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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Sep 30. 2021

이기적인 나의 사랑에게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했던 나로부터

당신이 기억을 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당신의 전역이 가까워왔고, 당신이 설레는 만큼 나 또한 충분히 설렜다.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내게 캐나다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었고 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어 당신이 오면 우리 둘이 머물 방을 밤낮으로 알아보았다. 반지하도 알아보고, 스튜디오도 알아보고, 단기로 머물 에어비앤비도 알아보고, 당장 다음 주면 당신이 오는 것마냥 나는 매일 그 방을 알아보는 기쁨에 하루를 살아내었다. 방값은 내가 부담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생활하면서 짧은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떠날 여행을 그려보는 일도 참 설레고 좋았다.




우리가 연락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초반에는 군대 때문이었고, 후반에는 나의 일과 당신의 일, 시차 때문이었다. 싸우는 날이 늘었다. 나는 일을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며 회사에서 만난 언니와 밥을 먹는다고 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캐나다 생활이나 회사의 뒷이야기 들을 듣느라 3시간이 지나버린 줄도 몰랐다.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핸드폰을 보는 순간,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3시간이 지나있었다. 이미 당신은 아주 아주 많이 화가 나있었다.


그 후로, 나의 모든 삶은 핸드폰에 집중되었다. 내가 원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8000km 먼 땅에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혼자 보내 둔 당신은 당연히 불안했으리라. 최선을 다했다. 최소한의 사람들을 만났고, 말을 걸어오는 파란 눈의 남자들을 멀리했다. 간혹 일터에서 명함을 건네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준 명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나는 이런 삶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충분히 자유롭고, 내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의 범위가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영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고 싶었고, 먼 훗날 캐나다에 놀러 온다면 머물 수 있는 친구의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의 내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캐나다에 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당신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비행기표만 가지고 떠나오기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한동안은 내가 번 모든 돈이 당신과 내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용도로만 사용될 판이었다. 밤낮으로 우리 둘이 머무를 집을 보던 일을 그제야 그만두었다. ‘또 혼자 설레발쳤던 거구나. 맞아, 당신은 내가 이럴까봐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어했었지.’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우리의 집을 알아보는 순간도, 당신의 말에 실망을 한 순간도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일 뿐이었다.




캐나다의 생활은 외롭고 피폐했다. 허리를 숙여야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퀘퀘한 반지하 냄새가 났다. 먼지가 그득히 쌓인 세탁기를 지나 가장 안 쪽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이 나의 공간이었다. 한 평 남짓한 방, 마당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이 보이는 창문 앞에 삐걱이는 책상이 있었다. 난 그 책상에서 밥을 먹고, 일을 구하고, 프렌즈를 보고, 당신의 전역을 축하했다. 가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쥐가 방을 돌아다니는 중이었고, 아주 가끔은 내 책상에 똥을 싸놓고 후다닥 뛰어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텨보고 싶었다. 그런 내게 힘이 되는 존재는 없었다. 차라리 혼자였더라면, 내 마음의 소리만을 듣고,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살았을 것인데, 캐나다에는 당최 그런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는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한국에 돌아가자.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자. 더 이상 내 인생에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를 잡아먹게 두지 말자.




어디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시점은 없었다. 사실 나를 사랑해주었더라면, 진짜 나를 위한 선택을 했더라면, 당신도 친구들도 생각하지 않고 선택했더라면, 난 무엇도 다 잘 해냈을 것이다. 내 선택을 당신에게 떠넘겼고, 내가 이렇게 큰 결심을 한 것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랐다. 알아줄 거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니까. 적어도 당신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신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도 당신을 위한 약속이 아니라, 나를 위한 약속을 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이라 여기며 당신을 위한 선택을 했고, 그래서 나는 이 시끄러운 카페에 홀로 앉아 당신과의 캐나다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몸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지만, 언제나 당신은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남아있다. 지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도 않겠다.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옮겨주었듯, 내가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이 환경조차도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테니, 모든 감사는 하늘이 아닌 당신에게 할 것이다.




래서 이제, 우리는 진짜로 헤어져야겠다. 당신이 남겨둔 것들이 슬프지만, 아프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이라는  오늘에야 알았다. 아주 잠깐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연애한 것을 후회했었다. 당신과 헤어진 것을 후회했고,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당신에게 다시 다가가든, 당신이 내게 다가오든, 지금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깝고도 아주 ,  거리는, 그저 우리의 현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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