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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Oct 18. 2023

3D 아티스트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서른두 살에 3D 아티스트로 전직에 성공했다.


코로나 시기에 국비 교육 학원을 다니며 이뤄낸 결과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인생 필모그래피를 지닌 나를 흥미롭게 보신 CG회사의 이사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다.


이사님은 면접 자리에서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아온 듯한 내가 궁금했다는 말과 함께 포트폴리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학원을 다닐 당시 취업을 위해 뻔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이 싫었던 나는 8분가량의 숏필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포트폴리오랍시고 제작했는데 그게 오히려 좋게 작용한 것이었다. 학원 동기들 중 2번째로 취업에 성공한 교육생이 되었다.


이사님은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입 대우를 해주셨다. 나는 메타버스 열풍에 힘입어 막대한 투자를 받고 큰 규모로 사옥을 옮긴 CG회사의 야심 찬 신설 부서 뉴미디어팀 첫 번째 사원이 되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며 안정감도 찾고, 실무에서 쓰이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배워 내 창작활동에 적용해 음악과 영상을 섭렵한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나는 늘 뮤직비디오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만든 음악의 느낌을 영상으로 제대로 표현해 주는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쉬운 내 뮤직비디오를 보며 나는 직접 영상까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되었다. 더군다나 수십 번의 공연보다 잘 만들어진 하나의 영상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안타깝지만 현실이었다.


청사진이 그려졌다. 첫 출근 날 팀장급으로 키우려는 생각을 하고 나를 데려오셨다는 이사님의 말씀에 '이사님은 정말 사람을 볼 줄 아시는군요.' 하는 농담을 떠올렸지만 입사 첫날부터 퇴사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겸손의 미덕을 발휘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뉴미디어 팀 청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CG 업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비전에 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생각들과 합쳐지며 정리가 됐다. 결국 자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보였다. 90명 가까운 인원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영업이익이 10억 원 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훌륭한 CG 제작 역량을 지니고 하청 업체의 입장으로 부품 조달 격의 일만 하는 것은 재능 낭비나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회사 차원에서도 그렇게 연명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꼭 나 같았다. 먹고사는데 급급해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말이다. 회사 역시 손익 개선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큰일을 벌인다는 건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실속이 없는 면도 내가 아티스트로서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비슷해 보였다. 대외적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인다는 것마저 닮아 있었다.


어찌 됐건 나 또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이사님이 그리시는 뉴미디어팀 청사진의 방향과 맞아떨어졌다. 입사 후 내가 바로 맡은 업무들은 쇼릴, 프리비즈 영상, 3D 배경 디자인 제작 같은, 자체 콘텐츠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이사님은 이것만 끝나면 재밌는 거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나 역시 실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일이든 의미를 지니는 순간이 온다 여기기에 3D 아티스트 업무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나는 그간 야생 속에서 터득한, 내 안에 생길법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유머로 치환해 시트콤화 시키는 재주를 물씬 발휘하며 K-직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말에 출근할 때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공짜 커피를 마시고 법인 카드의 한도만큼 꽉꽉 눌러 담은 밥을 먹을 생각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출근하지 않았다면 내가 카페에 놀러 가 썼을 커피값과 밥값을 계산해 보며 '이렇게 일상 속 재테크를 실천해 나가면 금방 집도 사겠군.' 하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다가, 보유 중인 다른 CG회사의 주식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우리 회사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던 그 회사 대표님을 뵙게 될 때 누구보다 정중하게 '안녕하세요, 대표님. 다름 아니라 저도 주주로서의 책임감을 지니고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물을 붓고 있는데 물이 계속 새네요. 혹시 독이 깨진 위치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한샘바스 엔지니어 출신이니 가서 수리를 좀 해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이쿠... 생각보다 많이 깨졌네요. 이건 수리가 어려울 것 같은데 저는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파이팅!'이라는 내 인생을 상장폐지시킬 법한 농담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회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내가 나날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며 3D 도사로 발전할 동안 한 달에 한두 명꼴로 쓰리디 쓰린 퇴사가 발생했다. 나보다 더 도사인 동료들이 회의감을 가지고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이건 분명 나에게도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과 친해지며 CG 작업자들의 고충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괴로운 일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쉽게 위로를 건네기 어려운 문제였다. 나 역시 음악을 하면서 누구보다 많이 느낀 감정이었기에 그저 함께 술잔을 기울여 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의미를 발견하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나사(NASA)에 방문해 청소부에게 건넨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한 청소부의 말을 좋아한다.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속쓰림을 참아가며 회사 커피를 하루에 4잔씩 들이켜고 오늘도 회사 재정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므흣해하면서 의연히 자리를 지키던 어느 날 이사님이 출근하지 않으셨다. 휴가를 쓰셨겠거니 생각했으나 몇 날 며칠을 내리 나오지 않으셨다. 그러더니 사내 게시판에 이사님이 품위 유지 위반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슈룹이라는 드라마의 프리비즈 테스트 영상을 만들어보고 있을 때였는데, 마시던 커피를 슈발이라는 소리와 함께 뿜어버릴 뻔했다.


이달의 퇴사자가 이사님이실 거라는 건 내 상상력의 범주에서 벗어난 생각이었다. 나름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나는 최소한 나보다는 이사님이 회사를 더 오래 다니실 거라고 당연히 여겼기에 적지 않게 놀랐다. 나를 비롯해 이사님을 각별히 따르던 많은 직원들이 멘붕에 빠졌다. 직원들에게 인망이 높은 분이었기에 더 아이러니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나는 아마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서울이 셧다운 되기 직전까지는 CG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우직하게 자리를 지켰는데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동참하지 않았다. 나에겐 감사한 분이었다.


청사진이 빛바랜 사진이 될 거라는 게 예상됐다. 모험심을 가지고 태초마을을 벗어날 용기를 지닌 전사는 보이지 않았다. 탱커와 딜러 없이 힐러만 존재하는 평온한 마을 같았다. 이사님이 빠진 회사는 그야말로 버터 없는 버터 맥주, 망고 없는 망고 음료, 붕어 없는 붕어빵, 아 붕어빵은 원래 붕어가 없다.


나는 회사의 청사진에서 '회사'라는 단어를 제거하고 '청사진'만 나에게 적용해보는 상상을 했다. 크리에이티브함, 예술의 순수성 같은 것들을 추구하며 창작 활동을 해오다 생존을 찾아 나선 친구들이 떠올랐다. 영화 감독을 꿈꾸고 한예종 영화과에 입학했지만 방송국에 들어간 친구, EBS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지만 더 이상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고 술집을 차린 친구. 친구 따라 강남에 온 나는 그러니까 이제 예술의 순수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순수한 누군가에게 예술이 된다면 좋겠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뮤지션보다 사전 제작된 버츄얼 캐릭터의 공연 영상이 더 인기를 끄는 게 공연한 세상이다. CG 아티스트로 일하는 내가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할 게 아니라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게 최선일지 모른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Chat GPT에 주목하고 있는 요즘 3D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땀 한땀 3D 모델을 만드는 모델러들이 사진을 3D 모델로 만들어주는 기술에 위기를 느끼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애니메이터들이 동영상 기반의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바라보며 탄식을 자아낸다. 이건 비유하자면 목화 따는 기계와 트랙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 남부의 농부들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어느 아이돌의 열렬한 팬인데 티켓팅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막상 공연장에 가서는 코딱지만한 크기의 사람 형태를 관람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아티스트들의 콘서트 영상을 보며 나는 머지않아 콘서트장이 극장을 넘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3D 콘텐츠로 무장한 새로 나올 디바이스와 함께 말이다. 그러면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는 세상이 온 것처럼 누구나 3D 콘텐츠를 만드는 세상이 올 것이다. 장르를 구분 짓기 어려운 콘텐츠의 형태도 하나 둘 나올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반박하듯 친구는 "어차피 인간은 뉴럴링크를 탑재하게 될 거고 결국 인류는 멸망할 거야."라고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곤 하는데, 그럼 나는 "그 멸망을 내가 살아있을 동안만이라도 좀 미뤄줄 순 없을까?" 부탁하곤 한다.


직접 겪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몇 차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과 내게 있는 크리에이티브함으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청사진이 그려졌다. 친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태초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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