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카르의 하리 스미스 샵

by mercioon




처음 푸쉬카르에서 은공예를 알게 된 건 첫 일행들과 헤어지고 나서였다. 다들 아그라로 넘어가는 중에도 이름만 알고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디유를 가겠다며, 한동안 쭉 같이 다닌 첫 번째 일행들과 작별을 고했다. 항상 북적이던 일행들이 떠나고 나니 푸쉬카르의 한낮 같은 고요함만 남았다. 저녁이면 우다이푸르로 향할 예정이지만 반나절이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하루다. 가트에 나가 그림을 그리고, 책도 좀 보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 자고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할 일없이 기다리는 무시무종의 시간.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 티켓을 예약한 여행사에 짐을 맡기고도 2시간이 넘게 남았다. 이미 체크아웃은 했고, 뭘 할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여행사 근처의 실버샵이었다. 도시마다 다니면서 실버 귀걸이를 사모으고 있던 터였다. 역시나 실버 주얼리를 파는 샵인 줄 알고 들어가게 된 가게였다. 귀걸이나 하나 사볼까 하고 들어갔는데 상점이라기보다는 은공예를 하는 개인 공방이었다. 은제품 만드는 모습을 넋 놓고 구경하다가 간단한 반지 하나를 만들어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공방 주인은 한 시간 정도면 만들 수 있는 심플한 은반지를 추천해주었다. 나랑 남은 일행은 작은 탁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참 열심히도 만들었다. 작고 심플한 링을 하나 만드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자꾸 한쪽이 찌그러졌다.

여행 때마다 느끼는 마음 한쪽의 감정처럼 내 마음처럼 되지 않고, 한쪽을 다듬으면 다른 한쪽이 찌그러졌다. 결국 마무리는 공방 주인의 손을 거쳐 작은 새끼손가락 반지가 완성되었고, 반지 안쪽에 내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일행들을 보내고 허해진 한 구석을 이 녀석이 채워주는가 싶었는데... 주인을 잘못 만난 반지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디유의 숙소 화장실에서 그만 세면대 구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두 번째 인도 여행 중 푸쉬카르에 다시 들르게 되었다. 은반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실버샵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알게 된 하리 스미스의 실버샵. 하리는 은공예 샵을, 하리의 동생은 바로 맞은편에 보석 원석을 파는 상점을 하고 있었다. 하리를 처음 만날 날. 라피스 라줄리의 푸른 가루를 뭉쳐서 커플링을 만들었다. 내 것과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 친구 것. 커플링을 만든 이후로 일주일 동안 푸쉬카르에 머물며 하리에게 은공예를 배웠다. 하리의 실버샵은 메인 거리에서도 좀 벗어나 현지인들이 몰려 사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인도인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푸쉬카르의 사랑방 같은 느낌이다. 하나같이 히피처럼 생긴 여행자들이었는데 국적은 다양했다. 롤링 난을 하나 싸들고 하리의 가게로 출근을 하면 오픈 시간에 맞춰 짜이를 파는 꼬맹이 둘이 주문하지도 않은 짜이 3잔을 내놓는다. 하리와 나, 그리고 짜이를 내놓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드래드로 정수리에 똬리를 튼 헤어스타일에 옴 무늬 나시를 입은 이탈리아 남자. 하리는 뜨거워서 물렁해진 플라스틱 컵의 끝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후후 불며 수염에 짜이를 방울방울 묻힌 채 후루룩 들이킨다. 이탈리아 남자 역시 무거운 똬리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짜이를 마시며 하리와 짧은 수다를 떤다. 이탈리아 남자가 가고 나면 바통 터치라도 하듯 호주의 해변 좌판에서 수공예품을 팔 것 같은 아줌마가 하리의 동생 가게에서 <원석의 세계>라는 이름의 올 컬러로 된 두꺼운 책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색색의 원석들을 들고 건너온다. 이미 하리의 동생한테 한 번씩은 검증을 받았을 텐데 의심 많아 보이는 이 아줌마는 다시 한번 하리한테 검사를 받았다. (유럽이나 호주에서 원석으로 주얼리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는지, 서양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저 <원석의 세계>라는 이름의 돌 백과사전을 손에 들고 다녔다. 인기가 많아서인지, 동생 샵에서도 그 책을 전시해놓고 판매할 정도였다.)

점심시간 즈음이 되면 하리의 딸들이 가게로 찾아온다. 딸들은 영어를 잘해서 나와 하리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을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아빠의 점심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크레이지 몽키라고 부르는 막내아들을 데리러 오기도 한다. 그렇게 딸들과도 친해져서 마크라메를 배우기도 했다. 점심시간 뒤부터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은공 예을 배우기 위해 왔다. 수줍게 와서 은은한 미소만 띤 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배우던 프랑스 여자, 은공예를 배우러는 왔는데, 만드는 것보단 하리랑 수다를 떨거나 기타를 튕기며 베짱이처럼 놀다 가던 정체불명의 남자 수강생, 자기네 나라에서 팔 예정이라며 닥치는 대로 원석 펜던트를 만들던 동유럽의 어느 커플 등등. (마음은 급한데 솜씨는 없어서 그들이 가고 나면 하리는 잘 알아듣지도 못할 화풀이를 나에게 해댔다.) 하리는 전문적으로 수업을 하는 사람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어서 가르치는 건 초짜인 내가 봐도 투박하고 허술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나 역시 썩 솜씨 좋은 학생은 아니어서 하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아무튼 일주일 내내 아침이면 하리 동생의 돌 가게로 가서 은제품으로 만들 돌을 고른 뒤, 하리의 가게로 출근을 했다. 1평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하리의 가게에 쭈그리고 앉아 은가루를 뒤집어써가며 참 열심히도 만들었다. 코가 작은 탁상에 붙을 정도로 허리가 굽고, 주변이 어둑해져서 해가 지는 8시가 되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은공예로 점철된 하루가 끝나면 다정이와 유일하게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으로 가 목구멍에 낀 은가루를 (냅킨으로 가린 ) 캔맥주 한 모금으로 씻어내는 게 하루의 보람인 날들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푸쉬카르를 떠나는 마지막 날, 동생 가게로 가서 색색의 돌을 한 움큼 구입하고, 매일 아침 하리가 주던 뜨거운 짜이를 같이 마시며 작별을 고했다.

짓궂은 하리는 마지막까지 내 아이폰을 탐냈지만, 표정에 아쉬운 기운이 역력했다. 하리의 딸들도. 여행 중에 무언가를 몰두해서 해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지 하리 스미스의 실버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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