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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by 배지영

호기심 많은 탐험가가 이웃 나라 아티스트를 좋아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할까. 도쿄에 사는 기쿠치 미유키 씨를 보라. 미지의 언어를 십 년 넘게 공부하며 미지의 나라에 드나든다.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 씨 공연을 숱하게 보고, 한국 곳곳을 여행한다.


군산 방문 네 번째. 미유키 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 이성당의 팥빵을 맛보지 못했다. 미유키 씨는 중식당이면서도 국가등록문화재인 군산 빈해원의 짬뽕을 먹어보지 못했다. 이건 다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의 잘못이다. ‘군산의 시간은 꿈틀거린다. 근대가 남긴 이 도시의 유산들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라고 쓴 사람이 아주 큰 잘못을 했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은 각성했다. 집단 지성에 기대 짠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10월 26일 일요일 미유키 씨 군산 방문


10시 20분 – 미유키 씨 군산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10시 30분 - 근대역사박물관 공용 주차장에 주차.

10시 40분 – (걸어서) 빈해원

11시 20분 – (걸어서) 이성당

11시 40분 – (걸어서) 군산항 1981


12시 30분 – 한길문고

1시 10분 –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 김인규 작가 ‘회귀하는 몸’ 전시회

2시 00분 – 장항 송림 자연휴양림 / 카페 브라운핸즈

3시 30분 – 군산 고속버스터미널

일정은 처음부터 엇나갔다. 빈해원은 일요일 오전 10시 40분에 이미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 영화의 객잔 같은 식당에 입장한 것만으로 감사. 이성당 신관에서 팥빵을 사고, 군산항 1981은 건너뛰었다. 미유키 씨는 한길문고에서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의 책을 여러 권 구입해서 사인받았다.


충남 서천군 장항읍으로 넘어갔을 때는 오후 1시 40분. 미유키 씨와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은 김인규 작가님의 작품을 시간 들여 보았다. 엄마와 아기를 이어주는 탯줄처럼 실로 꿰맨 그림은 전시장에 흐르는 <시네마 천국> ost와 맞물리며 다가왔다. 어쩐지 뭉클해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눈가를 훔쳐냈다.

서천 사는 박미선 선생님(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의 셔플 댄스 동기ㅋㅋ)은 미유키 씨처럼 책 읽으려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분.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이 우발적으로 연락해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사진 찍어주기, 커피 사주기, 숲 해설하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유키 씨한테 딱 맞는 선물까지 주었다.


오후 3시 13분. 장항 솔숲에서 군산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약 10km, 넉넉잡아 20분 걸린다.


서울행 고속버스는 3시 40분.


시간은 충분하다. 아는 길이다. 불안할 게 없다. 그런데도 확실한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서 내비게이션을 켰다. 전적으로 내비의 안내를 믿고 따랐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근처에서 버스터미널은 약 2km. 내비게이션 음성은 우회전 해서 이성당 쪽으로 가라 했다.


“아니이, 동네에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평소라면 말대꾸하고서 무시해 버리는데.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멀어져 버렸다.


3시 38분.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의 자동차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약간 떨어진 시외버스터미널 반대편에 섰다. 호기심 많은 탐험가 미유키 씨는 다음 버스를 타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20분에 한 대씩 운행하는 주말 고속버스는 거의 만석.


신호등 앞.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하는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은 얼굴이 단숨에 못생겨지는 단거리 달리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방법은 하나뿐. 몇백 미터를 쏜살같이 달려서 서울행 버스 앞에 섰다. 담대하게 양팔을 벌리지는 못했다. 오줌 참는 어린이처럼 닫히기 직전의 버스 문 앞에서 동동거렸다. 버스는 곧 출발했다.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쓴 사람의 시선은 미유키 씨를 따라갔다. 도쿄에서 온 이국의 탐험가는 흔들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잡고 버스 통로를 걷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는 차창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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