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는 왜 늘 우울하냐고 했다. 왜 안부를 물을 때 마다 잘 지내지 못하고, 매번 힘들고 속상하냐고 한 친구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우울에게 나를 내어주곤 그렇게 몇년을 살았다. 간혹 행복하다고 터져나오는 말들은 그가 곁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내가 이뤄낸 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내 삶을 결정할 때 늘 그를 1번에 두고 살아왔던 나는, 결국 하려고 했던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그렇게 갇혀있던 욕망이 이제야 스멀 스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 내 삶엔 행복이라는 것이 눌러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상사 밑이라도 매일 회사에 출근을 하는 것이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었다. 혼자서는 잠에 들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으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주면, 상대가 내 자존감을 깎아먹으려 접근하는 사람이어도 눈물을 보이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 마음 속에서 전보다 분명하게 소리치고 있다. 이제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네 발목을 잡는 그 누구도, 어떤 이유도 없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으라고.
실은 당신을 이유로, 당신을 탓으로 내 용기가 없음을 포장했다. 그저 당신이라는 방패 하나를 얻어 당신이 내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과 나약함을 가려주고 덮어주길 바랬으니, 나는 당신을 이용했던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바랐던 나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을 오히려 더 힘겹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잘해주지 못함이 아닌, 당신 기대에 부족했던 사람이라, 당신이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게 만든 내가 한없이 밉고, 또 밉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그 정도의 사랑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지만, 당신이 내게 몇번이고 돌아오기까지의 숱한 고뇌들과 망설임들조차, 물거품으로 만든건 결국 나였으니.
그대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마라.
나는 몇번이고 당신을 실망시킬테고, 몇번이고 당신을 다시 붙잡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