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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Nov 01. 2020

꿈 3

앞으로도 나는 어딘가로 흘러가고 좋은 날에만 머물러 있진 않겠지만

어느 날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병 문선욱, 대대장실 호출, 이병 문선욱, 대대장실 호출.'


선임들이 다급히 말을 걸었다. '선욱아, 나는 아니지?' '나는 너한테 잘해줬다.' '말 안 해도 알지?' 등의 호소하는 말들이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불거진 일과 연관된 이유로 대대장님이 날 부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소 나에게 냉랭하던 선임들이 따사하게 퍼붓는 말들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생활관을 나오니 부소대장이 서 있었다.


부소대장도 대대장님이 나를 부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빨리 가보라는 말과 함께 혹시 그때 일을 대대장님에게 이야기했는지 물었다. 나도 부소대장에게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병이 대대장실에 호출될 일은 딱히 없었다. 암만 생각해도 뭐가 없었다. 불교 신자였던 대대장님을 절에서 만나 경례하고 의례적인 차원의 질문과 대답이 몇 번 오간 기억 정도가 날 뿐이었다.


부소대장은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맞선임과 있었던 일을 대대장님에겐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때 나는 한 개인의 졸렬함에 조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곧 대대장님과 마주하게 된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불교 군종병이 전역을 할 때가 되어 다음 군종병으로 대대장님 본인이 희망하는 사람을 군 스님에게 추천하려는 것이었다. 그게 나였다. 내가 불교 활동에 열심이고, 인상이 좋고, 인사성이 밝기 때문이었다. 어느 이병들은 경례도 소극적인데 나는 위축되어 있지 않고 큰 목소리로 경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러니했다. 나는 대대의 수많은 이병들 중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불교가 아니라 그냥 쉬고 싶어서 인원이 적은 종교로 참석한 것이고, 인사성이 밝다기보다 선임들에게 꺾이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의 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여하튼 대대장님은 내게 군종병을 하게 되면 안전상 부대를 오갈 수 없어 절 안에서 군 스님과 함께 지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이 내 상급자이자 보호자가 되는 셈이었다. 스님과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절에서 잠을 자고, 종교 활동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전역하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대대장님이 그 일에 대해 알고 계셔서 티 내지 않고 나를 이곳에서 탈출시켜 주려 하시는 건가 생각했다. (훗날 대대장님이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르셨고, 알게 된 후에 부소대장을 불러 크게 혼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고민이 됐다. 내가 이 악물고 버텨낸 시간들을 생각했다. '곧 일병이고, 후임들이 들어와 좀 편하게 될 텐데.'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 나에게도 보상심리가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씩 부조리한 관행에 동조해가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것들이 늘어만 갔다. 나는 이제 훈련소에서 끊임없이 외쳐대던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생활관으로 복귀한 나에게 부소대장과 선임들이 틈틈이 은밀하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물론 본인들의 안위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세운 도덕적 기준에도 미달했으면서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별로라는 건 그때도 알았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던 것 같다.


'스님과 함께 지내면 좀 다를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적어도 이곳보다는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절에서 생활하는 경험은 평생 겪어보지 못할 특이한 경험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보지 않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들도 했다.


결국 나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군이 싫어서 절로 떠나는 것이었다. 군종병이 되기로 결정한 나에게 맞선임은 고생했고, 미안하고, 잘 가라고 이야기했다. 쉬운 작별이었다.


절 생활은 적응이랄 것도 없이 금방 익숙해졌다. 몸과 마음 모두 고단했던 부대 생활과는 비할 수 없이 편했다. 내가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군 스님을 '법사님'이라고 부르는 일이었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처음엔 꼭 마법사를 지칭하는 것 같아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 부르다 보니 입에 붙었다. 이후 전역할 때까지 법사님과 종교 활동을 하며 온갖 좋은 이야기를 들었고, 함께 생활하며 법사님의 사고방식을 배웠다. 이것들은 이후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적당히 자유롭고 고요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마음의 평화도 찾아왔다. 나는 늦은 저녁 홀로 법당에 앉아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고요함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수없이 생각했다. 그간 노력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주저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실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 경제적 상황, 실패의 두려움. 이러한 것들은 모두 내가 노력하지 않도록 만들어 낸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음악을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포기했었다. 곰곰이 살펴보니 용기가 모자라 포기할 구실을 찾았다는 편에 가까워 보였다. 전역하고 나면 음악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음악을 한다면 비록 성공에서는 실패하더라도 행복에서 실패할 것 같진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하다 보면 최소한 행복의 귀퉁이에라도 걸터앉은 사람은 되어있을 것 같았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는 뻔한 질문이 떠오르는데, '아마 나는 무모한 탓에 또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고, 후회도 많이 할 테지만, 버텨내는 것도 결국 또 할 것 같다. 그러니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덜 힘들어하고 즐겼으면 좋겠다. 이후에는 균형감도 자연스럽게 익혀 잘 서 있게 될 테니까.'라고 대답하고 싶다.


전역을 한 달 남짓 남겨둔 때였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들려왔다. 많은 이들이 전통으로 지켜온 해병대 악습이 만들어 낸 사고였다. 기수 열외. '저 새끼 기수 열외 시켜버릴까?' 선임들이 나를 향해 농담처럼 입에 담았던 말이 떠올랐다. 기수열외란 최고참 선임에게 지목 당한 사람을 다른 병들이 합법적으로 무시하는 제도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왕따 지목 선언' 같은 것. 그런데 군대는 계급이 있으니 만약 기수열외를 어느 일병이 지목 당했다고 치면, 그보다 낮은 계급인 이병이 와서 그 일병을 때리고 욕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부대 안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동조자, 방관자이면서 '그러니까 적당히 해야지.' 같은 말들을 참 쉽게도 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화나고 안타까웠다. 후회와 반성을 해봐도 그 끝에는 돌아올 수 없는 이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 외에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종교활동에 참석한 이들의 얼굴을 보면 금방 티가 났다. 위치만 달랐을 뿐 나도 동조자, 방관자, 도망자였다. 그리고 대대장님은 책임을 통감하고 전역을 하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 역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위치였다. 대대장님은 그때 내가 겪은 일도 알게 되었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그 이후로도 비슷한 형태의 일들을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었다. 시스템의 문제, 부조리한 풍경들, 어른의 부재. 그것들의 피해는 결국 사람이 입었다. 사회적 위치가 약한 사람일수록 더 억울한 피해를 입는 것 같았다. 같은 실수가 형태와 구조만 바뀌며 반복되는 것 같아 피곤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정한 생각은, 나는 그럼에도 사회가 나아질 거라고 믿겠다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내 주변에는 똑똑하고 따뜻한 겁쟁이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들은 결국 필요하다면 용기를 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바꾸는 경험도 해보았다. 언젠가의 사람들이 최선이라 믿고 행동한 것들이 켜켜이 모여 지금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피곤해도 무력하진 않을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김없이 희망을 찾아 바라볼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어딘가로 흘러가고 좋은 날에만 머물러 있진 않겠지만 떠나온 내 시간을 존중하며 다가올 시간들을 담담히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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