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에는 셔플댄스 배우러 군산대 평생교육원에 간다. 후문 쪽 주차장과 농구장 쪽에 차를 세우는데, 옛날에는 그 자리에 왕버들나무와 느티나무와 벤치가 있었지 싶다. 나는 군산대 졸업했다.
거의 30여 년 전이다. 8월 어느 밤에 학생회관 앞에서 후배 성훈(카프카 닮았음)이를 만났다. 둘이 캔맥주 하나씩 들고 벤치에 앉았다. 왕모기에 뜯기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한 건 별똥별. 스마트폰이 없을 때니까 그토록 많은 별똥별이 느닷없이 떨어지는 이유를 검색할 수 없었다.
“성훈아, 소원!”
“누나, 별똥별 떨어지기 전에 빌어야 하네이.”
“이번에는 성공하자이.”
“마지막으로 저 별만 보고 가세.”
동이 틀 무렵에야 일어섰다. 그 뒤로 우리는 같이 별을 본 적도 없고 술이나 밥을 먹은 적도 없고 별똥별을 보던 날처럼 이야기를 쏟아낸 적도 없지만, 학교 졸업하고 고향 여수로 내려간 성훈이는 별일 없어도 지금까지 전화를 건다. “누나, 통화 괜찮하요?”
강의실에는 잘 안 들어가고 학생회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교수님이 교수 식당에서 식사하고 식당 뒤편 특정 나무 그늘에 서 계시는 것도 학생회관 3층에서 지켜보곤 했다. 교수님이 연구실이 있는 인문대학으로 가면 재빨리 돗자리를 갖고 가서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윤여탁 나무’. 학교는 많이 변했어도 윤여탁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일교차가 심한 이맘때 군산대는 아침저녁으로 안개에 잡아먹혔다. 사회대 뒤편 원당저수지와 큰길 건너 은파호수공원에서 물안개 군단이 몰려왔다. 안개는 수심이 깊은 냇가 같았다. 건너편 풀섶에 닿기 위해 물살을 가르며 걷는 것처럼 몸과 눈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한 공대 친구들이 가끔은 학생회관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은파로 갔다. 바로 앞 사람도 잘 보이지 않으니까 공대 애들은 이소라 노래를 크게 켜고 달렸다. 자격증을 많이 따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그애들은 떠났고, 그다음 가을에 나는 혼자서 자전거로 안개 낀 은파를 돌고서 자취방으로 갔다.
대문이 따로 없는 자취방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오른쪽 방에는 영어에 미친 자연과학대 학생 둘이 살았다. 서울말을 쓰는 그 애들은 새벽마다 영어 방송을 크게 켜놓았고 밤에는 큰소리로 영어를 따라 말했다. 결국에는 미군기지가 있는 동네로 이사 가더니 어느 추운 밤에 잔뜩 술 취해서 자취방 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나! 왜 우리 집 문이 안 열려요?”
“너네 영어 공부한다고 이사 갔잖아.”
“언제요?”
자다 일어났는데, 같이 자취하는 국문과 후배 쥐알과 나는 굉장히 똑똑했다. 걔네들은 대화 불가능한 상태, 잘 데도 없는 상태라는 걸 간파했다. 끌고 들어와서 세로로 긴 방에서 넷이 잤다. 새벽에는 눈 못 뜨는 걔네들을 억지로 깨워서 밥상에 앉혔다.
“너네 언제 갈 거냐? 움직일 수 있어?”
“모르겠어요. 너무 머리가 아파요.”
“우리 지금 데모하러 서울 가거든. 밤에 올 거야. 너네가 문 잠그고 열쇠는 가스통 밑에 두고 가라.”
열쇠는 지정한 장소에 있었고 부엌에는 설거지한 그릇들이 가지런했고 이불이 개켜진 방은 깨끗했다. 사소한 문제라면, 그날 서울에서 ‘닭장차’에 실리는 바람에 이틀 만에 자취방에 돌아왔다는 거.
셔플 댄스 배우러 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딸려 나올지 모르겠다. 안 쓰던 몸을 몇 시간 동안 뒤흔들고 와서도 노트북을 켜고 일기를 쓴다. 낯 많이 가리는 사회대학 선배랑 둘이서 군산 교도소로 ‘모르지만 유명한 사람’ 면회 다니던 일, 너무나도 중대한 일을 완수한 해방감을 못 이겨 간 곳은 오락실. 사실은 그 선배랑 오락실 가서 징그럽게 테트리스 많이 했네.
그리하여 나온 결론. 여러분, 셔플댄스를 배우세요. 체력이 좋아집니다. 살은 안 빠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