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 " 제대로 된 사막을 보고 싶으면 쿠리로 들어가세요"라는 가이드북의 글을 보고 쿠리에서 낙타 사파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출발하는 날 일행 두 명이 많이 아팠다. 도저히 이동할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여러 상의 끝에 나를 포함한 3명은 쿠리로, 아픈 2명은 상태를 지켜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간단히 짐만 꾸려 쿠리로 향하는 버스 스탠드로 향했다. 역시나 버스 정류장 표시는 없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버스는 역시나 만원.
인도 타임으로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게 뻔했다. 이미 인도의 만원 버스를 여러 번 겪었으므로 고민 없이 버스에 오르기로 했다. 버스 기사 옆자리에 짐짝처럼 구겨져 머리도 들지 못하고 공벌레처럼 말려있어야 했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이 공처럼 말린 내 뒷목을 뜨뜻하게 지져댔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한 자세로 끼여가다가 쿠리! 쿠리! 외치는 소리에 던져지는 짐짝처럼 버스에서 내동댕이 쳐졌다. 바삭하게 마른미역이 된 기분이었다. 숙소를 알아볼 기력도 없이 제일 먼저 보이는 숙소 타이타닉으로 들어가 아무 의자에 몸을 부렸다. 그동안의 여독이 쌓인 건지 장시간 햇빛을 쬐여서인지 오래 사용하지 않은 녹슨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간격을 두고 터지듯이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자이살메르에 있는 아픈 일행과 같은 증상으로 앓아누웠다. 메스꺼움을 동반한 어지럼증과 고열. 어제 아픈 일행과 같이 자이살메르의 밤이 너무 좋다며, 침낭을 들고 숙소 루프탑에서 잔다고 누웠다가 모기에 잔뜩 뜯긴 터였다. 그중 말라리아모기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짐도 못 풀고, 짚으로 된 지붕에 붉은 흙으로 지어진 숙소에 들어가 이건 말라리아가 분명하다고 씩씩거리며 한참을 앓다가 자다가를 반복하였다. 내 목 뒤를 뜨겁게 지져대던 붉디붉은 해가 저물수록 식은땀도 좀 잦아들더니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이불을 둘둘 말고 방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별은 총총이 떠있고 타닥타닥 타는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다. 짜이를 하나 받아 들고, 나도 모닥불 앞에 앉았다.
내일 나 괜찮겠지.
아침. 낙타 사파리를 하는 날이다. 쿠리로 향할 때 우리의 상상은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완벽히 모래로만 된 사막을 상상했었다.
연금술사 책을 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기도 해서 책의 표지처럼 밤하늘의 별과 달을 빛 삼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상상을 하며 쿠리로 갔었더랬다.
하지만 드문 드문 모래사장이 있을 뿐 대부분 메마른 땅에 마른 덤불이 자라 있는 길이 대부분이었다. 낙타에 오른 뒤부터 고행을 떠나는 행자처럼 그늘 하나 없는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또다시 바싹 마른미역이 되어갔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쉬고 싶었다. 타이타닉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저녁으로 매콤한 닭볶음탕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도에 있는 한인 레스토랑에서도 먹기 힘든 닭볶음탕을 사파리 중에 사막에서 먹다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모닥불을 피우고 무쇠솥을 올려 요리를 하는 터번을 두른 할아버지의 모습은 연금술을 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로맨틱한 생각도 아주 잠시. 두 시간이 넘도록 닭볶음탕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인도에서 닭볶음탕은 기본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인가 보다. 기다리다 지쳐갈 무렵 닭볶음탕이 다 되었다며 우리를 불렀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알 수 있었다. 닭볶음탕 색이 아니었다. 뭔가 비둘기 요리 색이 나는 시멘트 색의 요리였다. 배고픔에 내 눈이 잘못된 것이라 위로하며 한 입 물었는데, 나는 마날리에서 잃은 어금니를 자이살메르에서 또다시 잃을 뻔했다. 질김을 넘어서 돌멩이 수준이었다. 한입도 베어 물기 힘들었다. 순간 실망감에 우리는 모두 분노했지만, 배고픔에 화를 낼 기력도 없었다.
그리고 어두울 때 부릅뜨는 인도인의 흰자위는 생각보다 무섭다. 즐길거리 하나 없이 사방이 어두운 이곳에서 배고픔을 이길 방법은 그저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것. 낙타몰이꾼 중 가장 어린아이가 사막 한가운데 텐트나 천막도 없이 두터운 이불을 모래 위에 깔아준다. 이불이란 것이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한 번도 세탁을 하지 않은 것같이 더럽고 냄새가 났다. 새똥 구리 똥이 즐비하고 군데군데 수풀이 자라 있는 마른땅 같은 사막에 달님은 유난히 밝으셔서 별들이 다 숨은 밤하늘은 조금 많이 실망스러웠다.
코밑을 스치는 추위에 눈을 뜨니 이미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중이다. 흐려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스름한 지평선 경계가 점점 밝아오는 게 보였다 두터운 이불을 밀쳐내듯이 치우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불 주위로 수많은 새똥 구리의 발자국이 조금의 틈도 없이 모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발자국이 너무도 촘촘해서, 마치 일본의 조경 예술처럼 작품으로 보일 지경이다. 밤새 얼마나 많은 새똥 구리들이 내 몸을 타고 다닌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은 어제와는 다르게 좀 더 사막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래가 많아질수록 낙타가 달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제의 실망감을 전부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내달려 신남 반 두려움 반에 정신을 못 차리는데, 앞에 낙타가 달리면서 큰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설사를! 어제 그 먹지 못할 시멘트 색의 양도리탕을 저 녀석이 먹은 게 틀림없다. 한 발자국만 더 빨리 달리면 내 낙타가 앞 낙타의 궁둥이에 코를 박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낙타의 똥이 그대로 날려 나한테 올까 겁이 나서 사막을 달리는 기쁨은 곧 사라져 버렸다.
낙타 사파리를 끝내고, 쿠리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쿠리로 들어올 때 공벌레처럼 말려서 오느라 풍경을 볼 틈이 없었는데 돌아가는 길이 꽤나 장관이다. 자이살메르에서 쿠리를 오가는 길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있고, 메마른 땅 중간중간에 작고 마른나무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내리 델리의 정신없는 인도 교통 체증에 지쳐있다가 차 하나 다니지 않는 끝없는 지평선이 있는 길을 보니, 버스 창으로 보이는 작은 사각 프레임이 아쉬웠다. 우리는 버스 기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버스 천정에 올랐다. (인도에서도 버스 천정에 올라타는 것은 불법이다.)
우리의 시야를 채우는 것은 해가 지기 시작해 마른 땅바닥을 붉은빛으로 서서히 채우기 시작하는 지평선, 지평선뿐이다. 붉은 해를 밀어내듯이 시원한 저녁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한낮의 더위를 몰아내느라 분주하게도 불어댔다.
쿠리의 낙타 사파리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훨씬 다이내믹했던 쿠리의 하늘 버스는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추억 중에 하나이다.
5년 뒤, 다시 자이살메르를 방문했을 때는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를 신청했다. 저번 사파리 때 사막 한가운데 새카만 하늘 아래서 폭죽을 터뜨리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이살메르의 시장을 뒤져 폭죽을 여러 개 구입했다. 이미 자이살메르의 사막에 대한 기대는 없는 터였지만 역시나 끊임없이 내리쬐는 햇빛에 혼이 빠져 낙타 발걸음에 맞춰 터덜 터덜 움직이는 게 다였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큰 소음과 함께 일행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낙마를 한 것이다. 하필 모래 하나 없는 흙바닥이어서 낙마한 친구의 안전이 더 걱정되었다. 일제히 낙타에서 내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 친구에게 달려가는데 코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출혈을 일으킨 줄 알고 사색이 되었다. 다행히 피는 아니었지만, 정체불명의 물이 코에서 엄청 쏟아져 나왔다. 코에서 나올만한 게 코피가 아니면 콧물밖에 없는데 콧물이라고 하기엔 수도꼭지의 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왔다. 처음 보는 기이한 모습에 놀라고 당황해서 가이드에게 게 어찌 된 일인지 당장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되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다. 가이드도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사파리 투어 팀이 우리 쪽으로 왔다. 멀리서 보고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 팀에는 다행히 한국인 가이드가 있어 가까운 병원과 대처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는 당황해하며 자기가 낙타한테 손이 물려 잘린 여행자는 겪어봤는데 낙마한 여행자는 처음이라며 우리에게 한층 더 겁을 주었다.
아니 손이 잘렸다니요.. 손 잘린 것보다 더 위중한 상황이란 말입니까?!
안 그래도 사색이 되어있는 우리들은 그 말을 듣고 거의 울 지경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어림에도 대담한 낙마한 친구가 침착함을 되찾고 자기는 괜찮으니 빨리 목적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터였다.
목적지에 도착해 각자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하니 다행히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다. 해가 지기 전에 누구나 한 번씩은 찍는다는 점프샷을 찍는 사이
낙타 몰이꾼들이 저녁을 준비했다. 여전히 닭을 가장한 양도리탕이었지만, 처음 쿠리에서 먹었을 때보다는 훨씬 먹을만한 맛이었다. 어쩌다 같은 일행이 된 이스라엘 친구 두 명은 영 못 먹을 맛인지 거의 먹지를 못했지만.. 우리는 양도리탕을 다 먹고도 부족해 챙겨 온 라면을 끓였다. 라면 냄새가 솔솔 돌자, 배가 고프지 않다며 시크하게 양도리탕을 패스했던 이스라엘 친구들이 귀신같이 달려들더니 바닥까지 전부 긁어먹었다. 역시 한국의 라면은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오래된 여행 이야기 사진 한 컷
낙타몰이꾼 소년들이 더 좋아했던 불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