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바벨 Nov 01. 2020

꿈 1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된다.

엄마와 나뿐인 집에 강도가 침입했다.

칼을 든 강도에게 다가가 나머지 사람을 보호한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나는 구석에 웅크린 채 강도를 마주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괜찮다는 말을 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꿈에서 깬 나는 울고 있었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열어본 안방 문틈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자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한낱 꿈일 뿐인데 찝찝했던 건 실제로 내가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병무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군지원 게시판을 클릭했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과 빨리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었다.


해병 1104기 - 2009년 10월 19일 입대. 세 달 남짓 남은 기간이었다.

'죽기야 하겠어?' 생각하며 가장 빠른 날짜에 입대할 수 있는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몇 달 후, 아들 걱정이 가득한 엄마 앞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포항 가는 버스를 탔다. 훈련소까지 따라오겠다는 걸 정색으로 만류하고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전해 듣기로 포항에 함께 가지 못하게 한 걸 엄마가 많이 서운해했다고 한다.


훈련소 근처에 도착한 나는 돼지 두루치기를 사 먹었다. 몇 번을 다시 음미해 봐도 맛이 없었다. 포항까지 함께 와 식사하는 예비 군인 가족 사이에서 혼밥을 하느라 조금 뻘쭘한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그들도 혼자인 나를 힐금 쳐다봤던 것 같고. 그저 그런 밥을 먹고 나와 공중전화 부스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입대 전 마지막 전화를 돌렸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친구 P와의 통화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 이제 훈련소 들어간다."

"어. 야 잠깐만, 나 수업 시작한다. 끊어야 돼, 잘 갔다 와!" 뚝. 

나는 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훈련소로 들어갔다.


이내 한곳에 모인 훈련병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부모님이 서 계신 방향을 향해 절을 했다. 나는 대충 서울일 것 같은 방향을 찍어 절을 했다. 드문드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나를 포함한 훈련병들은 교관들을 따라 부대 안쪽으로 걸어갔고, 모퉁이를 돌아 부모님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쯤 되자 어느 교관의 욕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군대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촘촘하게 흘렀다. 그곳은 계획이 다 있었고, 편안함에 기생하던 나를 충성스러운 군인으로 변화시켜 갔다. 지금껏 안일하게 살아온 나를 이겨내는 경험들이었다. 강해지고 싶은 동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나의 동기들은 비슷한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해병이 되어갔다. 훈련이 힘들수록,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할수록 자부심은 커져가는 것 같았다. 그 기반에는 늠름하고 용감한 해병이라는 자화상이 존재했다.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된다'를 구호로 외쳐대던 7주가 지나가고 훈련병들은 이등병이 되어 부대로 배치됐다. 나는 정말로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해병대 제 2사단 81대대의 막내가 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다. 폭력과 부조리가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도기적인 시기였는지 군 간부들은 폭력과 부조리를 근절해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교육했고, 선임들은 해병대가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이니 간부들의 말을 무시하라고 은밀하게 교육했다. 그것들을 지키고 버텨냈을 때 진정한 해병이 되는 거라고도 했다. 나는 어디까지 전통으로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고, 날 때리는 선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의아했다. 군대에서는 나처럼 생각이 많으면 여러모로 피곤한 법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결정지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선임(속칭 맞선임)이 된 사람은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 막내 생활을 6개월이나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선임은 오래 벼르고 있던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이유를 모른 채 맞는 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온갖 부조리와 악습을 전통이라고 여기려니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행여 간부들에게 들킬까 조심하며 악습을 행하는 모습도 별로 해병 같아 보이진 않았다. 스스로에게 납득이 가는 행동이긴 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착오적 문화라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이러한 것들을 버티는 일이 나의 자부심을 더 크게 만들어 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무사 전역'이라는 목표 아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시스템에 대한 반발심과 선임에 대한 경멸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맞선임은 나를 해병으로 만들기 위해 지도 편달하던 중이었다. 훗날 나에게 후임이 들어오면 본인이 한 것처럼 폭력을 사용해 확실히 잡아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기어오른다는 이야기에는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즈음 맞았기 때문에 입을 연 것인지, 어떤 질문에 입을 연 것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찌 됐건 나는 맞선임에게 후임을 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자 맞선임은 '그래, 때리지 마. 그럼 니가 맞자.' 하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강해지고 싶다면서 스스로에게 여간 창피한 게 아니었다.


맞고 있는 거, 나아가 나도 누군가를 때릴 거라는 거, 그러면서 군 간부들에게는 깨어있는 척 연기하고 다닐 거라는 거,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달한 뒤에 드디어 진정한 해병이 되었다며 정신 승리할 거라는 거. 계속되어 온 창피한 생각들은 어느 기점을 지나 선임에게 대들기로 결심하게 만들었다.


"때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맞선임에게 말했다. 하극상이었다. 생활관에 적막이 흘렀고 모든 시선이 나와 맞선임 쪽으로 모아졌다. 맞선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되물었고 나는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번 더 대답했다. 맞선임이 욕을 하며 나를 힘껏 때렸다.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맞선임을 똑바로 쳐다보고 또 말했다. "한 번 더 때리시면 안 참습니다."

내 말에 생각을 바꾼 맞선임이 앞으로 잘 지내자며 악수를 건넸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맞선임은 온갖 욕을 하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넘어진 상태에서 맞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생활관 문을 열고 부소대장실로 향했다. "야! 야! 선욱아! 미안해!"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다급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 06화 한샘 바스 엔지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