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창영 Nov 20.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 6(하)

다방집 소년 6(하)


 토요일 3교시 미술실에서는 역시나 변태 같은 이상한 미술 선생의 아주 이상한 주문으로 우리 반 아이들이 낑낑대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마음속 풍경>을 그리라나 뭐라나? 심지어 환등기로 영사를 해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나 장승업의 <방 황공망산수도(倣 黃公望山水圖)>를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풍경화를 그려 보라고 했다. 지난 시간에 특별히 서예 붓과 한지를 준비하라고 해서 서예를 배우는구나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오늘 그린 그림을 가지고 중간고사 시험을 대체 하겠다 했다. 아!

 여기저기서 나지막이 “니미!”라든지 “저 변태!”라든지 “아! 씨바!”라든지 이 근방의 모범생들이 모인 교실에서 속된 욕이나 푸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킄킄킄! 내 이럴 줄 알았어! 얘들아! 이건 내 위시(wish) 리스트에 있는 거야! 풍경화라고 해서 꼭 실제로 있는 걸 그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봐! 니들이 생각이 나거나 좋아하는 풍경이 떠오르면 그걸 그려보도록! 오스트리아의 성도 되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고 하면 생각나는 풍경을 그려도 되고! 슈퍼맨이 나오는 그림을 그려도 돼!”


 나는 당장 꿈속에서 갔다 왔다고 믿는 고양이 나라가 생각이 났지만 지난 일요일 지하 다방집의  새 방 만들기 공사를 마치고 내실에 들어갔을 때가 더 생각이 났다. 그 날은 정말 말하기도 싫을 만큼 고생을 했었다.

 평소 굳건히 잠겨 있었던 내실 금고문이 웬일인지 조금 열려 있었다. 간혹 엄마가 금고 안 아래에 있는 서랍에서 술집 시절 손님들이 술값 대신 맡긴 구식 손목시계를 꺼내 주기도 했었지만 그 외에는 금고문이 열려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금고문을 열고 무릎을 굽혀 금고 안을 보려는데 시멘트 벽돌을 옮기느라 허리랑 허벅지가 몹시 당겼고 무릎까지 아팠다.


 “에구구구!”


 고작 내가 17살인데 71세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힐 때 내는 소리를 냈다. 아! 운동을 좀 해야 하나? 하긴 내가 너무나 운동 같은 걸 싫어하니! 이렇게 근육 없는 깡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국민학교 시절부터 별명이 개발이었다. 공이라 불리는 둥근 것들은 나랑 너무나 맞지 않는다. 야구 붐이 일어 친구들과 캐치볼을 했었지만 얼굴에 정통으로 공을 맞아서 코피를 몇 번이나 쏟아내고 나서는 야구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그저 수도 서울의 MBC 청룡이나 응원하고 마는 것이 유일하게 공과 관련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내가 조석 간 신문 5개나 읽는 문자 중독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상당히 큰 금고문을 천천히 열었다. 심지어 이게 뭐라고 마음까지 설레었다. 금고문을 열자마자 훅 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무슨 사향 냄새도 풍겼다. 뭐지?

 하기는 언젠가 잠결에 엄마가 이 금고 안에서 나오는 걸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물론 엄마는 시치미를 떼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금고 안에는 달랑 두루마리 하나만 있었다. 금고 밑에 서랍을 열어보니 역시나 외상으로 맡긴 시계가 그득했다. 서랍을 닫고 그 두루마리를 펴 보니 무슨 동양화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랑 17년을 같이 살면서 엄마의 금고에 이런 두루마리 형태의 동양화가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위아래로 긴 형태의 동양화를 펴보니, 여태 보지 못했던 아주 커다란 나무와 기암괴석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묘하게 생긴 산들이 저 멀리까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S자로 난 아주 큰 길이 따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문으로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 도저히 내 한문 실력으로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빨간색 낙관까지 찍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그 산수도를 보니 그림은 밤 풍경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괴이하게 생긴 산들 위로 보름달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 그 보름달을 손으로 만지고 싶어졌다. 보름달을 향해 천천히 손을 갖다 대려고 하는데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잠깐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름달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내 몸이 그림 쪽으로 맹렬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으으, 아아~~~ 아아아!!!!”    


 그림을 붙잡고 버텨봤지만 몸이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힘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고개를 급하게 돌려봤지만 강력한 자석 같은 힘으로 결국 나는 그 산수화 안에 빨려 들어갔다.


 “헉헉헉헉!!!”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가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사방을 둘러봤지만 결국 그 산수화의 풍경속이었다. 드문드문 이름 모를 나무들이 굉장히 높게 솟아 있었다. 폭이 상당히 넓은 길 역시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었고 밤하늘을 보니 별은 안 보이고 보름달만이 휘영청 밝게 떠 있었다. 내가 봤던 어떤 달보다 크고 밟았다. 그런 달을 슈퍼문이라고 했던가? 동아일보의 과학 뉴스에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밝은 달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80년 5월 어느 날 봤던 별들로만 반짝이던 슬프도록 아름다운 밤이 떠올랐다.

 무릎을 딛고 손을 짚어 일어서며 “에구구구!” 소리를 냈다. 일단 휘영청 밝게 뜬 달을 따라 한동안 길을 걸었다. 아! 요즘 들어 뭔 일이 이리도 많이 생기는지……. 이건 또 뭔 일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다방집 새 방 공사 일을 돕느라 허리며 다리며 허벅지며 삭신이 쑤셔 “에구구구” 소리를 또 내려고 하는데, 누가 먼저 “에구구구”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아보니 저쪽 앞으로 길을 가로질러가는 상당히 큰 굼벵이가 보였다. 내 손바닥 두 개를 모은 것보다 더 큰 굼벵이는 잠깐 멈춰 서서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열심히 그러나 매우 천천히 자기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굼벵이가 말을 하다니? 믿기 어렵지만 여기서 “에구구구” 소리를 낼 만한 대상은 저 굼벵이가 유일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 인간이 말을 하는 광경도 본 사람 아닌가? 더군다나 일국의 대통령을 거의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릴 뻔한 이 마당에, 사실 무슨 일인들 별로 놀랍지 않았다. 문득 말을 하는 굼벵이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었다.


 “이 봐! 굼벵이군!”


 굼벵이가 문득 멈춰 서서 내 쪽을 보려다 말고 다시 또 아주 천천히 제 갈 길을 갔다.


 “이 봐! 굼벵이군. 자, 잠깐만!”


 그때서야 굼벵이가 멈춰 서서 나를 상대해 주었다.  


 “왜? 무슨 일인가?”


굼벵이가 무척이나 나이 든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기가 어딘가?”

 “자네는 여기가 정말 어딘지 몰라서 묻나?”

 “응, 정말 모른다.”

 “그리고  너는 언제 날 봤다고 함부로 반말이냐? 너 몇 살이나 먹었냐?”

 “나, 17살! 그러는 너는?”

 “나는 470살! 네가 나를 그렇게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

 “아! 굼벵이가 그렇게 오래 사나? 아니 사나요? 알겠어요. 굼벵이 할아버지! 그니까 여기가 어디예요?”


 그때 보름달이 뜬 반대편 밤하늘에서 무슨 처음 듣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센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렸고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도망치는 소리 같은 게 들렸고 땅에 있는 동물들이 도망을 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얼마 후, 하늘 가득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밤하늘을 꽉 채우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밝게 뜬 보름달을 가리는 거대한 새의 날개 짓에 대지가 온통 컴컴해지면서 더 큰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서둘러 굼벵이 할아버지를 몸으로 둘러쌌다. 나 역시 머리를 가슴에 최대한 밀착시키며 땅에 몸을 고정시켰다. 천지가 완전히 깜깜해지더니 강렬한 폭풍이 몰아치면서 하마터면 나 역시 세찬 바람에 날려갈 뻔했다. 다행히 온 힘을 다해 그 바람을 잘 버티고 나니 다시 밝은 달빛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세계를 다시 비추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거대한 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급히 굼벵이 할아버지를 살폈다. 다행히 굼벵이 할아버지 역시 별 탈이 없었다.  


 “굼벵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으응, 하루 이틀 일도 아니데 뭘! 난, 괜찮아!”

 “그나저나 저 새는 도대체 뭐예요?”

 “뭐긴 뭐야! 봉황새지!”

 “예? 여기 봉황새가 살아요?”

 “여기서는 용도 사는 데 봉황이 못 살라는 법은 어딨어?”

 “네? 용도 살아요?”

 “응! 여기선 용들이 무슨 철새들 마냥 떼로 날아다녀!”

 “예? 그래요. 와! 정말요. 그리고 아! 참! 할아버지! 굼벵이는 나중에 장수풍뎅이가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도 몇 백 년이 지나야 장수풍뎅이가 돼!”

 “참! 그래서 말인데요. 그러니까 정확히 여기가 어디예요? 할아버지!”

 “음……. 한마디로 요물들이 사는 왕국이지! 예전에는 신선들이 많이 머물렀지만 다 죽거나 떠나서 얼마 남지 않았어!”

 굼벵이 할아버지는 상당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는 속도의 대화였다.

 “네? 할아버지! 요물은 뭐고 신선은 또 뭐예요?”

 “그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그렇지! 넌 내가 말을 하는 걸 보면 이상하지도 않느냐?”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너도 보아하니 요물인 거 같은데?”

 “제가요? 에이! 저 사람이에요. 참!”

 “너도 너를 잘 모르는구나! 여기 요물들 중에는 인간의 몸을 한 요물들도 꽤 있지.”

 “그게 누군데요.”

 “여우들!”

 “여우들이요!!!”

 “응, 여우들! 걔네들이 이 곳을 지배해!”

 “어떻게요?”

 “보통 사람이 된 여우들은 여자라고들 알려져 있지만 남자 녀석들도 아주 많아! 녀석들은 머리가 아주 좋지. 그래서 그런지 뭐든 모여 가지고 힘을 만들어. 우리 같은 굼벵이들은 느리기만 하지 그런 쪽은 젬병인데 놈들은 머리가 아주 좋고 교활해. 결국 놈들은 여기서 나라를 만들어 버렸어. 자기들끼리 왕 노릇, 귀족 노릇을 하고 군대도 만들고 경찰도 만들었어. 더군다나 무식한 도깨비들까지 구워삶아가지고는 이리저리 데리고 놀아서 문제야. 순진하고 착했던 도깨비들이 아주 나빠졌어. 그래서 여기선 난다 긴다 하는 요물들도 그 놈들 앞에선 힘을 못 써.”

 “좀 전에 여기는 봉황도 있고 용도 있다면서요.”

 “거기는 다른 세계야. 이쪽 일에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아. 저렇게 가끔씩 여기 하늘을 지나가긴 하지만 말이야!”

 “네?”

 “여기는 인간들이 사는 세계가 아니야! 나도 인간들이 사는 세계를 못 가봤으니 알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혹시…?”

 “네! 맞아요. 할아버지. 저, 저는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왔어요. 저도 여기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집에 있는 그림을 봤을 뿐인데…….”

 “음, 거, 참 안됐구나. 와도 꼭 이런 데를 오다니! 여기보다 훨씬 나은 곳도 있다던데……. 쯧쯧! 여하튼 나는 갈 길이 좀 바쁘니 그만 가 봐야겠다. 너도 여기 있다가 여우들에게 괜히 잡히지나말고 어이 여길 떠나거라. 놈들은 외부인들의 침입에 상당히 민감하단다.”


 말했듯이, 요즘 들어 내 일상에 참 황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사실 나도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히 모르는데 이런 일들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참 야단 났다. 어떻게 해야 다시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이 굼벵이 할아버지에게 더 물어봐야 했다.

   

 “이 길로 쭉 가면 어디가 나오나요?”  


 나는 달이 떠있는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물었다.  


 “이 길로 가려고? 여기로 가면 안 되는데!”  

 “네, 거기 뭐가 있는데요.”

 “거기 여우들이 사는 왕궁이 나오지.”

 “뭐라구요? 요물들이 사는 나라에도 왕궁이 있다구요.?”

 “응! 여우들 중에는 인간 세계를 왕래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어. 그런 자들이 인간 세상에 온갖 못된 것들을 배워 와가지고서는 여기를 아주 몹쓸 곳을 만들고 있다고! 원래 다들 자연스럽게 살았단 말이다.”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저 말이에요. 인간 세계로 다시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뭘 어떻게 해? 여우들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으니 그 자들을 찾아가 부탁을 하든지? 나 같으면 찾아가지 않겠다만! 아니면 저기 왕궁을 지나서 동쪽 하늘에 사는 청룡들이 그런 능력을 지녔다는 소리를 들었지.”

 “그러면 굼벵이 할아버지! 이제 제가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그나저나 뭐 먹을 거 없냐? 뭘 좀 먹을 거나 주고 그런 부탁을 해도 해야지! 나이 든 사람한테 예의는 지키자꾸나! 네가 귀찮게 물어보는 걸 대답을 해주다 보니 배가 고프구나!”

 마침 김씨 아저씨랑 일을 하면서 김씨 아저씨가 준 크라운 산도가 주머니에 있었다.

 “그, 그럼! 이거라도!”

 포장을 뜯어서 굼벵이 할아버지의 머리 쪽에 갖다 놓아주었다. 굼벵이 아저씨는 한동안 크라운 산도를 맛있게 먹었다. 내 손목에 찬 검은 전자시계에서 뭔가 진동이 느껴져 무심결에 쳐다보니 동그란 유리안의 액정이 온통 빨간색이 된 채 깜박이고 있었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이 시점에서 시계가 왜 이러지?  

 시계 우측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 유리 위로 무슨 입체 영상 같은 게 튀어나왔다. 그, 그때 나를 몇 번이나 정신을 잃게 만들었던 바로 그 혼혈 소녀였다.

 “너! 어, 어떻게?”

 “뭘! 어떻게? 라니? 거긴 왜 가 있는 거야! 어라! 이 엉큼한 소년! 어멋! 이 소년 또 눈이 어디를 향하는 거야?”

 특유의 풍만한 가슴을 두 팔로 가리며 이 소녀가 매우 혐오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 뭐! 내가 뭘!”


 이번에야 말로 정말 억울했다. 물론 매우 건강하고 아름다운 이 소녀에게 마음이 설렌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이 작은 시계에 입체 영상으로 더 작게 뜬 그녀를 보는데 그녀의 가슴이 눈에 보이기나 하겠냐 말이다.

 그나저나 억울한 건 억울한 것이고 지금 이 상황은 3년 전 IQ 90이었던 내 머리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을 어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잠시 이 생각에 빠져 멍하고 있는데,

 “야! 엉큼한 소년! 너 거기 꼼짝하지 말고 있어! 데리러 갈 테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넌 누구냐? 제발 네 정체나 좀 밝혀라!”

 “그건 지금 알 거 없고!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아니면 아주, 아주 위험하니까?”

 그리곤 ‘비잉!’ 소리와 함께 갑자기 그 입체 영상이 사라졌다.

 “야! 야! 네 말만 하고 사라지면 어떡해? 야! 야!”  


 시계의 버튼을 있는 대로 다 눌러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시계에서 영상이 사라지자 검은색 전자시계의 액정은 그때서야 제 시간을 보여줬다. 그런데 원래 시계 시간하고 많이 차이가 났다. 시간은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6시 45분 37초에서 38초로 움직이려다 말고, 움직이려다 말고 하면서 깜빡대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그 굼벵이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염치없는 굼벵이를 봤나? 470살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거 아닌가? 맛있는 크라운 산도만 홀랑 해치우고 말도 없이 그냥 가? 허! 참! 이 동네 사람들 인심 한 번 야박하네!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도 나누고 먹을 걸 주었으면 이치에 맞는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 할 거 아닌가? 뭐? 동쪽 하늘에 사는 청룡?  

 그런데 불과 몇십 초 만에 저공비행을 하는 상당히 괴상하게 생긴 중형 헬리콥터 같이 생긴 비행체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헬리콥터라고 말은 했지만 프로펠러가 없는 헬리콥터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날개도 없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비행체였다. 뭐랄까?

 음! 교교한 보름달빛에 반짝이는 은빛이 나는 데 상당히 뾰족한 전장을 가졌지만 뒤는 좀 뭉뚱한 수송 헬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문득 마음을 놓고 그 소녀를 다시 볼 기대에 빠졌다. 야! 생각보다 약속을 잘 지키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뭔가 모르게 무지 안심이 됐기 때문에 온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그 헬기 비슷한 비행체에 손을 마구 흔들었다. 비행체에는 이상한 한자로 글자도 적혀 있었고 무슨 삼각형과 원이 엇갈려 그려진 표식도 앞 뒤로 붙어 있었다. 저공비행을 하던 비행기가 내 앞에서 직각으로 착륙을 했다. 나는 참 세상 좋아졌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통화를 하고 채 1분도 안되어서 이렇게 빨리 데리러 올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작은 수송기처럼 생긴 비행기 뒤로 문이 내려오자, 거기에서는 고양이 인간들이!  아니 그냥 사람들이 내려왔다. 굳은 인상을 쓴 남자들은 황토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은 본 적이 없는 긴 장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내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리고 꽤 거대한 형상을 한, 한눈에 봐도 도깨비다 싶은 군인이 있었다. 근육질인 데다가 입이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눈빛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특이하게 이 도깨비 군인은 장총 대신 스테인리스 형태의 긴 봉을 들고 있었다.

 어! 뭔가 싸한 이상한 이 느낌은 뭐지? 아! 그리고 그 소녀는 어디에?


 “혹시 저 구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무슨 고양이 소리냐? 어서 손이나 들어!”


 권총을 찬 장교 같은 자가 내리더니 내게 손을 들라고 했다. 어라! 여자였다. 혹시나 그 소녀인가?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차가운 외모에 단단한 체격을 한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손을 들면서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네, 저기 뭐냐? 제 나이인데 좀 예쁘장하고 건강한 여자애가 보낸 게 아니에요? 악!!!”


  누군가 내 무릎을 심하게 차 꿇렸다. 따라서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육감적인 소녀가 보낸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아! 이 배신감! 그리고 무릎이 너무 아팠다.  

 그렇다. 내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연락을 주었던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앞으로 그 소녀 말은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라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를 했다.  


 “다, 당신들은 누군가요?”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그러자 이 소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 장교가 말했다.


 “우리들은 대 선호국의 군인들이다. 너를 이 시간 부로 국경 침입 및 간첩 혐의로 체포한다.”

 “내가 왜요?” 권총을 찬 여성 장교는 내 말에 대답은커녕,

 “어서 이자를 체포하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뒷머리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다. 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깨비 군인이 긴 스테인리스 봉을 흔들흔들 돌리는 게 보였다. 기분 나쁜 웃음이 보였다. 나는 왜 또 정신을 잃어야 하는가? 이자들에게 왜 대항 한 번 못해보냔 말이다. 제기랄!!!!        

작가의 이전글 Underground Bo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