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뉴욕으로
이번 결정이 마지막 이길 바라.
더 이상 돌아설 길이 없다.
8개월 전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뉴욕에서 8년을 보내고 진드기에게 진을 다 빨린 식물처럼 하루하루가 시들하던 나는 어느 날 기적적으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도망쳐왔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햇살 부신 푸른 하늘 아래 테슬라를 운전하며 101번 고속도로를 달려 출퇴근할 나를 상상하며 샌프란시스코를 꿈꿨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나의 서부 생활의 이미지가 선명해지던 그때, 눈떠보니 캘리포니아로 영원히 도착해 있었다.
영원히 일 줄 알았다…. 처음 도착 했을 때만 해도.
대학 졸업 후 새로운 도시에 자리 잡기를 여러 차례, 이번에도 수월할 줄 알았다.
'해봤으니까...'
뉴욕에 있던 나는 서부팀으로 전근 신청을 하였고, 회사는 흔쾌히 승인했다. 소정의 이사 비용도 지불해 주었다. 행운아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다 내가 원하던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도착하면 시작될 나의 황금빛 40대. 스무 살을 엘에이에서, 서른을 뉴욕에서 보냈으니 이제 곧 다가올 마흔은 샌프란스코 인가 보다 싶었다.
영화 같은 내 인생에 도취되어 난 생각하면 뭐든 이루는 사람이라는 황홀경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 두 달은 너무 행복했다. 4월 말, 아직도 코 끝이 추운 뉴욕의 날씨에서 드디어 벗어나 한 낮 기온 25도의 완벽한 습도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 있자니 화날 이유가 없었다. 뉴욕에서 화가 그득한 얼굴로 누구든 걸리기만 해 봐라를 속으로 곱씹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건강히 먹고, 주말에는 해변을 따라 하염없이 걷거나 뛰기도 했다. 삶이 건강해졌고, 살아 있음이 행복했다.
8년의 찌든 때가 다 씻어 내려가는 듯했다.
행복의 기류가 방향을 틀어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이사 후 3개월 즈음 접어들 때였다. 따뜻한 햇빛을 즐기는 것도, 해변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것도, 캘리포니아의 자연경관을 찬양하는 것 도 시들 해질 때 즈음, 목적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뉴욕이 지긋해져서였고, 새 삶을 꾸리고 터전을 잡아보자 온 곳이었지만 뭔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아니, 잘못된 것이 아니라 뭔가 안되고 있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자 왔건만 3개월 내내 나는 혼자였다.
옮긴 팀의 데면데면한 직원들과 그나마도 재택으로 대체되어 나오지 않는 사람들. 어딜 가나 적응력 하나 끝내줬던 철새 경력이 무색하리 만큼 좀체 나아지지 않는 불편한 공기에 매번 출근하는 날은 숨이 막혔다. 아이러니였다. 사람이 없는데 숨이 막히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또한 휑했다. 처음에는 시골 같은 한적함이 좋았지만 저녁 8시면 부랴부랴 문을 닫는 상점들과 기껏해야 9시까지 하는 주점들. 그나마도 월요일 화요일은 휴무인 곳이 수두룩한 곳에서 회사 밖 사회생활이란 건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나만 세상 타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각종 상점들과 백화점, 레스토랑으로 북적이던 3년 전과 달리 너무나도 휑해져 버린 샌프란시스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범죄 소식. 아무 곳에나 주차를 했다가는 차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강도 맞을 수도, 아예 차를 도난당할 수도 있다고 연신 경고하는 미디어와 도시에 널린 경고문들.
길을 잘 못 들어서기라도 하면 길 마약에 취해 헤롱대는 무리와 노숙자의 텐트, 각종 쓰레기가 즐비한 위험한 환경에 너무도 쉽게 노출되었다.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시절. 모든 사람이 재택을 할 때, 나는 한, 두 달 정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친구네서 머문 적이 있다. 팬데믹이라는 국제적인 이벤트를 감안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웠다. 금문교 주변을 조깅하며 느꼈던 그 웅장함과 눈부신 광경. 골든스테이트라는 별명답게 캘리포니아는 반짝반짝 빛났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와본 것도 아니고 나의 20대를 엘에이에서 보냈지만 서른이 넘어 마주하는 북쪽의 캘리포니아는 사뭇 달랐다. 뭔가 으른(?)스러운 분위기에 다들 여유 있어 보였고 부티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굴지에 내놓으라 하는 테크기업의 성지인 만큼 다들 똑똑하고 돈도 잘 벌고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샌프란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였다.
딱, 3년 전까지만 해도 매력적이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큰 희망을 품고 아예 살러 작정하고 온 나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해가지면 길거리에 지나가다 범죄에 대상이 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너무나도 음침한 도시 곳곳의 분위기.
친구도 없었지만, 그나마 있는 지인이라도 만나려 치면 점심 약속이 필수였고, 해가 지면 무조건 집에 들어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체 통금이 생겨버린 샘이었다.
도무지 살아도 넓어지지 않는 내 인간관계에도 한계를 느꼈다. 8개월이 지나도록 친구하나 사귀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친구 사귀기에 도전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운동을 취미로 크로스 핏 도장도 등록해 보고, 헬스장도 열심히 가고 했지만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없었다. 다들 각자 삶에 집중하고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아 보였다. 뉴욕으로 처음 이사 갔을 때, 친구 1명으로 시작해 3개월 만에 새로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 비단 내 성격의 문제뿐 아니라 동네 분위기도 한몫한다는데 결론을 얻었다.
나이 사십이 다 돼가는 마당에 친구에 연연하지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나한테 집중하자며, 이왕 이사 온 거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을 무렵, 나에게 계기가 마련된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동네 애플스토어를 찾은 어느 날. 복면을 쓴 2인조 강도가 애플스토어를 들어와 전시되어 있는 아이폰, 컴퓨터, 아이패드등을 휩쓸어갔고, 스토어 안에서 있던 20여 명의 손님과 직원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행여나 총이라도 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신할 뿐이었다.
경찰은 강도가 가게를 나선 10분 뒤에서나 도착했고,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는 반응으로 경찰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로 산 이백만 원이 훌쩍 넘는 컴퓨터를 품에 꼭 안으며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차로 부랴부랴 걸어갔다. 차에 타 문을 잠그고 허공을 바라보며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SNS에서 짧은 영상으로만 봐오던 강도를 나도 목격하다니. 이곳 생활에 진절머리가 났다. 8개월 만에 진절머리라니... 단기간 기록이다 싶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뉴욕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회사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만약 회사에서 안된다고 하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선택지까지 감안했던 나였다. 무엇이든지 좋은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 돌아가면 아예 뉴욕에 정착할 마음으로 대단한 결심을 하고 돌아간다. 더 이상의 방황, 이사는 없다며, 나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것이다. 물론, 나란 인간 줏대 없이 맨날 생각을 바꿔버리니까, 호언장담은 할 수 없다.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을 것도 안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결국 뉴욕이라는 해답이 나왔다. 애증의 뉴욕...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난 1년간 나는 미친 듯이 뉴욕을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