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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일

by 배지영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글쓰기 선생을 하면서 깨우친 유일한 진실이다.


밥벌이를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짬짬이 하고, 아이를 낳아 피땀눈물 흘리며 키우고, 미래를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프고, 왜 이런 집에 태어났나 절망하면서도 기깔나게 쓴다. 글쓰기 선생으로 일하러 나갈 때 나는 항상 되뇌일 수밖에 없다.


‘나대지 말자.’

‘글 써서 나보다 훨씬 잘 될 사람들이 이 중에 있다.’


아티스트에게 ‘카메라 발’ 있듯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 발’이 있다. 정성 들여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필력은 일취월장한다. 글쓰기 수업의 첫 번째 숙제는 원고 마감 잘 지키고 수업에 참여하는 동료 선생님들의 글을 읽고 열렬하게 댓글 달기. 두 번째는 무결석. 세 번째는 글쓰기 수업 끝나고 돌아가서 바로 글 고쳐서 올리기.


나는 좀 숨 막히게 하는 글쓰기 선생. 총 15회 수업, 열네 명의 원고를 한꺼번에 모으는 막중한 일을 하는 대표와 부대표를 뽑는다(선정 기준 너무나 즉흥적). 책 사진 알림 반장, 원고 마감 알림 반장, 첨삭 사진 반장도 어떻게든 정하고 시작한다. 어려운 일을 맡아준 분들에게 선생님들은 존경과 사랑을 바쳐야 한다고 강요한다.


당진 시립도서관 1인 1책 쓰기 3기 열네 명의 선생님들. 순둥순둥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했다. 쓰는 주제도 다양하고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달라서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 열네 명이 쓴 열네 개의 세계. 나는 선생으로서 팬으로서 수업에 오는 선생님들의 글을 읽었다. 내가 하는 첨삭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의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진짜 마지막 수업. 수줍은 성격에 걸맞게 나는 귀를 열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기와 2기 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여 못 하고 드디어 3기 수업에서 운명처럼 만난 선생님들은 고비를 넘고 넘어 원고를 끝마쳤다. 혼자 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글쓰기 선생으로서 두 번째 진실을 깨우쳤다.


나한테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끝까지 책 한 권을 쓰게 하는 힘이 있다고, 다정과 유머가 넘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끌고 있다고. 응, 아냐! 용기를 내서 글을 쓰고 서로의 마음에 가닿은 선생님들 덕분에 가능했다. 즐겁게 수업에 오고 내가 던지는 아무 말에도 으하하하 웃어준 선생님들 덕분에 글쓰기 수업이 이루어진 거였다.

마지막이니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서로 껴안았다. 귀요미 선생님들은 눈물을 훔쳤다. 10월 19일 당진 독서문화축제에서 또 볼 거니까, 12월에 출판기념회도 있으니까, 나는 콧물을 얼른 삼켰다.


‘휴게소 들러서 양치해야지.’ 서산 휴게소 들어서면서 받은 써니샘 전화.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게 올해 글을 쓴 일”이라고 말했던 가연e 선생님이 통곡했다는 소식이었다. 배지영 작가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나 어쨌다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고, 친구들 연애편지도 대필 해주고, 책도 12권이나 펴냈고, 올해도 도시 몇 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한 사람. ‘그렇게’ 자리에 알맞은 말을 단숨에 찾아서 넣어보았다. 문장을 제대로 쓰면 다음과 같겠지.


“흐엉흐엉. 배지영 작가를 '산 채로' 보내는 게 아니었어.”


가연e 선생님은 나를 당진시립도서관 옆 남산에 묻어버리려 했을까.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차를 돌려서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가연e 선생님을 추궁할 수도 없고. 10월 19일 일요일, 당진 독서문화축제에 갈 때까지 안 까먹었으면 좋겠다. “가연e,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운 건데요?”


2월부터 12월까지, 해마다 열여덟 차례 오가는 당진. 그날도 무사히 귀가했다. 정리한다 해도 바로 질서를 잃는 내 방 여기저기에 선생님들이 준 선물을 두었다. 밥 먹고 나서는 선생님들이 준 케이크를 먹고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올해 진짜 한 거 없네.”


요새 부쩍 나를 따라다니던 징징이 소리가 안 들렸다. 가끔은 음소거 한 채로 어깨를 짓누를 때도 있는데. 러닝화 사이로 스미는 빗물의 존재감만 압도적이었다. 머리칼을 흠뻑 적신 빗물은 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듯 물기를 닦아내며 6km를 달렸다.


쿨다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러닝 후에 천천히 걷는 것 필수. 여름 장마처럼 비 쏟아진 가을밤에도 그래야 하나? 나는 의심하면서도 운동장을 걸었다. 바지에 ‘큰 실례’를 저지른 저학년 어린이처럼 어기적어기적 집에 왔다.



#당진시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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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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