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 5시 조드뿌르 역에 떨어졌다. 아직 사방이 캄캄한 밤, 이른 시간에 도착할 걸 알고 자이살메르에서 미리 힐뷰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예약하고 역으로 픽업 신청을 해뒀다. 새벽 추위에 떨며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숙소 주인을 어떻게 찾아야 되나 걱정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처럼 길게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운전해 오는 당찬 여인네가 눈에 띄었다. 그렇게 어둡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픽업해 줄 그 사람이 바로 보였을까. 숙소 여사장도 바로 우리를 알아보고 같이 온 오토 릭샤에 일행들을 태웠다. 나는 릭샤에 자리가 없어 인도판 라라 크로프트의 뒷자리에 앉아 가게 되었다. 호방한 목소리로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길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힐뷰 게스트하우스는 말 그대로 산 언덕 마을의 가장 높은 곳, 조드뿌르의 상징 메헤랑가르 성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멋진 전경을 자랑했지만 전망이고 뭐고 다 모르겠고 일단 우선 자야겠다.
블루시티라 부르는 조드뿌르는 인도 여행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씩은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블루 시티라는 이름 그대로 마을 전체가 푸른빛이라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푸르지 않고,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 실망하기도 하는 도시. 나는 다른 이유로 빨리 조드뿌르를 벗어나고 싶었다.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정말이지 조드뿌르는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는 곳이다. 오죽하면 10년째 맛집이라고 나오는 게 길거리에서 파는 오믈렛이 다일까. 우리가 묵은 힐뷰 게스트하우스에도 부설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돈을 받고 먹어야 할 수준의 음식들이었다. 예를 들면 크림 파스타는 크림 분말이 다 풀리지 않아 면 위에 분말이 산호초에 붙어있는 작은 폴립들처럼 어지러이 붙어있었다. 면은 포크로 찍어 들어 올리면 통째로 집어 올려질 지경.
인도 음식이 싫어 초우면은 항상 기본은 한다며 초우면만 시키던 일행이 있었는데, 힐뷰 레스토랑이 일행의 생각을 무참히 깨부쉈다. 초우면은 음... 뭔가 굉장히 굉장히 기름졌다. 면 한가닥 한가닥이 기름으로 반질반질하게 코팅되어 있었다. 기름진 초우면을 입에 한입 넣는 순간 자동으로 입술 위에 바셀린을 바른 것처럼 입술이 기름으로 반질반질 해졌다. 나머지 일행들의 음식들도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음식의 정체성을 잃은 음식들의 향연이랄까. 우리는 모든 입맛을 잃고 전의를 상실하여 게스트 하우스 발코니에 앉았다. 허망하게 앉아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메헤랑가르 성 바로 밑에 높이 자리 잡은 게스트 하우스의 풍경은 너무 예뻤다. 파란 하늘에 점점이 푸른 도시들이 내려다보이고, 뜨거운 해를 가린 차양막 사이로 모래 냄새를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바람을 맞고 있는데 어디서 익숙하고도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일행 한 명이 조용히 방으로 가 하나 남은 무파마 라면을 뜯어 미적지근한 물을 부어 뽀글이를 만들어 온 것이다. 물이 미적지근해서 면이 채 다 익지도 않은 라면이었지만, 한 봉지로 셋이서 한 젓가락씩 나눠먹어야 했지만, 여행 중 그 어느 때보다 라면이 이렇게 귀하고 맛있었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융프라우 전망대에서 9000원을 주고 먹었던 육개장 사발면 보다. 4130미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먹었던 신라면보다.
처음 먹어보는 무파마가 신라면과 육개장을 이기다니...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조드뿌르를 생각하면 무파마 라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맛의 불모지 조드뿌르로 간다면 라면 스프라도 꼭 챙겨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