게요."


보통, 이런 경우 매니저의 재량으로 일정 할인을 제공해주고 돌려보낸다. 미국은 떼쓴다고 다 들어주지는 않고 판매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지키는 편이기 때문에 아닌 건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해도 회사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직원들은 일하기 조금 편하다.  


하지만 10% 따위 개나 줘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본사에 전화해 너를 고발할 것이라 협박하였다. 사실, 궁지에 몰린 진상 고객이 마지막 방법으로 시전 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미 이 레퍼토리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계산대 옆에 준비된 메모지에 본사 고객 센터 번호를 적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나의 이름과 함께.


총알이 다 떨어진 그녀는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고, 그 종이를 받아 든 채 내가 제시했던 10%의 할인은커녕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매장을 떠났다. 


며칠 뒤 본사에서 연락이 올까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전화를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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