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by mercioon


맥에서 델리로 도착한 새벽.

빠하르간즈 거리가 좁아서 근교에서 내려주는 건 알겠는데 왜 항상 이렇게 멀리 떨어진 데서 내려주는지 아직까지 의문이다. 맥간이 좋아서 오가는 길에 꼭 거쳐야 마을이라서 여러 번 들르게 되었는데 매번 맥에서 델리로 오는 버스는 축축한 새벽안개 가득한 시간, 목적지와는 먼 곳에서 내려주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면, 저 멀리서부터 어스름한 어둠 속 안개를 제치고 몰려드는 좀비들처럼 릭샤왈라들이 몰려든다.

안개와 좀비 왈라들에게 잠식당하기를 여러 번이라 이번엔 제일 먼저 도착한 좀비의 릭샤를 골라타고 빠하즈간즈에 도착했다.

오후에 자이살메르로 출발할 예정이라 쉼터에 대충 짐을 던져놓고 고단한 몸을 뉘이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쉼터에서 구우면 반으로 줄어들어 과자처럼 딱딱해지고 베이컨 과자 맛이 나는 아주 비싼 삼겹살을 먹은 뒤, 자이살메르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하러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델리에는 올드 델리역과 뉴델리역이 있는데 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 빠하르간즈에서는 뉴델리역이 가깝다. 다행히 목적지인 자이살메르행 열차 역시 뉴델리역에서 출발한다. 기차표는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었는데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pc방의 인터넷도 어마 무시하게 느리며, 사진을 cd로 굽는 시대였으므로 직접가서 예매하기로 했다. 뉴델리역 광장은 꽤 넓어서 피난을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모여드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질서했다. 인도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비규환의 광장과 일층 로비를 지나, 바로 어제 폭탄이 떨어져 무너진 듯이 한쪽이 무너져내려 철골을 드러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다른 세상에 온 듯 고요하고 한적한 사무실이 나온다. 사무실 안에는 의자의 배치를 따라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앉아 기다리는 대기줄이 있다. 오늘 자이살메르로 출발할 수 있는 기차를 끊냐 못 끊냐는 이 대기줄에 달려있다. 델리 - 자이살메르 구간은 델리 - 바라나시 구간과 같이 인기가 많은 구간이라 오랜 시간 걸려 기다려도 곧 잘 웨이팅 리스트로 넘어간다. 다행히 별 무리 없이 예매하긴 했지만.



델리에서 자이살메르까지는 약 19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운이 좋으면 18시간 정도 걸리지만 기차를 기다리다 원치 않게 노숙을 하고 다음날 오는 기차를 타는 운 없지만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연착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연착이 없는 이상 보통은 18시간에서 20시간 정도 걸린다.

델리를 출발 도시로 정한 보통의 여행자들이 장거리 슬리퍼 기차를 처음 경험하게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보통 여행자들이 많이 타는 3등 슬리 퍼칸은 당연히 에어컨이 없고 더럽다. 오랜 세월에 거무튀튀해져 본연의 색을 잃은 파란색 시트는 앉았다 일어나면 쩌억하고 양면테이프를 붙였다 뗀 것처럼 기분 나쁘게 떨어졌다. 이 시트는 저녁에는 침대로 사용하며 양쪽 면에 세 칸씩 총 6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낮에는 가운데 칸을 접어서 앉아서 가고, 밤이 되면 중간 칸을 다시 침대로 펴서 누워서 가는 식이다. 지금은 기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지만 처음 슬리퍼 기차를 탔을 때는 스마트폰도 없을 때라 mp3로 음악을 듣거나, 독서 외엔 딱히 즐길거리가 없었다. 문명의 이기는 없을 때지만, 여행자들 간의 사이는 더욱 돈독했었다. 넷플릭스도 넷플릭스를 재생할만한 기기도 없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일행이어도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보통 테이블을 펴고 카드놀이를 했다. 이 기차 안에서 시작된 카드놀이에 푹 빠져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기면 카드부터 꺼냈다. 지면 어김없이 이마를 맞거나 소소한 게 건 돈을 모아 저녁을 함께했다. 두 번째 여행에서 자이살메르로 이동할 때는 일행 중 한 명이 타로점을 볼 줄 알아서 타로점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이 났다. 타로점이 끝나고 다시 카드게임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음악과 책을 서로 공유하며 밤새 보이지 않는 별만큼이나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가방의 무게로 다들 가이드북 외에 다른 책을 많이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 서로 가져온 책들을 돌려보았다. 그렇게 교환해간 내 책이 돌고 돌아 지금 델리에 있는 아무개가 보고 있다더라는 소식을 듣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은 다른 방향으로 여행자들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계획대로 도시를 돌다가 겹치는 도시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을 때,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막 보고 싶고 애틋한 일행도 아닌데 엇갈려서 못 보게 되면 괜히 아쉬웠고, 우연히 다른 도시에서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보고 싶지 않은 일행은 보지 않고 튈 수도 있었다.



10대를 지나고 단 한 번도 식욕이 떨어져 본 적이 없던 나는 인도의 기차 안에서만큼은 식욕이 좀 줄었다. 최대한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도 조금 마시고, 좋아하는 도시락 메뉴 중 하나인 브리야니도 반만 먹었다. 화장실에 좀 예민한 편이어서 인도 여행을 시작할 때 화장실 걱정을 제일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견딜만했었다. (냄새에 민간 한 편 ) 아마도 건조한 기후 때문에 냄새가 덜하기 때문은 아닐까 예상해본다. 하지만 기차 화장실만은 예외였다.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이지만 흔들리는 기차에서 혹여라도 더러운 바닥에 넘어질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가는 게 너무 싫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침대칸 창문에서 양치를 하고 양칫물을 창밖으로 퉤!! 내뱉었다. 하지만 창 밖 바람의 속도에 도로 들어와 일층에서 자던 인도인의 얼굴에 떨어졌다. 새카맣게 어두운데 부릅뜬 분노의 흰자위는 사천왕의 눈을 보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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